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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만물상] 美 남부연합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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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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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州)에서 앨라배마주까지 5주 1071km를 관통하는 주간(州間) 고속도로 85호선(I-85)은 미 동남부의 혈맥이다. 2022년 10월, 이 도로의 중간쯤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에 가로 15m, 세로 9m의 대형 깃발이 세워졌다. 붉은색 바탕 위에 파란 십자가가 X자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그 속에 13개의 하얀 별이 있는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였다.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며 1861년 미 연방을 이탈했던 남부 주들이 남북전쟁 때 사용한 깃발인데, ‘남부연합군 참전용사의 후손들’이란 단체의 지부에서 이를 사유지에 게양한 것이다.

▶남북전쟁은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이끈 북부군의 승리로 끝났다. 미 정부는 남부연합을 ‘반란군’으로 규정했고, 많은 미국인들은 남부연합기를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본다. 2020년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손에 사망하자, 미국 전역에서 대대적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일어났다.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 등 수많은 남부연합 상징물이 끌어내려졌다.

▶하지만 남부연합에 가담했던 주들에는 남부연합 상징물을 자신들의 ‘역사’로 보는 사람이 많다. I-85가 지나가는 5주도 모두 여기 속한다. 그래서 하루 8만여 대의 차량이 지나는 곳에 남부연합기가 내걸린 것이다. 지난해 7월 한 청년이 이 깃발을 끌어 내리려다가 ‘사유지 침입’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자, “옳은 일을 했는데 왜 처벌하냐”는 논란이 일었다.

▶160년 전 남북전쟁은 끝났지만, 그 영향은 이처럼 미국 사회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남부연합에 가담한 미시시피주에서 남부군 게릴라 부대 대령의 증손자로 태어난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평생을 이 문제에 천착해 1949년 노벨문학상을 탔다. 그는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이란 장편에서 남북전쟁의 영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지나갔다고 할 수도 없다.”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 시도가 있었던 3일, 광주광역시가 시청사에 미국 버지니아 주기(州旗)를 게양해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광주시장은 여신이 폭군을 짓밟은 그림 아래 적힌 ‘언제나 폭군은 이렇게 되리라(Sic Semper Tyrannis)’는 문구가 “의미심장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깃발은 버지니아주가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며 남부연합에 가담했던 1861년 만들어졌다. 링컨이 ‘폭군’이란 것이다. 그 의미를 떠나 미국 주 깃발 게양을 뜬금없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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