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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72] 낮은 확률의 사고가 참사로 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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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6일째인 지난 3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꼬리날개 부분을 크레인으로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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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면 누구나 좀 불안한데, 비행기 운항 중에 목숨을 잃을 확률은 생각보다 낮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 집단의 경우 승객이 사망할 확률은 2000만분의 1이고, 가장 안전하지 않은 항공사들이 200만분의 1이다. 보통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을 100만분의 1로 잡으니, 이 확률은 실로 꽤 낮다. 사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자동차가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가지 못한다.

비행기에 새가 충돌할 확률은 어떨까? 국제적인 통계를 보면 대략 비행 1만번 중 3회에서 8회 정도 새의 충돌, 즉 버드스트라이크가 발생한다. 비행기 속도가 빨라서 작은 새가 충돌해도 몇 톤의 충격을 가한다. 큰 새는 수십 톤의 충격을 준다. 그렇지만 엔진에 충돌한 경우, 엔진 날의 회전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새는 보통 분해되어 엔진 속으로 흡수된다. 그래서 조류 충돌로 비행기에 이상이 생겨 사망자가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 세계를 통틀어 지난 30년간 조류 충돌로 사망한 비행기 승객은 300명이 안 된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의 경우 2024년 여름까지 6년간 비행 1만1000건 중 10건의 버드스트라이크가 발생했다. 0.09%, 대략 1100번 중 한 번 일어난 셈이다. 빈도로 따지면 전국 1위였다. 그렇지만 과거 10번의 버드스트라이크 중 비행기에 심각한 결함을 유발한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조류 퇴치 인력도 최소화하고, 조류 퇴치를 위한 특별히 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공항에 별일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겠나’라는 안이한 태도는 다른 공항보다 잦은 버드스트라이크, 철새가 이동할 때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가 비행기에 충돌할 수 있다는 가능성, 비상시 작은 사고를 참사로 만들 수 있는 공항의 취약한 구조물 등의 구조적 문제점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되고 여기에 인적 오류(human error)가 결합하면 낮은 확률의 사고가 순식간에 참사로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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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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