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에 재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꼭 읽어 봐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협상의 기술’이다. 대권에 도전하기 훨씬 전인 1987년에 낸 책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가 부동산 개발업을 하면서 즐겨 사용한 협상의 기술 중 하나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편이 겁을 먹도록 사전에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2012년 대선에 처음 출마하면서 “한국은 그들을 지켜주는 미군에 돈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팩트체크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재선 도전 과정에서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불렀다. 그가 한 말의 의도는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다. 그는 말이 거칠수록 의도가 잘 전달된다고 여긴다.
▷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횡설수설했다. “김정은이 약속을 진짜 지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6개월 후 여러분 앞에 서서 ‘그때 내가 틀렸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내가 핑계를 댈 거다.” 그에게 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거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아무렇게나 둘러대도 상관없는 그런 것이다.
▷트럼프가 거친 말을 자주 하니까 싸움꾼처럼 보이지만 진짜 싸움은 미국의 돈이 아까워서라도 못 할 위인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초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 시험에 대응해 미국이 ‘죽음의 백조’라고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를 북한 동해 상공 깊숙한 곳까지 출격시켰을 때다. 문 정부는 ‘6·25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무력시위였을 뿐이다. 무력시위처럼 그의 거친 말은 돈이 많은 드는 진짜 싸움에 이르지 않기 위한 협상의 기술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대한 거친 발언도 새겨서 들어야 오판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재선을 위험한 성인물을 보는 기분으로 지켜봤다. 그에게 성추행당했다고 밝힌 여성이 한둘이 아니고 올 들어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20년 재선 도전 패배에 불복해 의사당 습격을 선동한 혐의는 곧 판결이 나오겠지만 셀프 사면이 확실시되고 있다. 말의 책임성이나 일관성 같은 것은 그에게 아예 없다. 정치가 본래 위험한 성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사람의 대통령 재선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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