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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중증 발달장애인도 자립지원하면 홀로서기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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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류승연 작가. 푸른숲 제공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발달장애인이 있었다. 늙은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쓰러져 돌아가셨고, 발달장애인은 시신 옆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어머니 곁을 지키던 아들은 배고픔에 지쳐 집 밖으로 나와 길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한 사회복지사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 그의 노숙 생활은 계속됐다.



이 같은 뉴스 속 사연이, 많은 발달장애인 부모가 자신이 자녀보다 하루 늦게 죽기를 소망하는 이유이다. 세상에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발달장애인 부모는 자녀가 자신보다 오래 살길 바라는 소망을 가질 순 없을까?





발달장애 아들 자립 해법 찾아 취재





이 화두를 오래 붙들고 해법을 고민한 결과를 최근 ‘아들이 사는 세계’(푸른숲)라는 책으로 내놓은 류승연 작가를 지난 24일 서울 공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보통 중증 발달장애인은 시설에 살지 않는 한 부모가 떠난 뒤에 삶이 막막해지는데, 취재 결과 중증 장애인도 자립지원시스템을 통해 자립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며 “이걸 널리 알리기 위해 책을 펴내게 됐다”고 밝혔다.



신문사 취재기자 출신으로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는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부모 품을 떠나서 살 수 있는 곳이 시설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국의 관련 단체와 시설, 공공기관 등의 문을 두드리고 만났다. 아무리 좋은 건물에 살고 삼시 세끼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시설에 살고 싶은 비장애인은 없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혼자서 생활을 꾸려나가기 어려운데, 독립된 집에 살면서 다양한 생활지원을 받는 게 서울시가 운영하는 ‘지원주택’ 같은 자립지원모델이다.



‘지원주택’은 집과 서비스가 결합한 모델이다. 예를 들어 한 빌라에 총 8개의 세대가 있다고 한다면, 7개의 세대에는 장애인이 따로따로 들어가서 산다. 그리고 나머지 한 세대는 ‘지원센터’다. 여기에 사회복지사와 지원인력이 상주하면서 장애인들이 각자의 생활, 재활, 직업 등을 꾸려갈 수 있도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하반기 기준 280여 호가 운영되고 있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긴 하지만, 중증 장애인도 이 모델을 통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희망적인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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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자녀가 청소년이 되면서 겪은 여러 좌절과 성장을 그린 ‘아들이 사는 세계’. 푸른숲 제공


류 작가는 지원주택 같은 자립지원모델의 확산을 촉구하는 동시에 지금의 양육·교육 방식으로는 자립생활이 가능한 발달장애인을 키워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발달장애인을 양육·교육·치료할 때 어느 정도로 ‘지시를 잘 따르는지’가 중요한 척도예요. 당사자가 지시를 잘 따르면 학교와 가정에서 이쁨받고 주변 부모들에게 부러움도 사죠. 그런데 비장애인 아이가 오직 부모님 말씀이나 선생님 말씀만 고분고분 잘 따르고 능동성 없이 커버리면 성인기의 독립적인 삶이 어렵잖아요.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달장애인을 ‘지시를 잘 따르는 아이’로만 키우면 나중에 주변 비장애인의 위력과 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좌지우지될 수 있는 위험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자립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자녀의 돌봄은 오롯이 부모가 져야 해요. 비록 말은 잘 못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고, 원하는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성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습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가 ‘능동성’이라면,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적 성취 목표는 ‘사회성’이어야 한다고 류 작가는 말했다. “한국은 일반교육에서나 특수교육에서나 인지·학습 중심의 교육을 시켜요. 그런데 성인 발달장애인의 삶을 살펴보니, 잘 살아가는 데에는 인지·학습 기능보다 사회성이 훨씬 더 중요하더라고요. 보통 엄마들이 자녀의 인지 기능 향상을 위해 어릴 때부터 자가용에 태워서 이 치료실, 저 치료실을 오랫동안 데리고 다녀요. 그런데 자립해서 살아갈 성인기 자녀에게 더 필요한 능력은 타인의 지원을 받아 지하철을 타고 모르는 사람 옆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게 힘들겠지만, 10번이고 100번이고 계속 반복해 능력을 키우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관점과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이에 따라 특수교육의 방향 또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지금 특수교육은 진도·시수 중심의 교육입니다. 지난주 과학 시간에 ‘자전’을 배웠으면 이번 주엔 ‘공전’을 배워야 해요. 진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교육에서 배제되는 학생이 발생합니다. 과연 특수교육을 하는 목적이 비장애인이 배우는 지식의 일부라도 습득하는 것일까요? 특수교육의 목표는 성인기 삶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요소를 배우는 게 되어야 합니다.”





전국 특수교육 중 ‘학생 참여형’ 추천





그가 책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특수교육 모델은 한국경진학교(발달장애 국립 특수학교)의 심승현 교사의 ‘학생 참여형 수업’이다. 심 교사는 ‘영화 제작’이라는 상황 속에서 교과 학습을 응용해 가르치고, 여러 유적지와 박물관 등을 방문하면서 실생활 밀착형 교육을 한다. 현장학습의 부담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진짜 삶을 준비시키기 위해 심 교사는 이 같은 교육을 고집한다.



올해 류 작가는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지난 9월에는 그의 전작인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을 극영화화한 ‘그녀에게’가 개봉한 데 이어 이달에는 책까지 출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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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연 작가는 최근 펴낸 ‘아들이 사는 세계’를 통해 중증 발달장애인도 부모 품을 떠나 자립할 수 있는 세상을 촘촘히 그려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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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이 15년 전 정치부 기자였던 그가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을 낳아 키우게 되면서 자녀의 장애를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발달장애 자녀 키우기 1부작’이었다면, 이번 책은 자녀가 청소년이 되면서 겪은 여러 좌절과 성장을 그린 ‘발달장애 자녀 키우기 2부작’ 정도로 볼 수 있다.



책은 장애 어린이와 달리 덩치가 큰 청소년 장애인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거부적인지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숱한 절망의 순간을 겪었음에도 그는 “그래도 15년 전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는 지금 한국의 현실이 많이 나아졌다”며 “15년 뒤에는 더 많이 나아질 것이기에 그때 더 나아진 세상 속에서 아이를 자립시키기 위해선 지금부터 양육과 교육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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