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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할머니의 꿩고기-길거리 음식… 젊은이들의 ‘요리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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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시아 결선

29세 이하 셰프 10명 선의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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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경연대회 2024-2025’ 아시아 지역 결선에 오른 셰프 10명.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재호 안다즈서울강남 셰프다. 산펠레그리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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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여기저기 놓인 전기솥에서 뽀얀 김이 수직으로 올라왔다. 흰 가운을 입고 길쭉한 흰 요리사 모자를 쓴 셰프 10명이 고기와 채소를 자르고 냄비 속 소스를 저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과 각각 짝을 이룬 멘토 10명도 흰 가운을 입고 곁에서 지켜보며 중간중간 작은 목소리로 조언하고 있었다.

홍콩 국제요리교육원(ICI)에서 지난달 28일 열린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경연대회2024-2025’ 아시아 지역 결선은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대회는 이탈리아 미네랄워터사 산펠레그리노가 재능 있는 셰프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마련했다. 산펠레그리노-아쿠아파나가 후원하며 이번 대회는 6회다.

세계 15개 지역에서 각각 우승자를 뽑아 내년 10월경 세계 결선대회를 연다. 이번 대회에는 29세 이하 셰프 3000여 명이 지원했고, 15개 지역에서 165명이 지역 결선에 진출했다. 아시아 지역 결선 진출자 10명 중에는 한국인 김재호 안다즈서울강남 셰프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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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 요리를 맛보는 심사위원들. 산펠레그리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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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들은 3시간 동안 요리 10인분을 만들었다. 이후 요리를 맛보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15분간 요리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에 답했다. 심사위원은 홍콩 유명 레스토랑 ‘윙’을 운영하는 비키 쳉 셰프, 일본 교토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무니 알리안 두카세’ 총괄 셰프인 알레산드로 과르디아니 등 셰프 7명으로 구성됐다.

싱가포르의 식당에서 일하는 윌리엄 이 셰프는 비둘기를 주재료로 사용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자라면서 길거리 음식을 즐겼습니다. 노점에선 비둘기를 많이 사용해 이를 활용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식당에서 일하는 슈테판 데 그라프 셰프는 홍합수프에 대한 영감을 어떻게 얻었는지 묻자 “인도네시아의 맛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김 셰프가 이북 출신인 할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할머니의 꿩고기’도 주목받았다.

“6·25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온 할머니는 북한 음식을 자주 만들어 주셨고 저는 꿩백숙 등 꿩요리를 좋아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행복한 추억이 담긴 꿩요리를 재해석했습니다. 소스는 오이, 사과, 참나물에 한국의 들기름으로 만들었습니다. 도토리만두도 곁들였습니다.”(김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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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안다즈서울강남 셰프의 ‘할머니의 꿩고기’(위 사진)와 아디 퍼거슨 셰프의 ‘군도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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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에 깐 한지의 왼쪽 맨 위에는 할머니 성함 ‘전춘희’를 썼다. 김 셰프의 아버지가 직접 쓴 붓글씨로, 음식에 3대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 김 셰프가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도 인쇄해 꽂았다. 심사위원들은 “뭉클하다”, “캘리그래피가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우승자는 홍콩 식당에서 일하는 아디 퍼거슨 셰프였다. 그는 요리 ‘군도의 축제’에 대해 “내가 자란 인도네시아의 전통 요리 ‘나시 툼팡’, ‘사테 파당’을 홍콩식 오리구이와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산펠레그리노 사회적 책임상’ 등 3개의 특별상 수상자도 선정했다. 수상자는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멘토링을 받는 기회 등을 가진다. 비키 쳉 셰프는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리며 조화로운 맛을 내는지, 요리에 창의성과 자기만의 정체성을 담아냈는지를 주요하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셰프는 “대회를 앞두고 업무를 마친 후 매일 새벽 3시 반까지 연습했다”며 “할머니를 통해 이북 음식을 소개한 것이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멘토로 참가한 제효 안다즈서울강남 셰프는 “한국과 달리 털이 그대로 달린 꿩을 재료로 받아 난감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고 한국 요리를 알리게 돼 뜻깊었다”고 밝혔다.

홍콩=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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