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아랍어보다 공통점 많아…학교·거리·공공시설 한글로 표기
"민담을 글로 남겨서 부족 정체성·지혜·역사를 후대에 전승"
지난 2023년 10월 15일 인도네시아 동남술라웨시주 부톤섬 바우바우의 '까르야바루 시장 정류장'이라는 뜻의 '할떼 빠싸르 까르야바루' 버스정류장. 이곳에 사는 찌아찌아족은 한글로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한다. 2023.10.15 ⓒ AFP=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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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한글을 한국어 학습이 아닌 전통 언어의 보존과 학습을 위해 쓰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한 소수 민족을 소개했다.
NYT는 4일(현지시간) 한글로 전통 언어를 보존하고 학습하는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실었다. 찌아찌아족은 인도네시아 동남술라웨시주 부톤섬 바우바우에 사는 소수민족이다.
인도네시아는 700개가 넘는 토종 언어가 있는 나라로, 파푸아뉴기니 다음으로 가장 언어적으로 다변화된 국가다. 부톤섬에도 수십 개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약 9만 3000명이 사용하는 찌아찌아어 역시 문자 없이 수 세기 동안 구전으로 생존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어 사용이 많이 늘어나 찌아찌아어도 다른 언어처럼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지역 원로인 드주누딘은 "요즘 아이들은 인도네시아어에 익숙해 찌아찌아어를 쓰지 않는다"며 "우리와 같은 고령 세대만 찌아찌아어를 쓴다. 많은 토종 단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에 찌아찌아어를 보존하기 위해 지역 원로들과 학자들은 서로 협력해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문자를 탐색했다. 처음에 언어학자들은 찌아찌아어는 인도네시아어와 달리 음절로 구성된 언어라서 로마자로 쉽게 음역할 수 없어 아랍어 문자를 사용하려고 했다. 실제로 부톤섬에는 아랍어로 쓰인 올리오 방언이 1500년대부터 사용돼 왔다.
그러나 찌아찌아어는 아랍어보다 한국어와 더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9년 한국 학자들은 바톤섬을 방문해 찌아찌아어 보존을 위한 문자로 한글을 소개했다. 이후 교사 2명이 한국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찌아찌아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글을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2020년까지 교사가 부족해 중단됐다. 다행히 2020년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단어들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한 사전이 출판되자 프로그램은 활력을 되찾았다.
현재 바우바우시 소라올리오 지역은 거리와 학교, 공공시설 이름이 로마자와 한글로 표기돼 있다. 학교는 자체적인 교과서를 쓰고 있으며 4학년부터 6학년은 한글로 수업을 듣는다.
한글 수업에서 성적이 가장 높은 3명 중 한명이던 누르핀(24) 씨는 "한글은 우리가 이미 집에서 쓰는 언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배우기 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거의 (한글을) 쓰지 않아 많이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한글 도입이 문화적 지배로 이어지거나 공동체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렇게 외국 언어와 혼합하는 것이 보존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바우바우시장을 지낸 아미럴 타밈은 "언어는 공동체의 부(富)이자 유산"이라며 "언어는 한 부족의 문명을 보여주고 고유 알파벳이 없는 언어는 그 진정성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아미럴 전 시장은 또 "인도네시아의 문화는 다양하며 인내력이 있다"며 "다른 문화의 유입에 문을 닫지 말자. 우리는 우리 전통 언어를 보존할 방법이 있는데 왜 그 언어가 멸종하게 내버려두는가?"라고 반문했다.
바우바우에 사는 사회학자인 라 오데 알리르만은 "언어가 멸종되면, 그 부족의 정체성과 지혜도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민담을 문서로 남김으로써 우리는 지역의 지혜, 조상의 역사, 기억, 부족의 정체성을 다음 세대가 간직할 수 있도록 전승할 수 있다"며 찌아찌아어 보존을 위한 노력의 의의를 설명했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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