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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국제비엔날레와 기후위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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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인간은 미래를 예견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지구를 파괴함으로써 그 자신도 멸망할 것이다”(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1950년대 알버트 슈바이처가 우려했던 예언처럼 우리가 사는 지구는 유례없이 극심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이제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서 생태계 붕괴, 식량위기, 질병, 재난, 분쟁과 갈등을 초래하며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협한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진행된 인간 중심의 활동이 일으킨 지구 환경의 위기라는 점에서 지질학적 개념인 ‘인류세(人類世)’ 담론과도 관련이 깊다.



지구 위기를 경고하는 비엔날레

신음하는 지구를 달래는 ‘진혼곡’

“국제비엔날레가 탄소 배출” 모순

기후위기의 실천적 해법이 과제

199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비엔날레가 성행하면서, 국제비엔날레는 이러한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중요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후반의 비엔날레 담론이 주로 후기식민주의와 정체성, 그리고 지구적 불평등에 집중했다면, 21세기에는 기후위기와 같은 인류 생존의 문제를 논의하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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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후퍼 슈나이더, 지구오염과 생태계 붕괴를 표현한 작품, 2024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사진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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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2014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에서 니콜라 부리오는 ‘거대한 가속(The Great Acceleration)’이라는 주제로, 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속화된 속도에 주목하였다. 이어 그는 2019년 이스탄불 비엔날레에서 거대한 플라스틱 섬을 ‘일곱 번째 대륙’으로 상정하며, 인간의 환경파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냈다. 2020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에서는 브뤼노 라투르와 마르탱 기나르가 ‘너와 나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지 않다’는 전시 주제로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인류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 정치적, 사회적 불협화음, 갈등을 다루며, 공통의 지구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최근까지 각종 국제비엔날레, 미술관, 갤러리 등 다양한 전시공간에서 인류세, 기후위기 담론은 블랙홀처럼 작가들과 기획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주제가 되고 있다.

이번 2024년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핵심도 기후위기와 인류세에 관한 내용이었다.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는 이미 타이베이(2014)와 이스탄불(2019)에서 이 주제를 직설적인 화법으로 다룬 바 있다. 2022년 베니스 특별전 ‘플래닛 B-기후변화 그리고 새로운 숭고’ 또한 그가 이 분야의 숙련된 기획자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주제인 ‘판소리, 모두의 울림’은 직접적인 의도를 배제하고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일반 대중과 언론에서 주제를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세계적인 기획자의 중복 초청은 국제비엔날레의 문제점 중의 하나였고, 기후위기 담론 역시 에디션만을 달리한 채 반복되고 상투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부리오는 그 해법으로 이번 전시에서 지역성과 ‘판소리’로 호응하면서 인류세 전시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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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부겐후트, 각종 폐기물을 이용한 조각 설치작품, 2024년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 [사진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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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는 작가들로 전시 출품작을 제한한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그의 경륜만큼이나 마치 한편의 오페라를 감상하는 듯한 짜임새 있는 연출을 보여주었다. 폐쇄 공포를 자극하는 도입 장면부터 가정 폐기물, 동물의 털, 먼지로 구성된 거대한 조각, 사막이나 동굴, 원시 자연의 생태계와 인간과 비인간, 고요와 분쟁, 폐허의 흔적이 전시장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출품작들은 경계를 넘나들며 낯설고 이상한 신호와 기계음, 서로 다른 음향이 간섭하고 충돌, 중첩되기도 한다. 부리오는 도록 서문에서 판소리를 “생태계의 소리”라고 부연 설명했다. 전시는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뿐만 아니라 존재의 불안, 장소의 역사·정체성, 후기식민주의 고통과 아픔까지 아우르고자 한다. 이러한 ‘진혼곡’ 같은 울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비엔날레 전시가 지닌 역설적인 모순과도 마주하게 된다.

지구촌 전역에서 약 300개의 크고 작은 국제비엔날레가 개최되고, 한국에서도 약 15개의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비엔날레는 작품 포장과 해외 운송, 전시 연출과 조명뿐만 아니라, 폐기물 처리와 방문객 및 참가자의 이동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 발자국을 유발한다. ‘아트 리뷰(Art Review)’는 니콜라 부리오와 광주비엔날레 관련 인터뷰에서 이러한 기후위기 담론과 실천적 모순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도 환경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하지만, 비엔날레가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파리기후협약’만큼 효율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의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조직, 갤러리 연합까지 기후위기에 대응한 탄소중립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인 해법은 여전히 미흡하다. 비엔날레의 난립 현상과 탄소 배출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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