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시앤 나이는 <우리의 미적 범주들: 엉뚱한, 귀여운, 흥미로운(Our Aesthetic Categories: Zany, Cute, Interesting)>(2012)에서 귀여움이 단지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인 조건일 뿐만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조건에서 발달하는 중요한 미적인 범주라고 본다. 나이에 따르면 귀여움은 모든 것이 과잉상품화되고, 온갖 정보가 포화상태에 이르며, 극단적인 자기계발을 요구하는 성과주의로 물든 이 시대를 설명하는 커다란 문화적 현상의 일부다.
이를테면 봉제인형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작고 둥글고 부드러운 물건은 ‘작은 것’에 대한 다정한 애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소비를 촉진하는 전략이 된다. 이러한 물건은 가혹한 현실의 논리로부터 정서적으로 탈출하고 유년시절의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안전한 곳에 있다는 유토피아적인 착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취약하고 무력한 대상을 소비하는 일은 현실 속의 복잡한 권력관계가 얽혀있는 돌봄 행위를 간단하고 쾌적한 구매경험으로 교환하기도 하고, 권력구조에 종속되어 있는 노동자의 수동성을 수용하는 감각을 재생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귀여움은 단지 사랑스러운 본능을 자극하는 자질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서적 반응을 소비재로 전환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상품화된 미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귀여움이 소비주의를 가속화하는 측면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에세이 <어두운 시대의 인간성>(1968)에서 20세기 초반의 유럽 시인들이 전쟁이라는 압도적인 혼란을 맞닥뜨렸을 때 일상의 작은 행복을 그려냈던 현상을 분석한다. 정치적인 포부나 원대한 이상이 아니라 사소한 경험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무게를 지녔다는 것이다. 나이는 이렇듯 작고 유약한 것에 애정을 기울이는 귀여움의 미학이 견고한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귀여움은 대상에게 보살핌을 강제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귀여워하는 체험은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유약하고 의존적인 대상을 길들이고 무력화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애정과 귀찮음, 애틋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는, 그러나 결국에는 서로를 변화시키고야마는 양가적인 관계를 실험하는 장 말이다.
그러니 귀여움은 현대사회에서 부조리한 구조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에 저항하는 미적 기술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미적인 게 그렇다. 아름다움은 타인도 그렇게 느낄 거란 ‘보편성’과 나에겐 이토록 강렬하다는 ‘개별성’을 모두 아우른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자기만의 동일적 세계를 벗어나 더 큰 외부로 연결되게 한다. 앞으로도 귀여움은 우리에게 중요한 감각일까? 미적인 것의 길은 어디로든 열려 있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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