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달 31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크레이그 랜치 원형극장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파이저브 포럼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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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할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이기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숫자와 사전투표에서 확인되는 열정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젠 오말리 딜런 카멀라 해리스 선거캠프 위원장, 10월 28일)
“투표해야 한다. 우리가 크게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믿지 마라.”(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1일 미시간주 유세)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메시지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이제까지 민주당은 ‘앓는 소리’ 전문이었다. 전당대회를 거치며 해리스가 파죽지세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던 시기에도 ‘박빙이거나 지고 있다’는 게 공식입장이었다. 반면 공화당은 ‘허풍’ 전문이었다. 미시간주 유세 발언 일주일 전 트럼프는 미시간·네바다·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심지어는 통상 민주당 우세로 분류되는 주들에서도 “크게 앞서고 있다”고 자랑했다. “조작하기에는 너무 큰 격차”(Too big to rig)가 공화당과 지지자의 대표 구호였다.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반대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서부 예언자’의 예측 “해리스가 뒤집었다”
2일(현지시각) 아이오와 주에서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선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47% 대 44%로 오차범위(±3.4%포인트) 내지만 충격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중서부의 예언자’로 불리며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여론조사 전문가 앤 셀저가 이끄는 셀저 앤 컴퍼니가 수행한 조사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한 쪽이 이기는 미 대선에서 민주당은 226명, 공화당은 219명을 사실상 확보했다는 전제하에 선거운동이 이뤄진다. 아이오와(6명)는 공화당의 ‘확보된 선거인단 219명’에 포함되는 곳이다. 민주당이 가져올 경우 ‘12’의 효과가 나는 이유다. 아이오와는 1988년부터 2012년까지 7차례 대선에서 한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당 후보를 뽑았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는 9%포인트, 2020년 대선에서는 8%포인트 차이로 트럼프를 뽑았다.
이번 여론조사는 4년 전의 데자뷔를 떠올리게 한다. 2020년 대선 당시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압승을 점쳤다. 아이오와에서도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와 접전을 펼칠 것이라 봤다. 바이든이 선거일을 4일 앞두고 아이오와를 찾았을 정도였다.
오직 셀저만 ‘트럼프가 아이오와에서 큰 격차로 이길 것’이라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실제 바이든은 아이오와에서 9%포인트, 오하이오에서 8%포인트 차로 패했고,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에서도 예상과 달리 근소한 차이로 신승했다. ‘아이오와에서 참패한다’는 셀저의 예언은 ‘바이든의 중서부 고전’을 암시한 신호였던 셈이다. 셀저는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가 아이오와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크게 앞설 거라는 드문 예측을 내놨고,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당시 트럼프는 중서부 주들에서 약진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섰다’는 이번 셀저의 조사 결과는 ‘중서부에서의 해리스 약진’을 암시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셀저의 지난 6월 조사에서 바이든을 18%포인트 차로 앞섰던 트럼프는 지난 9월 조사에서 해리스를 겨우 4%포인트 앞서는 데 그쳤고, 이번에 역전당했는데 이런 흐름은 나이 많은 무당파 성향 여성들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조사에서 이들은 해리스와 트럼프를 각각 57% 대 29%로 지지했다. 지난 9월 같은 조사에서 해리스는 이들 그룹에서 단지 5%포인트 앞섰다.
폴리티코는 “설혹 해리스가 아이오와에서 패한다 해도 이번 조사는 위스콘신 등 유사한 인구 구성을 가진 중서부 경합주에서 해리스가 예상보다 더 강한 지지를 받는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셀저는 여론조사 회사들에 거의 ‘예언가’와 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면서도 “나는 여전히 트럼프가 아이오와에서 승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이오와 주.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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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만에 “승리 확률 다시 동률”
다소 주춤해진 ‘트럼프 우세’ 흐름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는 건 사실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31일자사의 미국 대선 결과 예측 모델에서 해리스와 트럼프의 승리확률이 각각 50%로 동률을 이뤘다고 보도했다. 전날 승리확률 44% vs 56%에서 하루 만에 각각 6%포인트씩 오르고 내렸다. 2일 해리스 승리확률은 52%로 더 올랐다.
이런 결과는 경합주 중 미시간과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에서 예상 득표율이 평균 0.4%포인트 올랐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작은 수치이지만 해리스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평균 6%포인트 높이는 데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불과 열흘 전 ‘트럼프-해리스’ 맞대결 성사 이후 처음으로 트럼프가 승리 확률 54%를 기록하며 해리스(45%)를 제쳤다고 보도한 곳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1일 해리스 승리 예측을 내놨다. 여론조사기관 유거브와 함께 지난달 25∼31일 미국 7개 경합주의 등록유권자 6600명을 조사한 결과 7개 경합주 가운데 4곳에서 해리스 후보가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섰다는 점이 예측의 근거다. 위스콘신에서 4%포인트,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주에서 각각 3%포인트씩 해리스 후보가 앞섰다. 나머지 경합주 중 네바다에서도 해리스가 1%포인트 앞섰다.
‘샤이 트럼프’ 말고, ‘샤이 해리스’ 있을까
해리스 우세를 예측하는 쪽에서는 ‘샤이 해리스가 있다’고 주장한다. 폴리티코는 ‘해리스 지지에 있어서 여론조사가 틀릴 수 있는 이유’라는 글에서 “여론조사 기관들이 트럼프 지지층을 포착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처럼, 해리스 지지층을 포착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그가 후보가 된 지 100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화당의 니키 헤일리 지지층은 잠재적 ‘샤이 해리스’의 대표격으로 분류된다. 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 경선 때 헤일리를 지지한 이들 중 66%가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고, 59%가 2020년 트럼프 지지자였다. 이들 중 45%만 올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 13%에서 해리스 지지 36%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여론조사 기관들은 숨겨진 트럼프 지지층을 찾기 위해 과거 투표 경력을 묻고, 이를 토대로 답변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많이 쓴다. 응답자 비율이 지난 실제 대선 때 트럼프 득표율보다 적을 경우 가중치를 더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샤이 트럼프’를 찾는 데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과거 기권했거나, 제3의 후보를 지지했는데 이번 선거에는 참여하려는 이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부동층’으로 분류된 이들 중 상당수가 ‘샤이 해리스’라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원 중 가자 지구 전쟁에 대한 당의 접근 방식에 불만을 품고 지지를 철회한 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가 실제 기권할 가능성은 작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전국적으로 약 70만명에 달한다.
폴리티코는 “‘샤이 트럼프’를 찾아내기 위해 진행된 세밀한 노력이 해리스의 잠재적 지지자들을 발견하는 데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공화당 지지층을 과소평가하던 관행이 이제는 민주당 지지층을 과소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실수”라며 “만약 여론조사에 포착되지 않은 ‘샤이 해리스’들이 경합주에 거주한다면 여론조사는 2016년과 2020년처럼 틀릴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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