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의 외설(엑스톡·ExTalk)]
美 “증거 없이 군사 작전 불가”
이스라엘 특수부대 투입해 증거 확보
시리아 싫은 사우디는 “땡큐 이스라엘”
예고대로 이번주는 이스라엘이 인접국 시리아가 북한의 도움으로 핵시설을 짓고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첩보를 입수하고 치밀한 계획 끝에 2007년 전투기 폭격이라는 군사 작전을 벌인 스토리입니다.
본 스토리는 봉인이 풀린 이스라엘 군 기밀 문서와 영상 자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부 장관의 회고록, 그리고 이스라엘 전·현직 장교들과 안보 부서 관계자 등에 대한 취재록이 담긴 저서 ‘강한이스라엘군대의 비밀(메디치)’을 압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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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시리아 핵과학자 오스만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이브라힘 오스만 박사가 북한 핵 과학자 추정 인물과 함께 있는 사진. 이스라엘은 첩보 활동을 통해 이 사진을 입수했으며, 이를 미 CIA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스라엘은 시리아 핵과학자들의 동태를 추적하다 중요한 첩보를 물었다. 2007년 7월 시리아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이브라힘 오스만 박사가 영국을 방문한다는 내용이었다. 모사드는 10여 명의 요원을 세 팀으로 나눠 런던에 투입했다.
브라보팀의 미션은 오스만이 묵을 호텔방에 잠입하는 것이었다.
찰리팀 미션은 영국 내 오스만의 모든 활동을 24시간 감시하는 것이었다.
요원들은 모사드의 암살 전문팀인 ‘키돈’과 도청기기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팀인 ‘네비오트’ 소속이었다.
잠시 뒤 오스만 박사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지 파악해야 했다. 다른 요원들은 그를 미행했다.
박사는 호텔을 나가 런던 주재 시리아 대사관으로 향했다. 그의 방에 들어갈 틈이 난 것이다.
요원들은 오스만의 호텔 방에 신속하게 잠입했다. 방에는 노트북이 있었다. 노트북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이 작업에 약 15분이 소요됐다. 임무를 마친 이들은 침입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방을 빠져나왔다.
노트북에서 빼낸 자료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놀랄만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모사드 분석관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리아 핵개발 정보가 가득했던 것이다. 핵개발과 관련해 다름 아닌 북한과 의견을 주고 받은 내용도 있었다.
시리아가 동부 ‘디르 아 조르’에서 핵시설을 건설하고, 이를 북한 핵전문가들이 계획·감독하고 있다는 걸 유추할 만한 자료도 나왔다.
이란이 시리아의 핵개발 비용으로 10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는 정황도 나왔다.
이란·시리아·북한 등 3국이 시리아에 핵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삼각 협력’을 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이란이 시리아의 원자로 건설을 지원하는 건 유사시에 자신들이 쓸 의도인 것으로 분석됐다.
◇ “파괴해야한다” “노노, 안돼”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부시 미국 대통령. /이스라엘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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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는 오스만 박사의 노트북에서 입수한 내용을 미국과 공유했다. 시리아와 북한 간에 오고간 전화통화 내용을 감청해 보내기도 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2007년 6월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그는 부시 대통령을 만나 말했다.
“시리아 원자로를 파괴해야 합니다.”
이대로 뒀다가는 이스라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그때는 원자로를 파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라고 설득했다.
부시의 표정은 어두웠다.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부시의 보좌관들이 올메르트에게 말했다.
“이게 모양만 그럴싸하고 실제 원자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더 확실한 정보가 입수되지 않는 한 어떤 군사작전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측은 이스라엘에 “원자로 건설로 보인다는 추정만으로 폭격을 했다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오히려 정치적 역공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이어 2003년 이라크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시리아에까지 군사 개입을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특히 이라크전쟁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공격해 이를 예방해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막상 전쟁 이후 조사 결과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도 부인 못할 완벽한 증거를 찾아라”
북한의 영변 원자로(왼쪽)와 시리아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 사진. 미 정부가 시리아 핵 개발을 북한이 직접적으로 돕고 있다는 증거로 이 사진을 제시했다. /로이터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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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메르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자체 보유한 정찰 인공위성 ‘오페크’를 통해 증거 수집에 더욱 힘을 쏟았다.
시설의 형태가 북한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도 찾아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시설이 일반 공장인지 원자로인지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했다.
마지막 카드를 써야 했다. 사람을 보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올메르트는 특수부대를 시리아 핵 시설 의심지로 투입시키기로 했다. 직접 찾아가 방사능이 검출되는지를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2007년 8월,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레트 마트칼’의 대원들이 야간을 틈타 헬리콥터를 타고 시리아 디르 아 조르에 날아갔다. 대원들은 시리아 군복으로 위장했다.
헬리콥터는 레이더에 걸리지 않도록 저공비행을 했으며 핵 의심 지역 인근에 대원들을 내려줬다. 그리고 대원들은 시설 현장에 접근해 토양 시료를 채취했다. 방사능이 검출되면 이 시설이 원자로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올메르트가 나중에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 대원들은 의심 건물 내부에도 들어가 건물 외형은 직사각형의 평범한 건물 같지만 내부는 핵시설로 이뤄져 있는 광경을 사진으로도 촬영했다고 한다.
대원들은 이스라엘로 무사히 돌아와 토양 시료를 검사관에 넘겼다. 조사 결과 자연 상태보다 훨씬 높은 방사선이 검출되었다. 그간 통신 감청, 위성사진 촬영을 통해 추측했던 대로 디르 아 조르의 시설이 원자로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시리아 핵을 바라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온도차
조지 W. 부시 미 전대통령의 회고록 '결정의 순간' 표지. |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원자로 공격에 반대했다. 외교 협상도 없이 단번에 주권 국가를 폭격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미국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를 공격했지만 그 전에 유엔에서 이라크를 공격해야 할 명분에 대해 나름대로 자료를 가지고 설명하는 절차를 거쳤다. 이스라엘은 이런 과정도 없이 곧장 시리아를 공격하자고 했으니 미국이 난색을 표한 것이다.
어쩌면 미국은 시리아가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해도 자국 안보에 위협이 안 된다고 생각해 군사 개입을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 시리아의 핵무기 보유로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사태의 중대성을 느끼는 정도가 미국과 달랐다.
모사드 부장 메이르 다간은 핵시설의 실체를 확인한 이상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마이클 헤이든 CIA 부장은 생각이 달랐다.
시리아가 분명 군사 보복에 나서 중동 지역이 불바다가 될 위험이 크다는 논리를 폈다. 다간은 핵시설을 파괴한 이후 이를 언론 등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기만 한다면 시리아가 보복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 되받아쳤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움직여라
미국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 뒤로 미 의회가 보인다.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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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올메르트는 1980년에 총리 메나헴 베긴이 이라크 ‘오시라크’ 시설을 폭격한 직후 “우리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을 선택했습니다. 나중은 너무 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던 연설을 떠올렸다. 이른바 ‘베긴 독트린’이다.
올메르트는 부시에게 더 이상 공격을 요청하지 않았다. 미국이 뭐라 하든지 이제는 알아서 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부시 대통령에게 ‘이스라엘 안보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겠다’는 메시지만 전했다고 한다.
부시는 더는 하지 말라하지 않았다. 침묵했다. 돕진 않겠지만, 말리지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시리아가 비밀리에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사능 토양’ ‘내부 사진’ 등으로 입증한 이상, 미국도 이스라엘의 의지를 막을 수만은 없었다.
부시의 훗날 회고록을 보면, 부시는 올메르트와 이 같은 내용의 통화를 마치고 나서 보좌관들에게 “이래서 이 사람이 좋단 말이야. 배짱이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는 나라가 미국이 반대하는 군사작전을 감행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바로 지금 ‘예방공격’을 하지 않으면 나중엔 일이 더 커진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국의 뜻을 거스르더라도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베긴 독트린’이 이스라엘 안보 정책의 기틀이 돼 26년이 지나 올메트르 정부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과수원 작전’을 개시하다
결심한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올메르트는 작전 준비를 지시했다. 디르 아 조르의 핵시설 이름은 ‘알키바르’였다.
알키바르를 파괴하기로 한 작전명은 ‘과수원작전’이라고 지어졌다.
공군 엘리제르 쉬케디 장군은 이 작전을 수행할 정예의 조종사들을 선발해 네게브사막에서 비밀 훈련에 들어갔다.
그는 기밀 유지를 위해 어떤 작전을 할지 일절 말해주진 않았다. 조종사들은 30도 각도로 하강하면서 작은 목표물을 공습하는 연습을 반복할 뿐이었다.
2007년 9월 5일 밤, 쉬케디 장군은 조종사들을 소집해 설명했다.
“이제 곧 작전이 개시될 것이다. 그간 수고 많았다. 공습 목표물은 알키바르다.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작전 개시 직전에 비로소 작전의 목표를 알려준 것이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의 자서전. '평화 찾기(Searching for Peace)'. |
그날 밤 11시 이스라엘 중북부 라마트 다비드 공군기지에서 F-15I 라암(히브리어로 ‘번개’라는 뜻) 전폭기 10대가 출격했다.
F-16I 수파 전투기와 공중조기경보기도 이륙해 엄호했다. 지중해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하던 이들은 F-15I 7대만을 남기고 귀환 명령을 받았다.
F-15I 7대는 터키와 시리아를 향해 비행하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알키바르로 향했다. 이들은 터키 국경 지대인 시리아의 탈 아비야드 지역에 있는 레이더 기지 일부를 정밀 타격하고 나머지 레이더 기지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렀던 시리아는 대공 방어 능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핵시설에 가기도 전에 요격될 위험이 컸다.
한 유럽 정보부 관계자는 “이스라엘이 레이더 기지 폭격뿐 아니라 시리아 레이더 기지 곳곳에 오작동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심어뒀다가 작전이 개시됐을 때 작동하게끔 한 듯하다”고 추측했다.
전폭기들은 별다른 방해 없이 최종 목적지인 알키바르에 도달했다. 어느새 자정이 넘어 6일이 됐다.
이미 하루 전 이 지역에 잠입해 대기하던 이스라엘 특수부대 샬다그의 요원들이 알키바르에 레이저 지시기를 조준하여 전폭기들에 정확한 표적을 알려줬다. 전폭기들은 차례로 폭격을 가했다.
알키바르 원자로가 파괴됐다. 이스라엘의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당하고도 별말 못한 시리아
이스라엘의 과수원 작전 이미지. /이스라엘 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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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직후 올메르트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또 다른 핵시설에도 관용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 문제를 가지고 국제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등 소란스럽게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시리아와 평화적으로 지내는 데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시리아 정부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헤이든 CIA 부장의 분석대로 보복에 나섰을까? 그렇지 않았다.
6일 아침 시리아 정부는 아무 성명도 내놓지 않다가 오후 3시가 돼서야 짧게 폭격 사실을 전파했다.
“이스라엘 항공기가 새벽에 시리아 영공을 침범해 ‘사막’에 폭탄을 투하한 뒤 우리 공군의 경고를 받고 퇴각했다. 인명·재산 피해는 전혀 없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스라엘에 의해 국가 핵심 시설인 원자로가 폭파되고 이를 전혀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차마 공개할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조용히 있는 한 시리아 정부는 이를 어떻게든 그냥 넘어가길 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과수원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사우디도 시리아 핵무장 원치 않아…”땡큐 이스라엘”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종파가 나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종주국으로 같은 수니파 국가들과 연대감을 갖는다.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로서 시아파 계열인 시리아,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 종파 때문만 아나라 지정학, 미국과의 외교관계 등 여러 가지가 작용하겠지만 대체로 이들 수니파, 시아파 국가들은 서로를 견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조선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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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 시설을 파괴하는 ‘오페라 작전’ 때는 이라크 정부는 물론이고 이웃 아랍 국가와 서방국가들도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하지만 과수원 작전에 대해서는 고요하다고까지 할 정도로 모두 가만히 있었다. 무슨 차이가 있었기에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일까.
미국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의 레오나드 스펙터 박사는 “시리아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하는 것은 중동 다른 나라들도 다 원치 않았다. 반감이 컸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한 비난이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시리아 정권은 이슬람 시아파 정치세력으로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가깝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수니파 국가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사우디는 이란과 지역 패권을 두고 다투기 때문에 이란의 위성국가처럼 여겨지는 시리아의 핵무기는 안보의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다. 시리아의 핵보유는 사실상 이란의 핵보유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과수원작전을 성공적으로 해낸 이스라엘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골칫덩이를 대신 떼 준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우디나 터키는 속으로 자신들이 하지 못한 걸 대신 해준 이스라엘에 땡큐를 외쳤을 것이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와의 아침 식사
이스라엘이 실패한 '라비(Lavi)' 전투기 개발사업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책 라비. /아마존 |
이런 이스라엘에게도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당장 작년 10월 7일 하마스에 기습 공격을 당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것도 대표적입니다.
벌써 7년 전인데요. 광화문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자정 넘게 야근을 하고 다음날 오후 출근을 하는 2017년 8월 8일이었습니다.
오전 8시 저는 서울 이태원동의 이스라엘 관저에 가서 카임 코쉔 대사와 단 둘이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국제부 근무하면서 서울에 있는 몇몇 외국 대사나 외교관들과 가까이 지냈는데, 종종 이들과 야근한 다음날이면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 조찬을 즐기곤 했습니다.
이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습니다.
식탁에는 통밀빵, 스크램블드에그, 야채샐러드, 우유를 넣은 커피가 올라왔습니다. 전형적인 이스라엘식 아침상이었습니다. 물론 다 유대교 율법에 따라 조리된 코셔 음식이었습니다.
저희의 대화에서는 메르카바나 아이언돔 같은 무기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제가 자주 국방 의지가 돋보이는 사례들이라고 말하자 코쉔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스라엘군의 무기 개발사에는 실패 스토리도 있다고 했습니다.
대사인 만큼 자기네 자랑거리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실패 경험을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드러내기에 속으로 놀랐습니다.
실패 스토리가 뭔지 궁금하다고 묻자 그는 까만 커피에 하얀 우유를 붓고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시더니 전투기 라비의 개발 실패를 들어본 적 없느냐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다음 뉴스레터 외설(ExTalk)에서는 바로 이 때 들었던 이스라엘의 전투기 개발 실패 비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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