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무혐의 처분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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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명품 가방을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불러준 앵커가 한국방송(KBS)의 사장 후보로 최종 낙점되었다. 이전 사장들에 비해 유독 젊은 나이의 그가 사장 후보로 나설 때부터 여기저기서 설마 하는 걱정이 들리더니만,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된 모양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참 세상은 ‘이븐’하지 않다. 그동안 쌓아 올린 술잔의 무게가 무색하게, ‘조그마한 파우치’ 한방에 현 박민 사장의 연임이 무산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인기 있는 ‘흑백요리사’의 한 부분을 빌려보자면, ‘이븐하지 않네요. 당신은 탈락입니다.’
속절없이 밀려버린 박민 사장이 얼마나 아쉬운 마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정작 분노해야 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일 것이다. 누군가는 통정매매로 큰돈을 번 정황이 있음에도 그저 우연이거나 몰라서 그런 것이니 무혐의로 처리되고, 명품 가방을 받아도 ‘조그마한 파우치’ 정도로 별일 아니라고 해주는 방송을 보다가, 그냥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속으로 ‘몹쓸 것들’ 하며 분을 삭이는 것이 작금의 모습이다. 곧 좋아질 거라던 수출이 다시 감소하며 3분기 경제 성장률이 쇼크에 빠져버린 경제는 물론이고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안보 불안이 고조되어 있는 속에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그야말로 빵점이고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엉망이 되어버린 데에는 여러 책임이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결국 검찰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부의 부정과 무능에 제동을 걸어주어야 하는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제구실을 못 하는 것도 나중에 따져봐야 하는 일이지만, 결국 그 모든 책임과 비난은 검찰에 우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사권과 독점적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법 집행에서 최소한의 공정성과 정당성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다른 국가 기관들과 사회적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연쇄적 반응을 점화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서 현재의 정부가 태어나고 자라난 온실이 바로 검찰이며, 수많은 사고와 무능으로 점철된 현 정부가 변변한 사과나 반성 한번 없이 지금까지 눈 부라리고 큰 소리 내고 있는 것도 결국은 검찰 권력의 머리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국민 대부분이 이 사고 현장의 목격자이자 증인이라는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의혹에 대해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뒤, 한겨레신문은 ‘검찰이 자멸한 날’이라고 선언하고 ‘해체 수준의 검찰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비단 한겨레신문뿐만 아니라, 보수언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이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며 검찰이 ‘김건희 변호인’이냐고 비판한 것은, 이제는 우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검찰이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국민 상식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쉽게 말도 꺼낼 수 없었던 검찰 해체라는 목소리까지 이제는 다반사로 터져 나오는 걸 보니, 이것도 새옹지마라고, 못난 정부의 덕분이라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
검찰에 대한 비판 속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검찰에 대한 언론의 모습이다. 현재의 검찰이 우리 민주주의의 체계를 위협할 정도의 무소불위한 힘을 가진 것은 그저 법률적 기소권과 수사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균형한 법률적 권한이 절대권력의 하나의 기둥이라면, 기꺼이 검찰 권력의 또 다른 기둥이 되어서 국민에게 뽀얗게 단장한 검찰의 모습만 비춰준 것이 바로 우리 언론이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초동 편집국장’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이, 검찰은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겁도 주어 가며 언론을 다루는 데 매우 유능했고, 이에 비해 이른바 ‘법조라인’이라는 기자들이 오랫동안 검찰을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공손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제 와서 언론이 ‘검찰은 죽었다’고 소리 한번 지르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언론도 답을 찾아야 한다. 검찰발 정보를 사실로 단정하고 ‘받아쓰기’하는 관행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기자실에 대못 박아서 폐쇄하는 건 안 된다고 했으니, 그럼 이제 기자단에 대한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 언론 스스로 찾고 국민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책무성(accountability)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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