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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좌파는 왜 ‘24조원어치 잭팟’을 축하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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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체코 원전 수주에 절망한 좌파 본색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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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계약 파토 났네요ㅋㅋㅋㅋ.”

2024년 10월 30일 밤 10시 56분, 좌파 사이트 ‘클리앙’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속보] 체코 반독점 당국, 원전 계약 일시 중단 조치’. 공감 44개를 얻어 짧은 시간 내에 ‘최다 추천글’ 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 글에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는데, 글쓴이가 그런 것처럼 다들 좋아 죽겠는 표정이 느껴진다. ‘XX도 이런 XX이 없습니다. 면전에서 능욕당하고ㅋㅋㅋ’ ‘될 리 없었어요 멍청한 게ㅋㅋ’ ‘다행이네요. 수주해도 국가적으로 손해잖어요.’ ‘이제 많이 참았습니다. 끌어내리자고요.’

원전 계약이 무산된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게 이렇게 축배를 들 일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게 인터넷에 서식하는, 일부 정신 나간 좌파들만의 반응이 아니라는 점. 잠시 두 달 반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자. 7월 17일 밤 8시 49분, KBS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체코에서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할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다고 보도한다. 2009년 UAE의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의 경사로, 팀 코리아가 원전 강국인 프랑스전력공사(EDF)를 유럽 무대에서 꺾은 것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24조원어치, 이 정도면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으로 고사 위기에 몰렸던 한국 원전이 다시 날아오르기에 충분하다.

보수 지지층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이들, 그래서 보수는 좌파 정부 집권기에도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줬다. 훗날 사기극으로 드러난 2018년 판문점 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4.1%를 기록한 것은 문 정권의 대북 화해 정책에 보수층이 화답한 결과였다. 그 와중에 보수층은 다음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됐다. 보수와 좌파는 그 방법에선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을 잘되게 만들자는 데 이견이 없는 이들이라고. 이 명제가 성립하려면 이번 원전 수주에 대해 좌우가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게 맞다. 물론 좌파 입장에선 탈원전의 원죄 때문에 좀 머쓱하긴 하겠지만, 그 문재인조차 2018년 체코를 방문해 원전 세일즈를 한 바 있으니, 그의 꿈을 대신 이뤄준 윤 정부의 쾌거에 같이 기뻐해 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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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지난 9월 20일 체코 플젠 산업단지에서 발전용 터빈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과 피알라 총리는 이날 터빈에 장착되는 블레이드(회전날개)에 공동으로 서명했는데, 대통령실은 "양국이 원전을 함께 짓고, 기업 간 협력을 지원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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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명색이 공영방송인 MBC는 수주 소식이 알려진 첫날엔 그 흔한 속보조차 내지 않았고, 그 다음 날에도 폭우와 채 상병 사건 등으로 뉴스 앞부분을 채우더니 무려 15번째 꼭지로 수주를 따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자사 뉴스를 봐줄 좌파 시청자들이 속상해할까 봐 “한수원이 덤핑에 가까운 거절할 수 없는 가격을 제안했다”는 악의적인 멘트를 넣는 것도 역시 MBC다웠다. JTBC도 다음 날 23번째 꼭지로 원전 소식을 전한 걸 보면, 좌파들에게만 적용되는 무슨 보도 지침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이 밖에도 민노총 언론노조의 기관지인 미디어오늘은 ‘전국적 폭우인데 재난 주관 KBS 뉴스만 ‘K원전’ 앞세웠다’며 KBS를 비판했고, 오마이뉴스는 ‘체코 원전 수주 가시화에 신난 여당’이라는 기사 제목을 뽑았다.

아니, 국가적 경사인데 같이 좀 기뻐하면 안 되는 걸까? 민주당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뉴스 초기에는 아예 논평을 내놓지 않더니, 이틀 뒤 노종면 원내 대변인을 내세워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하게 했다. “최종 계약이 아닌데도 대통령실이 생중계 발표까지 하는 모습에서 ‘깡통 논란’을 촉발한 윤 대통령의 동해 유전 발표 장면이 떠오른다” “경제 효과나 사업성이 얼마나 될지 특정할 수 없는데도 잭팟이니 쾌거니 국가적 경사니 떠드는 모습에서 대국민 사기로 들통난 MB 자원 외교가 떠오른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의혹들을 속이 뻔히 보이는 치적 기사들로 가릴 수 없다. 미리미리 대통령 부부의 특검 수사에 대비하는 편이 낫다.” 이것이 의원 개인이 아닌, 무려 제1야당 원내 대변인의 말이라니, 절망감이 든다.

원전 수주로 절망하던 좌파들은 물어뜯을 구석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딴지는 덤핑 의혹, 우리나라가 프랑스의 절반 가격으로 입찰했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 원전 기술이 그만큼 뛰어난 결과였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형 원전의 건설 단가는 1kW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게다가 UAE 바라카 원전에서 보듯 예정된 공기를 맞추는 것도 우리 특기고, 안전성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체코 총리가 괜히 “한국이 모든 평가 기준에서 더 우수했다”고 한 게 아니다. 두 번째 딴지는 금융 지원. 김정호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가 체코 원전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 입찰 당시 제출한 투자의향서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자부 안덕근 장관은 이건 관행적인 문구라고 반박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한다. 이쯤 되면 미안하다고 하는 게 도리건만, 좌파에게 사과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김한규는 “당신들만 애국자입니까? 사업의 적절성을 따지는 저희들은 다 매국노입니까?”라고 SNS에 울분을 터뜨리는, 적반하장의 극치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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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두코바니 원전 /한국수력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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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공격이 다 무위로 돌아가자 의기소침한 좌파들이 기댈 곳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이번 입찰에서 탈락한 프랑스 EDF와 ‘한국 기술이 원래 우리 거였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 실제로 이 둘은 사이 좋게 손을 잡고 체코 반독점사무소에 이의 제기를 한 상태였다. 한수원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게 공공 조달의 원칙을 어겼다는 것, 위에서 말한 ‘원전 계약 일시 중단 조치’는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건 체코 당국이 ‘탈락한 애들이 서러워하니 듣는 척이라도 해주겠다’며 달래주는 절차일 뿐, 실제 계약에는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치는 일이었다. 어차피 정식 계약은 내년 3월이고, 한수원과 계약을 안 하면 더 큰 손해를 보는 건 체코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좌파들은 이 뉴스에 들뜬 나머지 밤새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였다.

그 축제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10월 31일 밤, 체코 반독점사무소가 프랑스와 미국 기업의 이의 제기를 기각해 버렸으니까. 클리앙 등 좌파 사이트들은 원전에 관심을 끊고 다시 ‘대통령 부부를 구속하라’고 외치는 중이다. 손자병법에는 ‘知彼知己 百戰不殆’란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 이제 보수도 좌파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자. 힘겹게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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