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페레즈(오른쪽) 전미국경순찰협회 회장이 지난달 25일 텍사스 오스틴의 이스트델밸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연설하고 있다. 오스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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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020년 조 바이든 후보보다 여성 표에서 트럼프와의 격차를 벌리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 혐오 이미지가 강한 이가 상대였다는 점, 임신중지가 주요 이슈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의외의 결과다. 임신중지가 예상보다 후보 선택을 가를 파괴력이 없었고, ‘경제’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면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7일(현지시각) 시엔엔(CNN)의 출구조사 분석을 보면 해리스는 여성에게서 트럼프보다 8%포인트 앞서는 데 그쳤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13%포인트, 2020년 바이든이 15%포인트 앞선 것과 비교하면 우위가 줄었다.
해리스는 ‘모든 경우에 임신중지가 합법'이라고 답한 유권자 그룹에서 78%포인트 우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임신중지가 합법'이라고 밝힌 유권자에서는 4%포인트만 앞섰다. 후자의 경우 절반가량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뜻이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임신중지권 관련 투표를 한 주 가운데 경합주인 애리조나와 네바다의 경우 ‘임신중지권 보장’이 가결됐으나 대선 투표에서는 트럼프가 해리스를 이길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18~29살 젊은 유권자층에서 오히려 지지를 넓혔다. 남성은 41%에서 56%로, 여성은 33%에서 40%로 2020년 때보다 지지율이 올랐다.
해리스는 ‘남편 몰래 투표하자'는 캠페인까지 벌이며 집중 공략했던 ‘백인 여성’ 그룹에선 선전했다. 백인 여성은 1964년과 1996년을 빼면 모두 공화당을 지지했고, 이번에도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지만, 트럼프의 우위는 8%포인트에 그쳤다. 2020년에는 11%포인트 우위였다. 백인 남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우위는 23%포인트로 4년 전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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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승패를 가른 건 라틴계였다. 2016년 대선 이후 지지 후보를 교체한 인종별·성별 그룹은 라틴계 남성이 유일했다. 라틴계 여성도 민주당 지지세가 크게 줄었다. 흑인과 백인 그룹에선 트럼프 지지율 변화가 4년간 크지 않았다. 라틴계 그룹에서의 지지율 상승이 트럼프 승리에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라틴계 남성은 2016년 클린턴에게 31%포인트, 2020년 바이든에게 23%포인트 우위를 안겼지만 이번 선거에선 트럼프를 12%포인트 더 지지했다. 라틴계 여성도 4년 전과 비교하면 +39%포인트에서 +22%포인트로 민주당 우위가 줄었다. 8년 전 +44%포인트였던 점을 고려하면 반 토막이다.
엔비시(NBC) 뉴스 출구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국 라틴계 유권자 45%의 지지를 얻었고 해리스는 53%를 얻었다. 2020년 트럼프는 이 그룹에서 32%를 얻었고 조 바이든은 65%를 얻었다. 45% 지지는 2004년 조지 더블유(W) 부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44%를 얻은 이후 공화당의 라틴계 최다 득표다. 전국적으로 라틴계는 유권자의 12% 정도다. 4년 전보다 민주당 후보 지지세가 확대된 그룹은 ‘흑인 여성’이 유일했다(+81%포인트→+84%포인트).
선거를 압도한 건 ‘경제’였다. 유권자의 약 3분의 2가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답했고, 이 그룹에서 트럼프는 42%포인트 우위를 보였다. 엔비시는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라틴계 유권자들이 경제적 이유로 트럼프를 지지했다”며 “이번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은 경제”라고 평가했다.
대졸 이하인 경우 인종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트럼프를 지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년 공화당을 백인 노동자들의 정치적 고향으로 변모시킨 트럼프가 올해는 공화당을 모든 인종의 노동자를 끌어모으는 정당으로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은 이번 패배를 ‘민주당이 노동자를 저버린 결과’라고 지적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의원 선거에서 버몬트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샌더스 의원은 “노동자들을 버린 민주당이 노동자들에게 버림받는 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첫번째로 백인 노동자들이었고 이제는 라틴계와 흑인 노동자들”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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