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출신인 벽안(碧眼)의 가톨릭 선교사 패트릭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 4월 제주 서쪽 한림읍에 내려 2018년 선종할 때까지 제주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제주 사람들에게‘그거 안 됩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황무지를 개척해 돼지와 양을 기르고 제주도민 자립을 위한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냈다./사진작가 준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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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주도 성 이시돌 목장을 방문했습니다. 이시돌 목장을 만든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1928~2018) 신부에 관해서는 기사를 쓴 적도 있는데 이시돌 목장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직접 현장을 보니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이런 일까지 할 수 있다니’라는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광활한 초원에 말과 소가 흩어져서 풀을 뜯는 모습은 문자 그대로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시돌 목장은 우유와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지요. 사료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초원에 방목해 풀을 먹고 자란 젖소의 우유여서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맛을 봐서인지 뭔가 일반적인 아이스크림과 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이시돌’은 중세 스페인의 이시돌(St. Isidore·1110~1170) 성인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농민들의 수호성인’이라고 합니다.
제주 성 이시돌 목장.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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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 이시돌 목장.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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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회 소속 사제였던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 제주에 처음 와서 가난한 농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분입니다. 성당 건물조차 없던 제주 한림에 부임한 그는 암퇘지 한 마리를 데려온 것을 시작으로 황무지를 개간해 목장을 만들고 사료 공장, 양로원, 노인학교, 유아원, 신용협동조합, 수직(手織)공장, 호스피스 병동까지 일궈낸 분입니다. 그래서 별칭이 ‘푸른 눈의 돼지 신부’였다지요. 2018년 선종(善終) 후 대한민국명예국민증을 헌정 받았습니다. 이시돌 목장 주변을 둘러보면 임피제 신부야말로 ‘이 시대 한국의 이시돌 성인’ ‘제주의 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 성 이시돌 목장 앞의 '맥그린치로' 표지판.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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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지난 주말엔 현지에서 임피제 신부의 6주기 추모 행사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2일에는 추모음악회도 열렸고, 이시돌센터에선 ‘테시폰 사진전’이 17일까지 열리고 있었습니다. ‘테시폰’이란 이름이 생소하시지요? 테시폰은 임피제 신부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가옥 건축양식이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이라크의 바그다드 인근 테시폰이라는 지역의 고대 건축물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아치형 비계에 가마니 등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시멘트 모르타르를 덧발라 기둥과 철근 없이 지붕을 올리는 식으로 건축비를 아낄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1960년대 임 신부가 도입한 ‘테시폰 주택’은 한림읍 금악리를 중심으로 중산간 지역 개척농가에 보급돼 숙소, 창고, 돈사 등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난 2021년 ‘제주 이시돌목장 테시폰식 주택’ 2동이 국가등록문화재 제812호로 등록 고시됐지요. 지금도 이시돌 목장 입구에는 테시폰 주택 한 채가 보존·전시돼 있어 구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주 성 이시돌 목장에 보존된 테시폰 주택.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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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센터에서는 1960년대 테시폰 주택을 건설할 당시의 모습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전시돼 있었습니다. 건축 원리는 같은 건물이 때론 조금 크게, 때론 조금 작게 지어져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모습이었습니다. 50~60년 전 어려웠던 당시의 제주 풍경을 짐작할 수 있고, 주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임 신부의 노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맥그린치 신부가 건축비가 적게 드는 '테시폰 주택'을 보급하던 당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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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담당 기자 입장에서는 이시돌 목장의 우유와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성(聖) 이시돌센터의 동산이 감명 깊었습니다. ‘새미 은총의 동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복잡한 마음을 쉬면서 편안하게 둘러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임피제 신부의 영성(靈性)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 성 이시돌 목장 '새미 은총의 동산' 내 '예수생애공원'의 최후의 만찬 모습.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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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의 시작은 ‘예수생애공원’이었습니다. 이 공원은 예수의 공생애(公生涯)를 조각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돼 있었습니다. 예수의 탄생부터 시작해 세례를 받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고,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고, 열두 제자를 세우고, 라자로를 다시 살리고, 최후의 만찬까지… 성경 속 예수의 12가지 주요 사건을 동선(動線)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느낄 수 있도록 조형적으로 배치돼 있었습니다.
제주 성 이시돌 목장 내 '십자가의 길' 모습. 소나무 숲과 초원 사이에 조성돼 있다.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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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나오면 ‘십자가의 길(14처)’이 이어집니다. 최후의 만찬 후 예수가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14개 장면으로 구분해 묵상하며 걷는 길이지요. 첫번째 빌라도의 법정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전 혹은 법정처럼 기둥이 서있는 가운데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는 모습이 형상화돼 있습니다. 이어서 한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반대쪽으로는 젖소가 풀을 뜯는 사이의 언덕길을 오르며 14개 장면을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고난의 길을 힘겹게 오르는 예수의 모습과 핍박하는 로마 병정들의 표정, 눈물 흘리는 여인들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국내외의 어떤 ‘십자가의 길’에 못지 않은 감동적인 길입니다.
임피제 신부의 묘소에서는 그가 평생을 바쳐 가꾼 성 이시돌 목장과 복지 시설이 한눈에 보인다.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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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처의 마지막,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가 누운 모습은 언덕 위 작은 호수 옆에 있었습니다. 높지 않은 동산을 걸어서 만나는 연못은 마치 화산 꼭대기의 호수처럼, 장엄한 마지막을 연상시킵니다. 이 호수 주변에는 ‘묵주기도의 길’이 조성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묵주기도 호수’입니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호수를 따라 놓인 길이 하나의 둥근 묵주처럼 보입니다. 연못을 따라 걸으면 성모동굴이 나타납니다. 성모동굴 앞에는 수백명이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었습니다. 성모동굴 옆으로 난 소로(小路)를 따라가면 이 모든 것을 조성한 임피제 신부의 묘소가 나타납니다. 양지바른 묘소에서 바라보니 임 신부가 평생에 걸쳐 조성한 이시돌목장과 피정의 집, 요양원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새미 은총의 동산’ 전체를 순례하는 데에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제주 성 이시돌 목장을 만든 임피제 신부가 양들을 돌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 /김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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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모 행사에 맞춰 천주교 제주교구는 팸플릿을 배포하고 있었습니다. 그 팸플릿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임피제 신부와 관련하여 4-H를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중략)한림 4-H가축은행에서 돼지 한 마리를 대부해주고, 사료를 나눠주고, 서로 배우도록 하는 형태였다면, 이시돌목장에서는 전문기술교육 및 실습을 위한 농업훈련센터를 운영하였다. 그리고 교육을 수료하고 전형에 합격한 이들에게 돼지 20~30마리와 땅, 집(테시폰식 주택), 종자 및 사료 등을 지원하였다. 이처럼 이시돌 목장의 시작은 서로 배우고 실천하고, 배운 것은 나누는 학습 조직에서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시돌 목장은 보이는 것 외에도 볼 것, 봐야할 것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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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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