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4팀 김성은 경위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4팀 김성은 경위. /사진=본인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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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
지난달 13일 오후 8시40분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0112번으로 신고가 접수됐다. 0112번은 비정형 신고로, 신고자 위치, 인적사항, 신고이력 등을 확인할 수 없는 번호를 말한다. 신고자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유일한 단서는 지금 걸려온 전화 한 통 뿐이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22년차 베테랑 김성은 경위였다. 신고자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다가 조심스레 아버지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김 경위가 무슨 일로 아버지와 통화를 원하느냐고 묻자 신고자는 마지막으로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통화'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김 경위는 긴장 상태가 됐다. 머릿 속에는 '이 전화는 절대로 끊으면 안된다' '무조건 길게 통화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40분 동안 삶을 포기하려는 자와 구하려는 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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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통화하려면…" 베테랑 경찰의 임기응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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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애플워치에는 긴급 통화 기능이 있다. /사진=독자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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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신고자 위치를 특정하는 일이었다. 김 경위는 "무슨 일이냐. 아버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말을 걸었다. 신고자는 아버지 연락처를 알려줬지만 곧바로 3자 통화를 진행하면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김 경위는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그는 경찰이 지금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받는다고 둘러댔다. 신고자는 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을리가 없다고 했다. 김 경위는 최근 보이스피싱 전화가 많아서 확인되지 않는 전화를 안받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김 경위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아버지와 통화하려면 신고자가 누구인지 알려야 한다며 이름을 물었다. 신고자가 이름을 답하자 "전화번호도 알려줄 수 있느냐. 지금 전화 끊기면 아버지와 나중에 통화 연결해드리고 싶어도 못한다"고 했다.
신고자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산에 올라오기 전 휴대폰을 버렸다고 했다. 신고자는 산 정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기 전 애플워치 긴급 통화로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김 경위가 어떤 산에 올라갔느냐고 묻자 신고자는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김 경위는 순간 인왕산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현장 경찰에게 인왕산 일대를 수색해달라고 다급하게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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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포기하지 말아요" 신고자를 구하기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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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수성동 계곡 모습.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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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버는 것은 김 경위 몫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전화를 안받아서 경찰이 집에 찾아가려고 한다"며 집 주소를 알려달려고 유도했다. 신고자는 반신반의한 목소리로 집 주소를 알렸다.
신고자는 언제쯤 연결이 되느냐고 재촉했지만 김 경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 어떤 속상한 일이 있느냐. 어떤 일이 있어도 삶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신고자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김 경위는 "아버지를 모시고 3자 통화할 수 있는 경찰서로 이동 중이다. 제발 전화를 끊지 말라"고 했다.
그 사이 현장 경찰은 수성동 계곡 일대에서 신고자 휴대폰을 발견했다. 신고자는 멀리서 빨간 불빛이 보인다고 했다. 김 경위는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자'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신고자는 유언을 남기겠다고 말했고 김 경위는 그제서야 아버지와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신고자는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잘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 순간 현장 경찰과 구급대원이 신고자를 극적으로 발견했고 안전하게 구조했다.
김 경위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바로 통화를 연결하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신고자가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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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의 날… 사건 현장의 첫 순간을 마주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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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4팀 김성은 경위. /사진=본인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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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위는 112치안종합상황실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경찰이다. 따뜻한 목소리와 성실한 자세는 그녀의 강점 중 하나다. 그는 평소 근무 일지에 112 신고 내용을 적고 어떤 식으로 질문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지 고민한다.
그는 "죽음은 그 순간만 모면하면 괜찮아진다"며 "신고자가 죽음보다 아버지 통화에 집중하도록 생각을 전환시키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은 하루 평균 1만1000건의 신고를 접수한다. 이 중 비정형 신고는 약 0.8% 정도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신고 유형을 보면 보호조치가 가장 많았고 위험방지, 시비 순이었다.
김 경위는 "112 신고는 사건을 마주하는 첫 통화이자 마지막 통화가 되기도 한다"며 "신고자 위험 상황을 현장 경찰에게 빠르게 전파하고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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