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AI 반도체 주문 휩쓸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주가가 고공행진한다. 10월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연출하면서 시가총액이 어느새 1조달러를 훌쩍 넘겼다.
TSMC는 주요 빅테크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주문을 휩쓸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향후 AI 반도체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투자 심리를 자극하며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반도체 불황을 전망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부정적인 분석을 내놓은 모건스탠리마저도 TSMC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두 달 새 17% ‘쑥’
시총 1조달러 돌파
TSMC 주가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10월 들어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10월 23일 TSMC는 전일 대비 2.4% 오른 200.8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0월 주가 상승폭은 16%에 달한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TSMC 주가 흐름이 더욱 돋보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인텔 주가는 10월 각각 4%, 6%씩 하락했다.
주가 상승에 힘입어 TSMC 시가총액도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10월 17일(현지 시간) TSMC는 205.84달러로 장을 마감하며, 시가총액이 1조675억달러(약 1463조원)를 찍었다. 지난 7월 장중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적은 있지만, 종가 기준으로 넘어선 건 처음이다.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건 반도체 기업으로는 엔비디아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 기업으로는 최초다.
최근 TSMC 주가 강세 배경은 단연 실적이다. 10월 들어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블랙웰’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소식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TSMC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실적 기대감에 서서히 오르던 주가는 TSMC가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기록하자 상승폭을 키웠다.
TSMC는 올해 3분기 매출 235억400만달러(약 32조원), 영업이익 111억6200만달러(약 15조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7%, 영업이익은 58% 증가했다.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오른 101억달러(약 14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시장조사업체 LSEG가 제시한 추정치 대비 8% 이상 높은 수치다. TSMC의 매출 총이익률도 58%를 기록해, 회사가 목표로 한 56%를 웃돌았다.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은 각각 48%, 43%로 시장 예상을 뛰어넘었다.
AI와 스마트폰 수요 강세가 호실적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고성능 컴퓨팅(HPC) 매출 비중이 2분기에 이어 50% 이상을 유지했고, 스마트폰 매출은 전분기 대비 16% 증가했다. 선단 공정의 매출 기여도도 확대됐다.
특히 선단 공정 수요가 지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TSMC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블랙웰’을 비롯해 애플, 퀄컴, 미디어텍 등 고성능 칩을 일괄 수주한다. 주력인 3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와 5나노, 첨단 패키지 공정 설비가 100% 가동되고 있음에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TSMC는 3분기 3나노와 5나노 공정의 주문 가격을 8%가량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TSMC가 과감히 주문 가격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압도적인 지위 덕분이다.
올해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62%로 13%로 2위를 기록한 삼성전자와 격차를 50%포인트 가까이 벌렸다. 2년 사이 두 회사 점유율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2022년 2분기 기준 TSMC와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각각 56%, 13%였다. 이 격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져 TSMC의 점유율은 62%로 늘어나고, 삼성전자는 10%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그치지 않고 TSMC는 생산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AI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첨단 패키징 공정은 2025년 월간 7만~8만장에서 2026년 15만~16만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2025년 상반기로 예정된 미국 애리조나 공장도 앞당겨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리조나 공장에서 최근 4나노 공정을 통해 애플 아이폰16 생산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애리조나 공장의 조기 가동으로 향후 건설될 최첨단 공장 가동 일정도 당겨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당분간 AI 칩 수요가 뒷받침되며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높은 점유율은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TSMC 실적 발표는 글로벌 AI 수요 둔화 우려를 해소시켰다는 판단”이라며 “AI 칩 수요가 지속되는 가운데 첨단 패키징 증설에도 불구하고 초과 수요가 유지되며 TSMC에 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스마트폰 등의 수요 감소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과잉으로 반도체 시장 불황을 예상한 모건스탠리도 TSMC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지난 9월 HBM 공급 과잉 가능성을 언급하며 HBM 제조사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종전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54%가량 낮춘 바 있다. 삼성전자 목표주가도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내렸다.
반면 TSMC에 대한 의견은 상반된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TSMC 목표주가를 지난 9월 1220대만달러에서 1280대만달러로 올린 데 이어, 최근 1330대만달러까지 추가로 상향했다. 10월 24일 종가 대비 약 25%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를 통해 “TSMC 경영진은 향후 5년간 회사의 연평균 성장률이 15~2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반도체 공급망에서도 TSMC의 성장세는 감지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TSMC가 엔비디아를 넘어 AI 산업의 장기 승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가 조정 가능성도
블랙웰 초기 수요 중요
다만 최근 주가 상승폭이 크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가격 조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실적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면서 주가에 적용되는 배수(멀티플)가 상승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TSMC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연초 17배에서 최근 23배까지 높아졌다.
이에 단기적으로 주가가 약세로 전환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주가 강세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가 변동성이 커지며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최근 높아진 멀티플을 감안해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공장 건설도 투자자가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며 “해외 공장 수율을 대만 현지 수준까지 점차 높여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차익을 실현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TSMC 주식을 보유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여전히 AI 칩에 대한 수요가 견고한 데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인 블랙웰에 대한 기대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가 급등에도 여전히 TSMC 주식을 매수하기 매력적인 가격으로 생각한다. 4분기 블랙웰의 초기 주문이 꽤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실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인이다. 또한 현재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PER이 24배라는 점에서 TSMC의 멀티플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차익을 실현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TSMC를 보유해도 괜찮다는 의견이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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