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과 그의 시대
지난 7일(현지 시각) 영국 신문들은 일제히 1면 헤드라인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소식을 보도했다. 타블로이드 신문 더선(The Sun)은 트럼프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 출연해 유행시킨 말인 'You're fired(당신 해고야)'를 패러디해 'You're rehired(당신 재고용됐어)'를 제목으로 달았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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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중국과의 무역 전쟁, 멕시코 국경의 이민 문제, 북핵 문제…. 전 세계가 다시 트럼프의 ‘입’과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2기’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렸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가나다순)에게 자문해 추천 리스트를 만들었다.
러스트벨트 노동자 ‘우리’로 껴안은 2016년의 전략은 여전히 건재했다
트럼프가 승리한 이유는…
미국은 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는가
빅터 데이비스 핸슨 지음|홍지수 옮김|김앤김북스|488쪽|1만8000원
힐빌리의 노래
J.D. 밴스 지음|김보람 옮김|흐름출판|424쪽|1만7800원
트럼프가 ‘징검다리 재선’에 성공한 이 시점에 ‘미국은 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는가’(2019)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리라는 예측이 무너진 이유를 분석한 마지막 장이다. 미국 보수파 논객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고전학 명예 교수인 저자는 트럼프의 경제·외교정책이 대체로 과거에 효력을 발휘한 중도 보수 성향 정책들이라 당을 효과적으로 결집시켰으며, 언론 매체가 2016년의 교훈을 무시하고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샤이 트럼프’의 위력을 여론조사에서 배제했고, 대중의 반(反)PC 정서가 끓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뭐든지 피아(彼我)로 양분하는 트럼프가 분열된 미국의 구미에 딱 맞는 지도자였다는 것이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에 대한 저자의 분석. 트럼프가 낙후된 중서부 산업 근로자들을 ‘우리’라 부르며 피·땀·눈물을 끌어안을 때, 엘리트 민주당의 힐러리는 이들을 ‘그들’이라 칭하며 거리를 뒀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이유가 가장 잘 나와 있는 책”이라며 추천했다. 원제 ‘The Case for Trump’.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추천한 ‘힐빌리의 노래’(2016)는 부통령 당선인 J D 밴스의 회고록. 밴스는 중서부 러스트벨트 출신 ‘흙수저’로 마약 중독자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되었으며,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 핵심 권력층에 진입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빈곤층 노동자들이 낸 세금으로 실업수당에 기대 사는 비(非)노동자들이 티본 스테이크를 매달 사먹을 수 있도록 설계된” 민주당의 복지 정책이 고향의 백인 노동자들이 민주당에 절망하고 등 돌린 근본 이유라고 짚는다.
안 교수는 “이번 대선의 핵심 키워드인 ‘학력 분열’을 꿰뚫는다”며 국내 미번역작 ‘Polarized by Degrees’(학력 양극화)도 추천했다. 미국 정치학자 매트 그로스먼과 데이비드 A 홉킨스의 공저. 노동 계층 정당인 민주당이 엘리트 정당으로, 기업가 정당이었던 공화당이 대학 졸업장 없는 백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정당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지난 9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출간됐다. /곽아람 기자
보편주의를 버린 미국의 ‘깨시민’과 힘 잃어버린 민주당의 ‘정체성 정치’
정체성 정치의 부작용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수전 니먼 지음|홍기빈 옮김|생각의힘|296쪽|1만9000원
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지음|김승진 옮김|부키|352쪽|2만원
미국 민주당의 실패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부작용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강조하는 ‘워크(woke·깨어 있음)’ 문화가 급격히 힘을 잃고 있다. ‘PC주의’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가 늘었다. 외신도 이런 현상을 비중 있게 보도한다. 이를 고려한 듯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는 이번 대선 유세에서 자신의 인종과 성(性)을 부각하지 않는 전략을 택했다. 흑인·여성 정체성을 애써 강조하지 않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 ‘2020년과 달리 정체성 정치의 영향력이 줄어든 미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해리스는 자기 집을 글록 권총으로 지킨다고 자랑하며 애국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했다. 안병진 교수는 “해리스는 정체성 정치를 다소 우회했는데도 졌다”면서 “이는 10년 이상 축적된 민주당식 진보 정체성 정치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정체성 정치는 왜 독(毒)이 됐을까? 도덕 철학자 겸 문화 평론가인 수전 니먼은 지난해 출간한 책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에서 이렇게 쓴다. “오늘날 자칭 좌파라는 자들이 좌파라면 누구나 굳건히 움켜쥐어야 할 핵심 사상을 어떻게 폐기해 버리게 되었는지 검토할 것이다.” 니먼이 말하는 ‘좌파의 핵심 사상’이란 부족주의(tribalism) 극복과 보편주의 지향, 정의와 권력의 구분, 그리고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등이다. 저자는 ‘워크 좌파(woke left)’ 즉 이른바 ‘깨시민’들은 여러 정체성 가운데 가장 심하게 주변화된 부분에만 초점을 두고, 권력의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춰 정의의 개념을 옆으로 제쳐놓는다고 비판한다. ‘진짜 좌파’라면 자신을 어떤 대명사로 지칭할지 바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을 희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2018년에 쓴 ‘정치적 부족주의’에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추아는 좌우 진영을 모두 ‘부족주의’라는 키워드로 살핀다. 그는 ‘좌파는 정체성 정치의 강도를 한 피치 더 올렸다’면서 ‘어조, 화법, 논리가 달라지면서 정체성 정치가 이제까지 늘 좌파의 핵심 개념이었던 포용에서 멀어져 배제와 분열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황지윤 기자
국제 관계 개의치 않는 파격 행보… ‘영리한 전략가’이자 ‘이기적 지도자’
트럼프는 어떤 인물인가
거래의 기술
도널드 트럼프 지음|이재호 옮김|살림출판사|449쪽|2만2000원
그 일이 일어난 방
존 볼턴 지음|박산호·김동규·황선영 옮김|시사저널|760쪽|2만5000원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내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거래의 기술’의 이 첫 문장이 갑부 트럼프가 금력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 번이나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이유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1987년 41세의 트럼프가 쓴 이 책은 사업가에서 정치가로 ‘거래’의 판을 키워갈 노년의 트럼프를 예고한다. 성경 다음으로 좋아한다고 밝힌 이 책에서 트럼프는 성공을 위한 11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제1원칙은 ‘크게 생각하라’는 것.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일을 성사시킨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규모를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스펙터클한 것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이것이야말로 ‘거래의 기술’에 나오는 모든 교훈들 중 그의 선거 운동 전략을 가장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는 것일지 모른다”라고 평했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가 쓴 ‘신의 개입’(나남)도 ‘거래의 기술’을 토대로 영리한 전략가로서의 트럼프를 입체적으로 기술한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9월까지 17개월간 트럼프와 함께 일했던 존 볼턴 전(前)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은 2020년 출간을 앞두고 백악관이 출판 금지 소송까지 제기할 만큼 트럼프의 신경을 건드린 책이다. 트럼프를 자기 이익에만 신경 쓰고, 독재자들을 좋아하며, 국제 관계에 무지한 지도자로 묘사한다. 문재인 정부 때의 미·북 비핵화 외교 전 과정을 가리켜 “한국의 창조물”이라 표현해 서울까지 충격파를 던졌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 독특한 행보와 의사 결정 및 집행 방법 등에 대한 기술이 한국인과 우리 정부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며 추천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가 추천한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의 ‘공포’(딥인사이드), 저널리스트 마이클 울프가 쓴 ‘화염과 분노’(은행나무) 등도 트럼프 백악관에서 일어난 일들과 트럼프의 문제적 스타일을 다룬 ‘폭로’ 계열이다. ‘공포’는 2018년 미국 출간 당시 1주일 만에 110만부 팔렸고, 같은 해 출간된 ‘화염과 분노’는 1주일 만에 140만부 팔렸다. /곽아람 기자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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