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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소방관의 몸개그·랩 “세상 안전해진다면 저 망가지는게 대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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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유튜브 ‘소방관 삼촌’ 나경진 소방교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보는 ‘안전 교육’ 영상이 있다. 주황색 기동복을 입은 소방관이 얼굴에 허옇게 분칠을 하고 노란 가발을 쓴 채 헤비메탈을 부르며 아파트 화재 발생 시 행동 요령을 외친다. “대피할 수 있다면 신속하게 나가라” “창문에 손 흔들며 구조를 기다려라” “문을 닫고 젖은 천으로 틈을 막아라”....

충북소방악대가 빠르고 강렬한 음악을 연주하고, 그 앞에서 머리를 흔들며 노래하는 이 소방관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조회 수가 3주 만에 20만회를 넘었다. “공익 광고를 이렇게 만들면 집중 가능!” “일곱 살 아들이 ‘연기를 안 마시게 입을 막고 가야 해요’를 랩처럼 뱉고 있어요” 같은 댓글이 1700건이나 달렸다.

직장인은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교육을 받지만 온라인 강의를 유심히 보는 사람은 드물다. 안전 교육이 지루한 요식 행위에 그치면서 대리 수강이라는 직장 내 갑질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충북소방본부 나경진(34) 소방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에는 스스로 안전 홍보 동영상을 찾아 시청하는 이가 몰려든다.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 견제 대상으로 꼽은 인물. 11월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충북안전체험관에서 ‘소방관 삼촌’을 만났다.

◇특전사에서 ‘꽈당’ 소방관으로

그는 5년 차 젊은 소방관. 학군사관(ROTC) 출신으로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복무하다 중위로 전역했다. 일반 회사도 다녀봤지만 어릴 때 꿈이던 소방관에 도전해 2019년 임용됐다.

-유튜브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처음 근무를 시작한 청주 서부구조대는 작년 기준으로 사건 처리 건수가 전국 4위인, 굉장히 바쁜 곳이었습니다. 화재나 교통사고 출동도 많았지만 잠깐의 부주의, 안전 불감증으로 일어난 사고도 꽤 있었어요. 생활 안전사고를 예방하거나 대처하는 요령을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하다 2021년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존재를 알리는 게 어렵지 않았나요?

“처음엔 조회 수가 100도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춤을 추다가 미끄러지는 ‘슬릭백’(slick back·공중 부양 춤) 영상과 춤을 추다 전봇대에 부딪히는 영상을 만들어 올리니 호응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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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주시하지 않은 채 춤을 추다 기둥에 부딪혀 넘어지는 영상으로 전방주시 태만을 경고한 영상. /유튜브 소방관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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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을 운영하는 충북소방본부 나경진 소방교.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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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상 모두 약 15초로 짧지만 빙판길 사고 예방을 당부하기 위해 올린 ‘소방관 슬릭백’ 영상은 유튜브에서 13만회, X(옛 트위터)에서 350만회 이상 조회됐다. 전방 주시 태만이 교통사고 원인 1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춤을 추다 전봇대에 부딪히는 ‘세계로 가 소방관 삼촌’ 영상 역시 유튜브에서만 57만여 명이 봤다.

-그렇게 망가지면서까지 안전을 알려야 하나요?

“그 영상들도 처음엔 조회 수가 많지 않았어요. 겨울에 미끄럼 사고가 늘어나면서 알고리즘을 타 역주행한 겁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큰 사고가 나지 않으면 안전 수칙을 찾아보지 않아요. 재미있게라도 만들어야 눈길을 붙잡을 수 있고, 기억에 새기게 되겠죠? 제가 관종은 아니고요, 하하.”

그의 영상 끝에는 간명한 안전 수칙과 함께 “같은 제복 입고 같은 일을 하다가 먼저 가신 임들이시여~”라는 노랫말이 흐른다. 순직 소방관을 기리는 노래 ‘헌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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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을 운영하는 충북소방본부 나경진 소방교.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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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삼촌 영상을 보다가 소방가를 처음 찾아봤다는 사람도 많은데.

“소방관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명예로운 직업으로 여겨지는 건 선배들의 피와 땀 덕분이니 우리도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에요. 제 채널이 사랑받는 것도 제 직업이 소방관이기 때문이지요. 영상을 제작할 때도 그 마음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넣습니다.”

전국의 순직 소방 공무원은 559명. 모두 사고 현장에 출동해 인명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소방관이다.

◇”안전 교육도 소방관 일”

‘소방관 삼촌’ 유튜브를 시청하는 이들은 “사명감과 몸개그가 합쳐지면 이렇게 된다”고 열광한다. 하지만 일부는 “출동도 없고 한가하니 유튜브나 한다”는 악플을 남기기도 한다.

-악플을 읽는 영상도 만들었죠?

“마지막에 읽은 악플이 ‘예비 통구이’였어요. 이 악플에 대해선 제 반응 없이 영상을 끝냈는데 시청자들이 저보다 더 화를 내주셨죠. 소방관의 업무 중엔 화재 진압과 구조뿐 아니라 안전 교육, 사고 예방도 있습니다. 이것도 제 업무 중 하나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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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을 운영하는 충북소방본부 나경진 소방교.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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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나가기가 무섭진 않은가요.

“2022년 오송 지하 차도 참사 당시 ‘물가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방송이 나올 때 동료들과 수중 수색하러 들어가면서 ‘소방관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길이 아닌 정반대 길을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색이 끝나고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들었죠…. 그래도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반사적으로 움직입니다.”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다면.

“초년 시절에 나간 고독사 현장요. 진입할 때 재산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문을 부수는 대신 베란다 창문을 넘어 들어갔어요. 바닥에 사망하신 분의 체액이 흥건했는데 긴장해서 그랬는지 크게 미끄러질 뻔했죠. 시신 위로 넘어졌다면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고독사 현장에 다녀오고 난 뒤엔 한동안 청국장을 못 먹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라면을 끓이면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는 징크스가 있다던데.

“저는 크게 신경 안 쓰는데 ‘출동이 없네’ ‘한가하네’ 소리를 했다가 출동 벨이 울리면 다녀와서 커피를 한잔씩 돌리긴 합니다(웃음). 재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불문율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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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을 운영하는 충북소방본부 나경진 소방교.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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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에서 언제나 밝고 유쾌한 모습이지만 그 역시 트라우마에 시달린 적이 있다. 번화가에서 벌어진 음주 운전 사고 현장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사고 현장을 찍고 있는 행인들을 헤치고 현장에 들어갔지만 피해자는 이미 뇌가 머리 밖으로 빠져나온 상황이었다. 심폐 소생술에도 요구조자(그는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다)는 결국 사망했다. 그날부터 현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촬영하는 소리, 사망한 이의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길을 걸으면 차가 덮칠 것 같고, 자려고 누우면 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고. 소방관으로 일한 지 3년쯤 됐을 때 일이었다. 술을 마시고, 아내를 붙잡고 펑펑 울곤 했다.

“처음엔 이런 증상을 알리는 게 무서웠어요. 저를 믿고 현장에 들어가는 동료들이 불안해할까 봐 걱정됐거든요. 다들 비슷하게 병을 안고 삽니다.” 수면 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우울·불안 같은 증상을 겪는 소방 공무원들에게 상담·검사·진료비 지원이 된다는 ‘잘 자요, 반장님’ 영상을 올린 건 그런 경험 때문이었다. “일반 국민에게 전하는 안전 수칙도 있지만 소방 정책이나 복지도 알리고 싶어요. 동료들이 지원받을 수 있다는 걸 몰라서 병을 키우지 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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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을 운영하는 충북소방본부 나경진 소방교.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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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소방관이라면서요?

“구급대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전체의 70~80%는 구급대원이 출동하는 사건이라 저보다 출동이 잦지요. 막상 아내는 저한테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대요. 어딜 다쳤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고. 사비로 장비 구입하고, 개인 시간에 영상 편집하는 걸 이해하며 응원해 주는 든든한 조력자이기도 하지요.”

◇큰 사고 닥치기 전 안전 익혀야

작년까지 청주 서부구조대에서 현장 업무를 하던 그는 소방안전강사 경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올해 1월부터 충북안전체험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떤 신고가 가장 많은가요?

“음식을 태운 화재 오인 신고요. 소방차가 대거 출동하니 놀라서 탄 냄비를 숨기고, 자기 집이 아닌 척하면 일일이 탄 냄새와 연기의 시작점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상황을 종료할 수 있도록 ‘제가 음식을 좀 태웠어요’ 말하면 감사하겠어요.”

체험관을 찾는 사람은 하루 80여 명. 그는 이곳에서 완강기 사용법 등을 교육한다. 기자가 직접 완강기 사용법을 배워봤다. 완강기가 집에 있는지조차 가물거렸다. 지지대에 고리를 걸고, 로프가 감긴 원통을 밖으로 떨어뜨린 뒤 안전벨트를 겨드랑이에 고정했다. ‘팔을 W(더블유) 자로 펼친 뒤 벽을 짚으며 내려가면 된다’는 말에도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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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진(오른쪽) 소방교에게 완강기 사용법을 직접 배워봤다. 두 손을 모아 로프를 잡으면 안전벨트에서 몸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손을 더블유 자로 펼쳐 벽을 살짝 짚으며 내려가야 한다. 몇 번 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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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닥치면 안전 수칙을 따르기 어려울 것 같은데.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방화문 셔터에 미는 문이 있다는 게 알려졌죠. 사람들은 큰 사고가 나야만 관심을 갖습니다. 몇 달 전 부천 호텔 화재 사건에서도 완강기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피해를 키웠죠.”

그는 소화기 손잡이를 잡으면 안전핀이 뽑히지 않는다는 점도 기사에 꼭 적어달라고 했다. 소화기 손잡이가 아닌 몸통을 안고 안전핀을 뽑은 뒤 손잡이를 눌러 분사해야 한다는 것.

-갖춰야 할 소방 용품 세 가지가 있다면?

“집에 완강기와 주택용 화재 감지기가 있는지 꼭 확인해 주세요. 일반 차는 물론, 전기차를 탄다면 반드시 차량용 비상 망치를 구비해야 합니다. 벨트 끊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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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소방관 삼촌'을 운영하는 나경진 충북소방본부 소방교.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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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방교는 지난 5일 올린 영상에서 직접 만든 기념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 51만7000원에 사비를 보태 순직 소방 공무원 추모 기념회에 119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그의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 ‘헌시’의 다음 가사는 이렇게 흘러간다. “어찌해야 이 빚을 갚을 수 있나/ 갚을 수 없네 갚을 길 없네/ 그 사랑 그 명예 지키기 위해/ 땀을 흘리리 마음 다지리.”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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