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 거북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공서핑장인 웨이브파크 앞 상가 건물에 ‘임대 문의’를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정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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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섬이나 다름없죠. 지금 문을 연 상점들도 다 짐을 뺄 판이에요.”
지난달 22일 정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공서핑장인 웨이브파크가 있는 경기 시흥시 거북섬 일대는 인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막했다. 내부가 텅빈 식당 앞에서 의자에 걸터앉은 50대 주인장은 “점심 때인데도, 아무도 없다. 손님이 아예 없는 날도 부지기수”라며 이같이 푸념했다. 그는 주변 건물을 가리키며 “상가는 넘쳐나는데, 다 비어 있다. 임대료와 대출이자 내는 것도 막막하다”고 말했다.
현재 주변 4~5층짜리 건물 수십 동에 문을 연 점포는 편의점과 카페 등 손을 꼽을 정도였다. 간판이 걸린 점포마저도 ‘임대 문의’라고 적어 두고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내부 가구와 집기류에는 뽀얀 먼지가 쌓여 있었다. 5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비어 있는 곳도 있었다.
인공서핑장 웨이크파크 전경. 시흥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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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섬은 시화호 북쪽 시흥구간에 조성된 인공섬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 ‘거북섬’이라고 부른다. 1994년 시흥·화성시 일대 공유수면을 메우며 인공호수 시화호가 생겼는데, 거북섬은 호수 북쪽의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 중심에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시흥시는 2017년 협약을 맺고 해양레저시설과 마리나, 생활형 숙박시설까지 집약된 해양레저 복합단지 시설 개발을 추진했다. 애초 거북섬 일대를 스페인 휴양명소 ‘코스타 델 솔’ 같은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지만, 현재 공실률이 높은 데다 관광객도 적어 ‘유령섬’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상가건물 관리단 등으로 구성된 거북섬발전위원회의 설명에 들어보면, 거북섬 일대에 들어선 상가 점포 4000여개 가운데 입점한 곳은 300여곳에 불과하다. 폐업신고하지 않고 장기간 문을 닫은 점포를 제외하면 실제 운영 중인 상점은 이보다 적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도 대규모 상가가 포함된 주상복합건물 서너 동을 신축 중이어서, 상점가 과잉공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실 문제는 상점가 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 오피스텔, 생활형숙박시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곳곳에서 임대차 계약해제 및 분양대금반환 청구 소송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관상어 생산·유통단지로 지정된 ‘아쿠아펫랜드’(연면적 6300㎡)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문을 연 이 곳은 현재 관상어·애완용품 판매점 등 일부를 제외하면 5층 규모 건물 4개 동 대부분 공실이다. 상가 거래가 없어 부동산중개사무소마저 문을 닫았다.
이는 장기간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관광 수요를 높일 관련 시설 조성에 차질이 빚어진데다,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상업시설 위주의 계획을 세워 공급이 과잉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실이 90%에 육박하는 시흥 거북섬 일대 상가에 복합쇼핑몰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정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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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거북섬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웨이브파크를 제외한 마리나시설, 사계절 운영 키즈파크, 대관람차, 문화공원 등 관광을 활성화할 수 있는 사업들이 줄줄이 지연되거나 무산된 영향이 크다”고 했다. 이어 “시흥의 랜드마크라는 웨이브파크가 있지만, 서핑장 내에서만 소비 행위가 있다. 외부 상권과는 상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건물 관리단이나 임차인 모두 4~5년을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공실을 해결할 뚜렷한 방안도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국·도비 150억원이 투입된 국내에서 처음으로 관상어 생산·유통단지로 지정된 ‘아쿠아펫랜드’ 내 상가 90%가량이 공실이다. 이정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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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는 지난해 3월부터 ‘거북섬 활성화 전담팀’(TF)을 구성해 침체된 거북섬 관광 문제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공실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는 거북섬 활성화를 위해 올해 거북섬 홍보관과 본다비치 뮤지엄도 조성하고, 거북섬 해양축제, 하와이안 페스티벌 등의 행사도 개최했다. 시는 1050억원을 들여 거북섬 9만㎡에 ‘거북섬 센트럴파크’ 조성 등의 청사진도 제시했다.
시 관계자는 “거북섬은 해양레저관광산업의 중심축으로 시흥의 미래 먹거리를 제공할 중요한 곳”이라며 “경기침체에 부침을 겪고 있지만, 계획에 따라 관련 시설들이 점차 들어서면 개선될 수 있다. 민간 전문가, 거북섬발전위원회 등과 머리를 맞대고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은 ‘인내의 시간’”이라고 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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