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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서울대치과병원 교수가 자격증 4개 딴 이유는[Break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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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과 냄비, 계량컵, 각종 그릇과 조리 기구, 양념장, 세 대의 소형 냉장고, 그리고 전자레인지까지. 부엌을 묘사한 것이냐고요? 아닙니다. 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진료처장(54)의 연구실 풍경입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책이 한가득한 책장과 책상 사이에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가 연구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요. 옷도 이곳저곳 걸려있습니다.

이 정도면 교수의 연구실이라기보다는 자취하는 원룸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실제로 명 교수는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사흘을 이곳에서 먹고, 자고, 씻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치과의사의 삶과는 사뭇 다르죠.

그가 이 같은 생활을 하는 이유는 ‘진료하고 수술하느라 바빠서’입니다. 그의 전공은 구강악안면외과. 툭하면 응급상황이 발생해 급하게 병원으로 와야 하는 때도 발생하고요. 그는 주로 구강암을 치료하고 있는데, 구강암 수술은 출혈도 많고 생명에 위험이 많은 난이도 높은 수술인 데다 밤을 새우기 일쑤입니다.

이 와중에 그는 환자들을 더 잘 치료하기 위해서 △사회복지사(1, 2급) △영양사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등 네 개의 자격증 및 면허증도 취득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수시로 의료 봉사활동도 합니다. 어떤 소명 의식이 그의 삶을 이끄는 것인지, 〈브렉퍼스트〉팀이 탐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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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가 턱뼈 모형을 들고 구강악안면외과의 치료 영역과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술은 밤늦게 끝나기 일쑤고, 당직 근무와 응급상황 때문에 개인적인 일상을 누리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공부해 8년에 걸쳐 △사회복지사 1급 △영양사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등 네 가지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고3으로 돌아가도 치대를 진학할 것이고, 또다시 구강악안면외과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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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부자’가 된 이유

치과의사 면허증,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 자격증 등 의료인으로서 얻은 자격증 말고, 처음으로 도전한 자격증은 ‘사회복지사’였습니다. 무연고, 불법체류 등 다양한 이유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만나면서 필요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떳떳하지 못한 신분이더라도 인권이 있고, 아픈 걸 참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제도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환자들에게 부당한 게 있다고 느껴지면 싸울 줄도 알아야 하고요.”

치과 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치과 영역밖에 없었지만, 사회복지사로서 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은 굉장히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회복지의 기본적인 원리를 깨칠 수 있는 학문과 지식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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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가 자신이 쓴 논문을 소개하고 있다. 해당 논문은 영양학회에서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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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뒤 그가 취득한 면허증은 ‘영양사’입니다. 제대로 먹질 못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죠. 고통스러워하는 구강암 환자들의 모습에 영양학 공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구강암 수술을 받은 뒤 먹는 데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들이 제게 ‘날 왜 살려놨냐’고 불평할 때가 있을 정도인데요. 저는 약식동원(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음)의 개념을 어느 정도 믿는 편인데, 환자가 뭘 먹어야 살이 안 빠지고 잘 회복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영양사 면허증을 딴 뒤로는 ‘말발’도 잘 먹혔습니다. 환자에게 ‘이렇게 먹으라’고 권유를 하면 ‘교수님은 제 상황을 잘 모르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오곤 하는데, 명 교수가 ‘내가 영양사 면허가 있다’고 하면 조언을 잘 들어준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그가 도전한 건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입니다. 치매 환자와 요양보호 환자들을 치료하며 느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치매 환자나 요양보호 환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요. 이 때문에 ‘어떤 점이 힘들겠구나’라고 추측할 뿐이죠. 환자와 함께 병원을 찾은 요양보호사에게 환자를 어떻게 잘 이송하고, 평소에 환자의 치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알려주려면 제가 먼저 요양보호사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간호조무사 자격증 공부를 통해서는 소독과 위생 부분에 있어서 지식을 쌓을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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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평소 생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사흘은 이곳에서 잠을 자고, 직접 요리해 끼니를 때운다. 왼쪽 선반에는 각종 그릇과 프라이팬, 조리도구가, 양념장 등이 정리돼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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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교수가 이렇게 네 가지 자격증을 따는 데는 걸린 시간은 무려 8년. 진료와 수술 등 일상 업무와 병행하느라 온전히 공부에 몰두할 수 없어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시간을 쪼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요양원을 찾아 실습했습니다.

수고스러운 일. 하지만 네 개의 자격증은 환자를 잘 진료하는 것을 넘어 서울대치과병원 진료처장의 역할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제가 평소에 교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업무도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직역에 계신 분들을 만나게 돼요. 처음에는 제가 교수라는 이유로 그분들이 저를 경계하는데, 제가 같은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 경계가 풀어지고 대화가 풀려나가죠.”

피 적게 보려고 치대 진학했다가, 피 제일 많이 보는 전공 선택

사실 명 교수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는 좀 더 편하고 수월한 인생을 꿈꿨습니다. ‘직업의 안정성을 고려하면 전문직이 최고’라는 세태 속에서 ‘치과의사는 다른 의사만큼 피를 많이 보지 않을 것이고, 낮에만 근무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치대를 선택했다는데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선택한 전공, 구강악안면외과는 치과병원의 진료과 중에서 가장 피를 많이 보는 전공입니다. 말 그대로 입과 치아, 턱, 얼굴을 외과적으로 수술하기 때문인데요. 구강암부터 얼굴의 기형, 구순구개열, 안면 골절, 인공치아 재건(임플란트), 치아 발거술 등의 치료를 합니다.

특히 명 교수의 주요 분야인 구강암 수술의 경우 구강이나 목, 얼굴 등에 생기는 암 덩어리를 떼어내고 새로운 살을 이어 붙여야 합니다. 출혈은 피할 수 없습니다. 경동맥이나 신경을 건드릴 위험도 커 난도가 높습니다. 수술 시간은 짧게는 반나절부터 하루 꼬박 넘어가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요.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죠.

그래서 구강악안면외과는 비인기 전공입니다. 명 교수가 서울대치과병원에서 20년 넘게 근무할 동안 전임의가 딱 두 명 있었는데, 결국 두 명 모두 다른 전공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제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는가’라는 의식 없이는 못할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수년에 한두 명씩은 구강악안면외과를 해보겠다는 주니어 교수들이 나타납니다. 저한테 기술을 물려주셨던 교수님이 저랑 20년 차이가 나거든요. 이렇게 이어져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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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치과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과 함께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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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치과의사들이 혀를 내두르는 길에 그는 어떤 계기로 발을 내딛게 됐을까요. 명 교수는 다소 ‘귀여운’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인턴 시절에 외과를 갔는데 너무 신세계인 거예요. 인턴이다 보니 어리숙해서 교수님한테 혼나기도 하면서도, 밤새 수술을 한 뒤에 24시간 해장국집에 들러 밥을 먹고 나면 마치 내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문득 이 신세계를 내가 컨트롤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하더라도 임플란트나 매복치 및 사랑니 발치 등의 분야로 개원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도 개원을 선택한 동료들도 많고요. 그런데도 그가 서울대치과병원에 남아 계속해서 구강암 환자를 치료하고,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사명감 때문입니다. 뻔한 것 같지만 다른 이유가 있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돈을 벌려고 개원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도 같아요. 하지만 그러면 지금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의 가치가 굉장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 능력으로 제자를 가르치고, 나를 믿고 따라와주는 환자들과 직원들이 있고, 어려움을 함께 감내해줬던 가족들도 있으니…. 저는 사실 다 가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개원한) 친구들은 저보다 부동산이 많아요. 자식들 좋으라고 하는 걸 수도 있죠. 제 자식들은 어릴 때부터 버릇이 돼서 자립심이 강하고 저한테 뭔가 물려받을 생각을 안 해요. 자식 교육도 참 잘한 셈이죠. 행복지수를 따져보면 큰 차이가 없다고 봐요.”

진지한 얼굴에서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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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는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감동”

명 교수는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는 교수로도 손꼽힙니다. 그동안 필리핀, 피지, 중국, 베트남 등에서 해외 봉사를 했고요. 서울대에서는 사회봉사 교과목 담당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0대, 40대 때는 환자를 잘 치료하고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명성을 날리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어느덧 50대가 되면서 노인복지와 요양, 소외된 사람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돕고 싶더라고요. ‘더 가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고, 그게 사회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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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2011년 필리핀의 한 마을에서 여자 어린이의 치아를 치료하고 있다. 명훈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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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 봉사 철학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첫째, 봉사를 자신의 교만에 의해 할 거면 하지 말 것. 둘째, 봉사는 지속 가능해야 할 것. 셋째, 능력을 갖춰 봉사할 것.

“강의를 준비하면서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처럼, 봉사하면 봉사를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감동과 자부심을 갖게 돼요.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자격과 능력, 의지, 재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봉사에서 훨씬 유리하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기 능력을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명 교수는 서울대치과병원에 노인 전문 치과 진료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구강암은 한국에서는 발생 빈도가 높은 암은 아니지만, 노인 환자가 많습니다. 그만큼 치매나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많고요.

“노인 환자의 경우 영양 관리가 중요하고요. 인지능력이 없는 분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대책도 필요해요. 노인의 요구를 파악하고 노인에게 특화할 수 있는 진료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죠. 어차피 우리는 다 늙습니다. 우리 사회는 무조건 고령화로 가게 돼 있고요. 은퇴 후에도 소외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발굴해 의술을 베풀려고 합니다.”

인터뷰 말미, 취재진이 명 교수에게 치대 후배나 학생들을 위해 하고 싶은 조언을 묻자, 그는 ‘제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이라며 아래와 같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to. 치과대학에 입학한 후배들에게

자격증을 갖고 있고, 어려운 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자 기회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돈을 좇는 데만 사용하겠다는 것만큼 불행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업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개업을 해서 얻는 부분의 일부는 사회봉사에 환원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금전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거나, 그런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는 ‘금수저’라면, 과감하게 돈을 좇지 말고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치과의사’라는 라이센스는 섬세하게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데에 굉장히 유리하고 좋은 직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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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는 구강암에 대해 “조기 예방과 정기검진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치과 의사 선생님들은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구강암의 전조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상 징후를) 잘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강암은 생존율이 떨어진다고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암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암도 아니다”라며 “암 투병이 시작되면 합병증과 후유증을 두려워말고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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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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