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 2024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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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과 영부인이 정치브로커와 소통한 녹음과 문자가 공개된 건 그 자체로 국민께 대단히 죄송스러운 일”이라며 “국민의 큰 실망은 정부·여당의 큰 위기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면 솔직하고 과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솔직하고 소상하게 밝히고 사과를 비롯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뭔가 감추고 빼고 더하려고 하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 대표는 11분 14초 분량의 모두발언 가운데 7분 35초를 ‘명태균 사태’의 정치적 수습책을 조목조목 요구하는 데 할애했다. 한 대표는 우선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참모진을 전면 개편하고 심기일전을 위한 과감한 쇄신 개각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에 대해선 “즉각 대외활동 중단”을 촉구했다.
한 대표가 이날 쇄신 범위를 국정 전반으로 확대하면서 수위 높은 메시지를 낸 것은 더는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이 대통령 탄핵과 임기 단축 개헌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오는 14일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예고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조처를 해야만 여권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이날 쇄신 조치의 ‘데드라인’을 제시하진 않으면서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또 “이 사안은 적어도 국민께 법리를 먼저 앞세울 때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통화 내용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밝힌 데 대한 비판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가 고강도 쇄신의 명분으로 야권의 탄핵 공세 차단을 내세운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 대표는 민주당의 총공세를 두고 “이재명 대표의 중대 범죄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아예 헌정을 중단시켜 버리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어떤 이름을 붙인 헌정 중단이든 국민의힘이 막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면 막을 수 없다. 그 뻔히 속 보이는 음모와 선동을 막기 위해선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정 갈등 상황을 놓고 야권의 탄핵 공세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보수 지지층이 가장 우려하는 대통령 탄핵을 막아낼 유일한 방안이 ‘쇄신’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의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 대독을 들으며 김기현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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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윤계도 가세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국면 전환을 위해 뭐든지 해야 할 때”라며 “대통령실은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무거운 책임을 갖고 당정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을 향한 한 대표의 메시지는 당초 윤 대통령이 명씨와 나눈 대화에 대한 유감 표명과 특별감찰관 추천 필요 등 기존 입장의 연장선 수준으로 검토됐다. 하지만 지난 1일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주말 사이 한 대표가 중진의원들을 포함한 당 안팎의 인사들로부터 명태균 리스크에 대한 심각성을 직접 청취하면서 ‘사과 촉구’로 선회했다고 한다. 한 중진의원은 “공개적으로 말을 못할 뿐, 지금 당정이 모두 위기라는 데 다들 공감하고 있다”며 “당의 요구를 대통령실이 압박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날 한 대표의 발언을 두고 여권에서는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비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대표가 다양한 요구를 하면서도 야권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법’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정부를 향해 “당도 최선을 다해 끝까지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 친한계 의원은 “위헌적인 특검법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한 대표의 기본 입장”이라며 “정쟁만을 위한 야당의 정치공세는 끝까지 방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내에서 대통령실을 향한 압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성원 의원은 이날 오전 추경호 원내대표 주재 3선 의원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상황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타개하고 돌파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논의했다”며 “ 국민 눈높이에 맞춰 함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으냐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했다. 다만 일부 친윤계는 “대통령이 투항하는 모양새가 돼서는 안 된다”, “고칠 건 고치더라도 지금 사과는 아니다”라는 의견도 냈다고 한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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