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가 크리스틴 안. 연합뉴스 |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성들의 비무장지대(DMZ) 걷기’를 기획하는 등 평화운동을 계속해온 크리스틴 안 ‘위민크로스디엠지’(WomenCrossDMZ) 공동대표가 입국을 거부당했다.
한국계 미국인 평화운동가인 크리스틴 안 대표는 10월30일(현지시각) 호놀룰루의 다니엘 케이(K). 이노우에 국제공항에서 한국 출입국 당국의 결정을 이유로 정당한 설명이나 이유를 듣지 못한 채 탑승을 거부당했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안 대표는 31일 한겨레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시아나항공 탑승 수속을 밟고 있는데 직원이 내 탑승권이 인쇄되지 않는다면서 한국 출입국 당국에 연락을 해보더니 내가 한국 입국이 금지되었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11월2일 경기 파주시에서 경기평화교육센터가 주최하는 ‘국제청년포럼 피스리더 2024’에 참가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또 한국의 언론인, 학자, 평화운동가,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주한 미국·캐나다 대사관 관계자들과도 만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이 민주국가인데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침묵시키려 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안 대표는 지난 2015년 5월 세계적인 여성인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매리어드 맥과이어, 리마 보위 등 30여명의 여성 평화운동가와 함께 비무장지대를를 가로지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성들의 행진’을 기획했다.
하지만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당시 안씨가 김일성 생가를 방문하면서 김일성 일가를 찬양했다고 보도하면서, 국내에서 안씨의 종북주의 논쟁이 일었다. 스타이넘이 “북한에서 있었던 일은 사실이 아니며, 노동신문이 그렇게 과장한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고 사과를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한국 보수 정부는 이를 계속 문제 삼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에도 법무부는 “국익과 공공의 안전을 위협할 충분한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안 대표의 입국을 금지했다. 그러다 ‘뉴욕타임스’ 취재 등으로 국제적인 비판이 확산되자 이를 철회했다.
안 대표는 “2015년 여성들의 평화행진을 조직한 데 대한 보복으로 박근혜 정부가 2017년에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뉴욕타임스가 그것을 취재했고, 문재인 정부가 입국 금지를 해제했다. 2022년 한국에 가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로부터 상을 받았는데 입국에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2015년 크리스틴 안과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여성·평화운동가들이 DMZ를 넘어 행진하고 있다. 파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크리스틴 안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평화운동단체인 위민크로스디엠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한반도의 긴장이 위험할 정도로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의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이번 입국 금지 조치를 비판했다.
세계적인 평화운동가들도 윤석열 정부의 조치에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스타이넘은 위민크로스디엠지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한국과 세계가 이렇게 위험에 처한 시기에 크리스틴 안이 시민 외교와 평화 구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윤석열 정부의 결정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 민주주의 후퇴의 신호탄”이라면서 “2015년 크리스틴 안과 함께 DMZ를 넘었을 때, 우리는 평화로운 공존을 향한 남과 북의 한국인들의 깊은 염원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라이베리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레마 보위도 “74년이나 지속된 분쟁이 시민들의 행동을 통해 종식될 수 있다는 크리스틴의 용기와 끈기, 믿음은 지금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빛과 희망”이라고 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목소리와 관점이 필수적인데, 크리스틴 안의 한국 입국이 금지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안영욱 경기평화교육센터 사무총장은 “경기도의 지원으로 열리는 국제 청년 평화포럼에 크리스틴 안을 기조연설자로 초청했다”며 “한국과 전세계 청년들이 모여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논의하는 회의에 왜 안 대표가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