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5 (화)

[투데이 窓]SNL코리아의 실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임대근(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대화가 필요해'를 좋아했다. 가부장제에 찌든 아버지(김대희), 어딘가 어수룩한 어머니(신봉선), 철모르는 아들(장동민)로 이뤄진 가족의 좌충우돌 이야기다. 아버지는 자기 힘만 믿고 강짜를 부리지만 결국에는 어머니와 아들에게 혼쭐이 난다. 예상치 못한 통쾌한 힘의 전복이 이뤄지면 관객은 박장대소한다. 젠더, 세대, 언어 등 세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잘 적용한 에피소드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강자와 약자. 사람의 종류는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시 넷으로 나뉜다. 약자면서 약자를 응원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강자지만 약자를 돕고 배려하면 인간다움의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 된다. 강자면서 강자를 지지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약자에 대한 억압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결과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약자면서도 강자의 논리만 따라 살면 참 바보 같은 일이다.

SNL코리아는 이런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쓸데없는 논란을 만들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수상소감을 따라 하면서 과장된 표정과 말투를 연출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걸그룹 뉴진스의 하니를 연기하면서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를 흉내 냈다. TV 드라마 '정년이'의 주인공을 모방한 '젖년이' 캐릭터는 지나친 성적 대사와 행위를 묘사했다.

탈식민주의자 호미 바바는 '흉내 내기'(mimicry)를 혼종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봤다. 식민지에 사는 약자는 제국이라는 강자를 모방해서 흉내 낸다. 그러나 식민지의 약자가 제국의 강자와 완벽하게 같아질 수는 없다. 제국이 되고자 하지만 비슷하기만 할 뿐 영원히 성취할 수 없는 혼종의 상태가 이어진다.

SNL코리아는 그동안 흥미로운 패러디로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손흥민 선수는 '신도림 조기축구회 토트넘&뮌헨' 편에 직접 출연해 '조기축구의 어려움'을 연기했다. 코미디언 이수지는 '흑백요리사'에서 주목받은 '요리하는 돌아이'를 매우 비슷하게 흉내 냈다. 손흥민의 연기는 강자를 무력화하면서 약자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수지의 분장은 도전에 나선 약자를 응원하는 패러디였다. 그래서 모두 공감했다.

흉내 내기는 완벽히 같아질 수 없는 강자에 대한 모방이다. 약자는 이 바보 같은 모방을 통해 자기 안에서 나와 남이 뒤섞인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뒤섞인 상태는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제삼자가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비슷하긴 하지만 진짜가 아닌 '사이비' 정체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SNL코리아는 대중이라는 약자를 대신해서 흉내 내기를 감행한다. 대중을 대신하는 연기자가 우스꽝스러워지기만 하면 대중은 결코 공감하지 못한다. 흉내 내기의 과정과 맥락 위에서 거꾸로 강자의 모순을 드러내야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힘 있는 이들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이 폭로되는 순간 많은 약자는 통쾌한 폭소를 터뜨린다. 풍자와 패러디는 단지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둘 사이의 유사성은 꼭 필요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권력관계의 전복을 보여주지 못하면 실패한다.

소설가 한강, 뉴진스의 하니, 정년이에 대한 SNL코리아의 흉내 내기는 풍자와 패러디의 한 가지 조건만 생각했다. 한강도, 하니도, 정년이도 타인을 억압하는 강자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겉모습은 비슷하게 연출됐을지 몰라도 흉내 내기를 통한 풍자와 패러디의 본질에 관한 고민이 빠져 있었다.

우울한 시대, 대중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코미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를 거듭해 온 SNL코리아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열린 기획을 하다 보면 때로 과도한 실수가 나올 수 있다. 개그콘서트가 대중의 외면 속에서 폐지된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잘 되새겨 권력관계의 전복이라는 풍자와 패러디의 본질을 더욱 잘 이해함으로써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