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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정치자금 스캔들' 역풍 여전…233석에 이시바 운명 달렸다 [일본 10·27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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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의원(하원)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선거 레이스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자민당 단독은 물론 오랜 우군인 연립 여당 공명당과 합친 의석수가 전체 465석 중 과반(233석)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란 여론 조사 결과가 줄을 잇고 있다. 이번 선거가 여당 참패로 귀결될 경우, 출범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이시바 정권의 존립이 위태로울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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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오사카를 찾아 총선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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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역풍, 수세 몰린 이시바



25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각각 여당의 단독 과반수 의석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조사를 내놨다. 선거전 초반 요미우리 조사에서 자민당은 지역구(소선거구) 289곳 가운데 102곳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번 조사(22~24일 실시)에선 87곳으로 줄어들었다. 닛케이 조사에서도 야당과의 ‘접전’ 지역이 전체 지역구의 40%에 달하는 12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이시바 총리의 발언 수위도 변하고 있다. “다시 한번 깊은 반성과 새로운 마음으로 전국에 부탁드리고 싶다”(21일)에서 자민당이 정권을 잃었던 시절을 지칭한 “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22일)”이란 야당 공격으로 선회했다. '위험 지역구' 40여 곳을 추려 막판 지원 사격에도 나섰다. 지난 24일 히로시마(広島), 오카야마(岡山), 효고(兵庫),오사카(大阪) 등을 찾아 후보 7명에 대한 지원 유세를 했다. 25일엔 아오모리(青森)와 아키타(秋田)를 찾아 마이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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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비주류, 이시바의 딜레마



아베 전 총리가 집권한 2012년 이래 단 한 차례도 단독 과반 의석을 놓치지 않은 자민당이 이렇게 위기를 맞은 건 일차적으론 지난해 불거진 정치자금 스캔들과 이에 따른 유권자들의 신뢰 상실이다. 교도통신의 유권자 설문(19~20일 조사)에서 여당계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응답(24.6%)보다 야당계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응답(33.2%)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바람직한 선거 결과를 묻는 질문에선 "여·야 세력이 비슷해야 한다"는 의견이 응답자의 절반(49.7%)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민당이 수세에 몰린 데엔 이시바 총리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6년 정치계에 입문한 12선 의원인 이시바는 자민당에서 ‘야당’ 역할을 해온 비주류다. 안보·방위 분야 전문가로 홀로 의원 사무실에서 정책을 공부하는 ‘정책통’으로 유명한 그는 오랜 시간 차기 총리 후보를 묻는 여론 조사에서 1위에 오르곤 했다.

반면 넓지 않은 인맥, 다른 의원과의 뜸한 교류는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이시바 총리에게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구메 아키라(久米晃) 자민당 전 사무국장이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5번이나 총재 선거에 나섰지만 믿을만한 참모나 부하가 없다”고 평가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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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일본 오사카 시민들이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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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취임 후 언행은 할말은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던 ‘야당적 기질’과는 딴판이란 비판도 받고 있다. 상징적인 장면이 총재 취임식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중의원 조기 해산과 총선을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총리로 선출되기 전,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조기 선거를 발표한 건 이례적이었다. 또한 총재 선거 과정에서 “야당과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발언을 뒤집은 것이기도 했다. 이 때부터 그에게 ‘변절’이란 단어가 따라붙었다. 본인의 소신이 아닌, 자민당 집행부의 의견을 따라 ‘변심’을 했다는 비판이었다.

논란의 정점은 비자금 의원 공천 문제였다. 총재 선거 당시 그는 자민당을 뒤흔든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을 공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지만 결과는 달랐다. ‘원칙적으로 용인’하고 일정 기준에서 벗어나는 연루 의원 12명만 공천 배제했다. 아사히신문은 “새로운 후보를 내세울 시간 여유가 없어 타협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다만 이시바 총리는 이들 44명의 의원을 '중복 공천'에서 배제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지역구 공천과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가 가능한데, 이들은 제외시켰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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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총리는 딜레마에 처한 상태다. 비자금 연루 의원 다수가 옛 아베파 출신으로, 공천을 받지 않은 12명 중 10명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관련 의원 44명이 자민당으로 출마했다.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위해선 이들의 의석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민당은 무소속 의원이 당선될 경우 다시 자민당 소속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생환'한다고 게 이시바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자민당의 오랜 주류이자 옛 아베파의 핵심이던 이들이 당선돼 돌아올 경우 담내 분열이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막판 접전을 벌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은 이시바 측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자민당 내 요직 제안을 거절한 데 이어, 이번 총선에선 옛 아베파 의원과 총재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의원을 적극적인 지원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자민당 내에서 '반 이시바' 목소리가 커져 이시바 총리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단 얘기다.



이시바 책임론 뛰어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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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본 사이타마현을 찾아 지원 유세에 나선 이시바 시게루 총리. 교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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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지난 23일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의 2000만엔(약 1억8500만원) 지원 논란 보도가 나오면서 이시바 총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자민당이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돼 공천에서 배제된 의원이 대표로 있는 당 지부에 돈을 지원했다는 내용이다.

이시바 총리는 해당 보도에 “의원 개인이 사용할 일은 없다”고 했지만, 야당은 “위장 공천”이라며 반발했다. 공천받은 의원들에게 통상 공천료 500만엔과 활동비 1500만엔 등 총 2000만엔을 지원하는데, 공천 배제 의원 측에 자민당이 공교롭게 같은 금액을 지원한 점을 물고 늘어졌다. 실제로 공천배제 의원 일부가 입금을 시인하며 “돌려주겠다”고 하는 등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말로만의 반성으로 ‘정치자금’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정치불신을 씻을 수 없다”며 “이런 자세도 총선거에서 심판받는다는 것을 총리가 자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 과반 달성이 깨질 경우 이시바 총리는 참패 책임론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 7월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자민당 내에선 이시바 체제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가 약속한 ‘여당 과반’ 확보에 성공하더라도 당 안팎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위해선 일정 이상의 의석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산안이나 법안의 원활한 통과를 위해 필요한 ‘안정 다수’ 의석은 244석, 상임위원장을 독점하고 상임위원 과반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은 261석이다.

이 때문에 총선 후 의석수 감소가 확실시되는 자민당이 안정적 정권 운영을 위해 연립정권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 정책면에서 유사성을 지닌 국민민주당이 자민당의 새로운 우군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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