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계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는데
여당 대표가 비판하는 건 금도 넘는 것”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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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기자회견을 두고 “이제 중요한 것은 민심에 맞는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속도감 있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을 향한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핵심을 벗어난 미흡한 회담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도 ‘대통령의 약속’을 실천하는 데 집중하자며 비판을 자제한 것이다. 여권 분열을 통해 공멸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 비판도 환영도 할 수 없는 한 대표의 난감한 처지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한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윤 대통령의 전날 담화·회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담화·회견을 한 지 하루 만에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한 대표는 “대통령께서 어제 현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인적쇄신, 김여사 활동 중단, 특별감찰관의 조건없는 임명에 대해 국민들께 약속하셨다”며 윤 대통령이 자신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다는 취지로 적었다. 이어 “민심에 맞는, 구체적이고 속도감 있는 실천”을 강조하며 특별감찰관 임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14일 본회의 개최 전에 의원총회(의총)를 열고 특별감찰관 추진 여부에 대한 원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총을 통해 (특별감찰관에 대한) 최종적 방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해석과 달리 윤 대통령 담화는 김 여사 특검을 거부하는 등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대표의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무슨 잘못에 대한 사과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김 여사 활동 중단 요구에 대해선 “사실상 (이미) 중단했다”고 답했다. 오히려 제2부속실을 출범시키며 김 여사의 공식적 활동을 보장했다. 인적쇄신 요구에 대해서도 “빠른 시일 내에 하기 힘들다” “김건희 라인이라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로 들린다”며 핵심을 비켜갔다. 한 대표의 요구가 수용된 것은 특별감찰관 임명에 조금 더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 정도다.
친한동훈(친한)계에서도 한 대표의 요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장파 김재섭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후속 조치들이 따라야 하고 실제로 여사가 활동을 중단하는 모습들을 보여드려야 완성된다고 본다”며 “아직까지는 미완성”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정성국 의원도 MBC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거절했다 할 수는 없지만 수용했다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한 대표는 ‘김 여사 라인’이라는 부적절한 처신이 있는 참모들에 대한 지적을 분명히 했는데 (윤 대통령이) 그런 표현에 대한 부정적인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수용이라 보긴 어렵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공천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 의혹에 대한 해명도 “(윤 대통령이) 본인의 음성이 들어간 부분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했으면 좋지 않았겠나”라고,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서도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한 건 더이상의 당정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법이 오는 14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큰 상황인 만큼 분열을 부추긴다는 내부 비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15일)와 위증교사 1심 선고(25일)를 앞두고 있어 여론의 관심이 야당 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SNS에 “이 대표가 법원 선고를 1주일 앞두고 총 동원령을 내렸다”며 “특정인의 범죄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막기 위해 진영 전체에 총 동원령을 내리는 이런 장면은 없었다”고 재차 비판했다. 그는 전날에도 이 대표의 1심 선고를 생중계해야 한다고 야당을 향해 공세했다. 한 친한계 의원은 “이 대표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야권의 특검 공세가 거세진 상황을 감안해 당대표로서 수위를 조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한계 인사는 “대통령 회견은 낙제점이지만 한 대표의 메시지는 당대표로서는 최선”이라며 “당대표가 대통령을 들이박으면 싸우는 수밖에 더 있나. 당대표는 절제된 메시지를 내되 비판은 주변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한계 의원도 통화에서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는데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금도를 넘는 것”이라며 “비판은 하지 않되 그동안 민심이 요구한 것을 당이 해나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더이상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가는 여권 내에서 반발이 제기될 것이고, 그렇다고 친윤석열계처럼 담화에 박수도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한 게 ‘민심에 부합하는 실천’인 셈이다.
하지만 한 대표의 이날 평가는 스스로 강조해온 민심과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론이 요구하는 김 여사 특검, 인적 쇄신, 국정기조 전환 등은 외면한 채 특별감찰관 추진만으로 ‘민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 끝까지 반대 입장을 유지한다면 당정 차별화 전략도 더이상 통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결국 한 대표 또한 현 정부와 한 통속으로 인식될 것이란 의미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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