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한아리도자기공방에서 유해강 필자가 물레 하루 체험수업 중 흙의 안팎을 고루 섞는 ‘중심잡기’를 하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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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과감하지 못한 편인데 작품 만들 때는 과감해져요. 일단 질러놓고 나면 만드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해결되고 예쁘게 되더라고요. 도자기에서 인생을 배웠어요.” 지난 16일 서울 성북구 한아리도자기공방에서 만난 유튜버 유정민(32)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흙 앞에서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과감해질 것, 적극적으로 섬세해질 것, 주저하지 말고 나아갈 것, 이날 내가 물레로 그릇을 만들며 한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세라믹 소재를 써 다양한 예술을 표현하는 도자 공예. 그 기법은 크게 ‘물레’와 ‘핸드빌딩’ 둘로 나뉜다. 빠르게 돌아가는 원판 위에 흙을 올려 형태를 만드는 것이 물레, 정지된 상태에서 흙을 자유로이 조형하는 것이 핸드빌딩이다. 이날 나는 물레 하루 체험수업을 들으며 나의 반려묘 까미의 전용 물그릇과 밥그릇을 만들었다. 그릇처럼 형태가 둥글고 대칭인 기물은 물레로 만들 때 시간이 절약된다. 1㎏이 조금 넘는 촉촉하고 묵직한 백자토를 물레의 원판 가운데에 던지듯 붙였다.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내리쳐 울퉁불퉁한 형태를 뭉툭하게 했다.
‘사랑과 영혼’처럼? 근지구력 필요
한아리도자기공방에서 만든 하리보 젤리, 클로버, 수박, 도넛 모양의 도자 키링.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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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더 세게 때려도 돼요.” 공방의 공동원장 한종수(27)씨가 모양을 다듬어주며 말했다. 이어 페달에 올려둔 오른발에 힘을 주자 원판이 돌았다. 양손에 물을 한껏 묻힌 다음, 한쪽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흙을 앞으로 밀며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옆을 감쌌다. 그런데 웬걸, 영화 속 장면처럼 흙기둥이 위로 쑥 솟아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당황하자 한씨는 “미는 힘이 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낭만 물레’만 알던 나는 ‘현실 물레’가 요구하는 만만찮은 근지구력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물레는 돈다. 배에 힘을 단단히 주고 체중을 실어 과감하게 흙을 밀자 비로소 기둥이 올라왔다. 이어 기둥의 윗부분을 강하게 눌러 다시 주저앉혔다. ‘중심잡기’라 불리는 이 과정을 4~5번 반복했다. 한씨는 “흙의 안팎을 섞어주며 습도 등 전반적인 상태를 고르게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그릇의 깊이를 정하기 위해 흙기둥의 정수리 부분에 엄지를 대고 눌렀다. “뻑뻑해졌다 싶으면 물을 묻혀주시고, 그릇에 물이 고이면 스펀지로 꾹 눌러 빼주세요.” 한씨가 말했다. 약 4㎝ 깊이로 움푹 파인 접시 형태가 얼추 나왔다. 손가락으로 도자기의 벽면을 꼬집듯 잡고 서서히 끌어올리며 두께를 얇게 만들었다. 한씨는 “잘 만들어진 접시는 두께가 일정하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고르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망치면 어떡할까, 조심하느라 소심해질 필요는 없다. 그의 말마따나 “너무 얇아지면 뭉치면 되고 너무 두꺼우면 펴주면 되고 변형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릇이 충분히 고르게 얇아진 뒤 전칼(창칼)로 높이를 조절했다. 물레가 돌아가는 상태에서 원하는 높이에 뾰족한 칼끝을 찔러 넣으면 반듯하게 잘렸다. 끝으로 그릇을 원판에서 떼어낼 차례. 완성된 그릇을 원판에서 분리하기 위해 실을 사용한다. 실 양쪽 끝을 단단히 쥐고 그릇 바깥쪽 바닥에 바짝 댄 다음 몸 쪽으로 세게 당기면 완성된 그릇이 잘리면서 분리된다. 마침내 물그릇 완성! 이어 같은 방식으로 밥그릇을 만들었다. 까미가 밥을 먹을 때 사료가 그릇 밖으로 튀어 나가던 게 떠올라 접시의 끝부분을 살짝 오므리는 것으로 물그릇과 차별점을 뒀다. 유약 색을 정했다. 물그릇은 청록색의 ‘진사’, 밥그릇은 ‘핑크’로 했다.
유해강 필자가 물레 하루 체험수업에서 만든 반려묘 전용 물그릇(왼쪽)과 밥그릇. 자연 건조 5일째의 모습. 황진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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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한아리도자기공방을 운영해온 공동원장 황진희(52)씨는 평범한 주부였다. 취미로 시작한 도예에서 깊은 성취감을 느낀 뒤 아예 공방을 열었고 도예 관련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 황씨는 “그간 공방을 찾는 사람들 다수는 중장년 여성이었다”며 “최근 대학가로 공방을 옮긴 뒤에는 젊은 여성 손님이 늘었다. 주말엔 직장인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의 경우 꾸미기보다는 힐링, 자기만족 등이 목적인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엠제트(MZ) 세대 사이에서는 키링·그립톡 등 장식품을 만드는 수업에 관심이 높다.
“내가 지은 밥 내가 만든 그릇에, 뿌듯”
지난 16일 한아리도자기공방 정규수업에서 수강생이 가래떡처럼 빚은 흙을 쌓아 올리는 ‘코일링’ 기법으로 기물을 만들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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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는 흙을 많이 만지면서 친해져야 해요. 그래서 첫 1~3개월 정도는 핸드빌딩을 먼저 하게끔 하죠.” 황씨가 말했다. 핸드빌딩 기법엔 가래떡처럼 빚은 흙을 쌓아 올리는 ‘코일링’, 원형 흙덩어리를 꼬집어 모양을 만드는 ‘핀칭’, 흙을 일정한 두께로 펴낸 뒤 재단하는 ‘판 성형’ 등이 있는데 이 중 코일링과 핀칭이 대중적이다. 황씨에 따르면 “일정한 두께와 습도를 유지하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기법을 막론한 공통 요령이다. 이 균형이 흐트러지면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금이 가거나 깨질 수 있어서다. 만드는 과정부터 완성품까지 개성과 ‘손맛’을 적극 살릴 수 있는 쪽은 핸드빌딩에 가깝다고 한다. 또 “물레는 최소 6개월 정도는 진득하게 배워야 해서 진입 장벽이 있다”고 황씨가 말했다. 한편 한씨는 “물레를 쓰면 들이는 시간 대비 큰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핸드빌딩은 밑에서부터 천천히 쌓는 데 반해 물레는 실시간으로 빠르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물론 크기가 커질수록 힘도 많이 들기는 해요.” 한씨가 덧붙였다.
도자기로 만든 조그마한 토끼가 달린 그립톡. 플로디스튜디오 인스타그램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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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만들기의 매력은 다양하다. 젊은 세대는 내면에 대한 집중과 힐링, 몰입과 정서적 안정 등을 꼽는다. “유튜버라는,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정서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내면에 집중하는 작업을 하고자 도예를 시작했죠.” 유정민씨가 말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곡선이 두드러진 오브제를 만들어왔다. 유씨는 “작품을 만들면서 실시간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라 잡생각을 안 하게 된다”며 “입술을 뜯는 버릇이 있는데 도자기 만드는 동안엔 전혀 뜯지 않는다”고 했다. 도자기를 만들면서부터 ‘자신과의 대화’도 시작했다.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내가 이런 거 좋아했구나’ 알아가는 시간이에요.”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고미진(29)씨는 지난 2월 한아리도자기공방에서 물레 하루 체험수업을 통해 미니 항아리를 만든 이후 도예와 함께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물레가 돌아가면서 흙의 형태가 계속 바뀌니 집중이 잘되고 재밌었어요. 또 흙을 빚어 단단한 물체를 만든다는 게 좋았고요.” 한달을 기다린 뒤 가마에서 나온 첫 작품을 보고 고씨는 정규수업을 등록해 물레로 항아리, 화병 등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만든 항아리는 수경식물 재배나 장식용으로 활용 중이다. “성격이 급해서 천천히 쌓아야 하는 핸드빌딩은 답답하더라고요. 물레는 만지는 대로 흙의 형태가 바로바로 바뀌는 게 매력이에요.” 반년 넘게 도자기를 만들며 느낀 매력에 대해 고씨는 “하다 보니 좀 더 큰 거, 좀 더 예쁜 거를 만들려고 하게 된다. 점점 더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서 퀘스트(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깨고 계단을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도자기 공예를 하기 전과 비교해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됐어요. ‘삶의 보너스’가 생긴 기분이에요.”
요가 강사 강민아(29)씨는 올해 상반기에 물레와 핸드빌딩 하루 체험수업을 각각 들으며 큰 접시, 밥그릇, 국그릇, 인센스 홀더 받침을 만들었다. 자취를 하는 강씨는 직접 쓸 기물을 만들고 싶어서 크기, 색깔 등을 숙고해 도안을 짜 갔고 자신만의 기물을 완성했다. 강씨는 “내가 지은 밥을 내가 만든 그릇에 먹을 때의 뿌듯함이 크다. 상상을 물건으로 만들면서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요즘 인터넷 쇼츠 등을 많이 보면서 뭐 하나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일이 잘 없는데, 도자기를 만들던 3시간은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신발에 도자기로 만든 ‘슈즈참’(신발용 소형 장식물)을 끼운 모습. 입세 인스타그램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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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엠제트 세대는 도자기 공예를 통해 키링·그립톡·슈즈참(신발용 소형 장식물) 만들기를 즐긴다. 인스타그램에는 ‘플로디스튜디오’ ‘도아세’ ‘입세’ 등 지난해부터 해당 수업을 진행하거나 완제품을 판매해온 공방들이 있다. 한아리도자기공방도 지난 7월부터 키링 만들기 하루 체험수업을 열고 있다. 한종수씨는 “젊은 손님들이 뭘 좋아할까, 고민하다가 접근이 쉬운 키링을 떠올렸다”고 했다. 트렌드를 반영한 만큼 완성 속도와 재료에도 차별점을 뒀다. “빨리 굳는 에어 드라이 클레이로 만들기 때문에 당일에 바로 가져갈 수 있어요. 강도는 일반 도자기보다 훨씬 셉니다.” 한씨는 키링 하루 체험수업에서는 “‘듀오’(어학 애플리케이션 ‘듀오링고’의 마스코트인 초록색 부엉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데 세상에 없는 디자인”을 많이 만들어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패 되살리며 긍정적 사고 익혀”
한아리도자기공방 수강생들과 황진희·한종수 공동원장이 만든 다양한 도자기 작품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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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층은 도자기 공예의 전통적인 팬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최영자(61)씨는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다가 38년 만인 재작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도예에 발을 들였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한국의 정이 그리웠는데 손으로 흙을 주무르면 어려서 하던 진흙 장난도 떠오르고, 동심이 되살아났어요.” 최씨는 항아리, 접시, 컵 등 생활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쓰는 재미”가 있다. “내가 만든 거니까, 내 손자국이 남은 거니까 못생겼어도 예쁘고 애착이 가죠.” 또 그는 “도자기 만들기의 매력은 마음이 잔잔해지고 근심 걱정과 잡생각이 안 든다는 거다. 만들어진 걸 봐도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맹성애(64)씨는 밥공기, 국대접 등 딸의 혼수를 직접 만들어 주고 싶어서 도예를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이 쓸 것까지 만든다. 맹씨는 직접 만든 생활 식기를 쓰는 것에 대해 “비싼 돈 주고 백화점에서 사도 다 똑같은 모양 아닌가. 내가 만든 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돈 주고 산 것보다 귀하고 고급”이라며 “친구들에게 선물할 때 특히 뿌듯하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채덕남(61)씨는 재작년 15년 키운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허한 마음을 달래려 도예를 시작했다. “도자기를 만든 뒤로 많이 밝아졌고, 위로받았어요. 공방에 가는 날을 생각하면서 설레요.”
백자토로 만든 오브제 ‘물바람’(Moolbaram). 표면에 검은색 유약으로 물과 바람을 그려 넣었다. 유정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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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도예에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경기 김포의 미술심리센터 아트리움 강경숙(53) 대표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점토라는 재료 특성상, 만들어진 형태가 마음에 안 들어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어요. 실수, 실패라고 생각한 것을 되살리는 경험을 하면서 사고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재정립됩니다. 점토를 손으로 만지며 우리가 무의식중 표출하지 못한 부정적인 것들을 발산할 수도 있고요.” 도자기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얻는 긍정적인 효능감도 있다. 강씨는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서지거나 깨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만든 작품이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구워져 나올 때까지 정성껏 돌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돌봄도 함께 이루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날 수업의 마지막 순서는 기다림이었다. 내가 만든 까미의 밥그릇과 물그릇은 일주일간의 자연 건조와 초벌구이, 사포질과 유약 바르기, 재벌구이 등 과정을 거쳐 약 한달 뒤에 최종 완성될 예정이다. 후속 과정은 공방에서 도맡아 처리한 뒤 그릇을 집으로 보내준다. 도자기로 생활 식기를 많이 만드는 만큼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 황씨는 “잘 구워진 흙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시중 제품과 마찬가지로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사용이 가능하고 오븐 사용만 피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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