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김, 의사당 쓰레기 수거로 주목
뉴저지주 공화 바쇼 꺾고 당선
“청렴성 갖고 봉사할 것” 소감
1982년 보스턴서 태어난 이민 2세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부에 들어가
2018년 정계 입성 뒤 하원의원 3선
“재미교포 역사 120년 만에 첫 입성”
하원선 영 김·스트리클런드 당선 ‘유력’
AP통신은 이날 개표가 28% 정도 진행됐던 오후 8시30분(미국 동부시간 기준)쯤 김 의원의 당선을 확정지었다. 당시 김 의원은 58%를 득표했고, 경쟁자인 공화당 커티스 바쇼 후보는 44.3%에 그쳤다.
5일(현지시간)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 상·하원의원 선거에서 한국계 최초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앤디 김 뉴저지주 연방 하원의원(민주당)이 미국 뉴저지주 체리힐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체리힐=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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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이 확정된 뒤 김 의원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이민자의 아들이자 공립학교 학생 출신이 미국 상원의원을 맡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모두를 위한 공직자로서 명예와 청렴성을 갖고 봉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의원은 뉴저지주 체리힐의 더블트리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또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역사상 미국인으로 불린 약 6억명 중 약 2000명만이 이 일을 맡을 영광을 얻었고, 재미교포 역사 120여년 만에 이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며 “부모님과 가족에게 감사드리고, 나와 같은 한 소년에게 꿈을 꿀 기회를 준 이 주(뉴저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뉴저지주는 민주당이 1972년부터 50년 넘게 상원의원을 배출한 텃밭이다. 그렇기에 김 의원에겐 공화당 후보와의 경쟁보다는 당내 경선이 당선으로 가는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다.
김 의원의 승부수는 ‘기득권 개혁‘이었다. 그간 당내에서 출마 선언은 당 지도부에 지지를 구하고 암묵적 동의를 받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지도부를 찾아가지 않고 ‘정면 승부’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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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경선을 위해 투표용지를 바꾸자는 제안 또한 내놨다. 기존 투표용지는 지도부가 미는 후보를 제일 위에 배치했는데, 그는 소송까지 제기하며 기득권 혁파에 나섰다. 유력한 경쟁 후보였던 필 머피 뉴저지주 주지사의 부인 태미 머피는 당 지도부의 지지까지 받았지만, 남편 후광 덕이라는 논란에 지지율 하락세를 겪다 지난 3월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결국 김 의원의 청렴하고 개혁적인 정치인 이미지에 당원들은 그를 택했고 한국계 최초로 연방 상원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1982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유년 시절을 뉴저지주에서 보낸 그는 소수 정예 교육기관인 캘리포니아주 딥스프링스 칼리지, 시카고대 정치학사,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관계학 석·박사를 거쳐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인 2009년 국무부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젊은 정치인 발굴을 후원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오바마 키즈’로도 알려져 있는데, 시카고대 재학 시절 노숙인 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당시 주 상원의원이었던 그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9∼2013년 국무부 외교담당관을 거쳐 2013∼2015년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내 이라크 담당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김 의원이 정계에 입성한 건 2018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현역이었던 톰 맥아더 전 의원에 신승을 거두면서다. 이후로도 김 의원은 뉴저지주에서 내리 3차례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의회 입성 후 주한미군 주둔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입법 활동을 펼쳐왔다.
사진=앤디 김 의원 홈페이지 캡처 |
김 의원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2020년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휩쓸고 간 의사당에 남아 새벽까지 혼자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AP통신에 포착된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 8월22일 민주당 전당대회(DNC)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연설을 하며 “어떻게 이런 나쁜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다. 나는 쓰레기 봉지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인물이 된 김 의원의 성공 배경에는 경남 밀양 출신의 부친 김정한씨와 모친 장재순씨도 있다. 소아마비를 앓은 고아 출신인 부친은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유전공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이민 1세대다. 간호사였던 모친은 아들에게 병원 자원봉사를 시키며 타인을 돕는 법을 가르쳤다. 부친은 김 의원에게 ‘자유의 땅’ 미국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위대한 꿈’을 꾸라고 가르쳤는데,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 의원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나를 의사당으로 데려가 이곳이 민주주의의 성지라고 알려 주셨다”는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공화당 전당대회 참석한 미셸 박 스틸 미 연방 하원의원. 미셸 박 스틸 미 연방 하원의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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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 외에도 이번 선거에는 3명의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들이 출마했다. 공화당 미셸 박 스틸 하원의원(45선거구)과 영 김 하원의원(40선거구)은 나란히 캘리포니아주 3선에 도전하며 민주당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하원의원은 워싱턴주(10선거구)에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외신에 따르면 영 김 의원과 스트리클런드 의원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 사위’로 알려진 공화당 래리 호건 전 메릴랜드주 주지사는 민주당 후보인 안젤라 알소브룩스 프린스조지스 카운티 행정관에 패해 메릴랜드주 연방 상원의원직 도전에 실패했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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