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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일)

불완전판매 책임 제대로 물으려면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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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금융위원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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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횡령과 불완전판매가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한 은행에서 지주회사 회장의 친인척에게 불법 대출이 이루어진 사건까지 드러났다.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 입장에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할 유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신분 제재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할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옛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른 신분 제재는 그러한 유인을 전혀 제공하지 못했다. 이 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고 준수할 책임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올해 1월 금융사지배구조법이 개정되었다. 앞으로 금융회사는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하는 책무 구조도를 자발적으로 도입해야 하고, 책무 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소관 영역에서 내부통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관리 조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를 실행하지 않거나 불충분하게 실행한 임원에 대해서는 신분 제재가 부과된다.



하지만 신분 제재만으로 충분한 유인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원이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문책 경고 처분을 받아 일정 기간 금융회사의 임원이 될 수 없더라도 이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이 확정될 때까지 상당 기간 연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옛 금융사지배구조법 하에서는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은행장들이 있었다. 법이 개정되었다고 이 방법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신분 제재만으로는 부족하고, 금전적인 제재가 병행되어야 한다. 즉, 횡령과 불법 대출로 금융회사가 직접적인 손해를 보거나 불완전판매에 따른 금융소비자 배상금 지급,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부과받은 과태료 납부로 손해를 본 경우 책임 있는 임원이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때 활용될 수 있는 소송이 주주대표소송이다. 즉, 금융회사 주주가 금융회사를 대신해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활용될 수 있다. 감독 의무 위반만으로 배상 책임이 인정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한때 있었으나 2021년 대법원 판결은 이사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해 감독 의무를 위반했을 때도 배상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개정된 금융사지배구조법도 이사회에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감독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어 청구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회사는 금융지주회사의 완전 자회사가 대부분이다. 유일한 주주인 금융지주회사가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금융지주회사 회장이나 이사가 금융 자회사의 대표나 이사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소송을 제기할 유인이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상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제도가 다중대표소송제도다. 이 소송제도에 따르면 자회사 아닌 모회사의 주주일지라도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즉, 금융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금융지주회사의 주주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지난 4년간 다중대표소송은 단 한건도 제기된 적이 없다. 정부는 소 제기에 필요한 주주의 지분 요건을 주주대표소송과 같은 0.01%(6개월 보유)로 발의했으나 국회 협상 과정에서 0.5%(6개월 보유)로 상향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무려 50배 올라간 것이다. 한편, 금융회사 이사를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은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른 특례로 지분 요건이 0.001%(6개월 보유)인데 다중대표소송에 관해서는 이러한 특례 조항이 없다. 다중대표소송 요건이 주주대표소송 요건의 무려 500배인 것이다.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상법과 금융사지배구조법을 개정해 다중대표소송 제기에 필요한 지분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우선 비금융회사의 경우 2020년 정부 발의안처럼 0.01%(6개월 보유)로 완화하고, 금융회사의 경우 0.001%(6개월 보유)로 완화해야 한다. 더 나간다면 미국처럼 주주대표소송과 다중대표소송 모두 단독주주권으로 만들어 손해 발생 당시 1주만 있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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