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 건물 외벽에 기후운동가들이 “이번 기후변화총회(COP29)는 화석 연료를 끝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비추고 있는 모습. 오는 11일부터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린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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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시간 낭비다. (…)우리에겐 더 많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는 올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최상위 협의체인 당사국총회(기후변화총회) 참석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저스틴 트카첸코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은 지난 10월23일 “파푸아뉴기니와 다른 작은 나라들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한 진전이 확실해질 때까지 파푸아뉴기니는 ‘정치적인 수준’(political level)에서 기후변화총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선 8월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뉴기니 총리는 이번 ‘불참’이 “탄소발자국이 큰 산업국가들이 기후변화의 피해국인 삼림·해양 국가들을 즉각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데 대한 항의”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총회에 대해 비판도 많고 불참도 많았지만, 한 나라가 ‘정치적인 항의’ 차원에서 참석 거부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푸아뉴기니는 대표적인 기후변화 ‘피해국’으로, 2016년에는 국제사회가 처음 의무화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가장 먼저 제출하는 등 그간 기후변화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국토 77%가 열대림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전지구의 ‘허파’로 꼽히지만, 세계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등 해수면 상승, 홍수, 산사태, 가뭄 같은 기후 재해에 가장 취약한 나라이기도 하다. 올해 5월에는 긴 폭우가 야기한 대규모 산사태로 2천여명이 매몰되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트카첸코 장관은 “최근 3년간 기후변화총회는 헛돌기만 했을 뿐 (파푸아뉴기니 같은) 작은 섬나라들을 위해 어떤 실질적인 결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국을 지원하겠다는) 주요 오염국들의 약속은 모두 공허한 말에 불과했다”, “기후변화의 파괴적인 결과를 견디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헛된 약속과 무위를 용납하지 않겠다”, “국제 사회는 기후변화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우리 같은 국가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우리는 소외되는 데 지쳤다” 등 날선 발언들도 내놨다. 국민과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독립적인 방법”을 찾아 “우리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겠다”고도 밝혔다.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는 올해 기후변화총회에 ‘항의’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뉴기니 총리의 모습. 파푸아뉴기니 정부 누리집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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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났던 파푸아뉴기니 엥가주 산악 지역에서 주민들이 삽과 맨손으로 산사태 희생자 수색 및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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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의 이 같은 목소리는 주요 오염국들이 현실성 없는 ‘말잔치’만 벌일 뿐 30년 넘도록 이렇다할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 기후변화총회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아제르바이잔 등 화석연료를 주로 생산하는 나라들이 연속으로 의장국을 맡은 데다 인권 침해 등 각 나라들의 여러 문제들까지 불거져, 기후변화총회가 화석연료 국가·기업, 권위주의 정권 등의 ‘녹색 세탁’(그린워싱)에 동원되고 있다는 비판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기후행동’을 상징하는 인물인 그레타 툰베리는 최근 조지아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또 다른 권위주의 정권, 석유국가가 총회를 여는 것은 극도로 위선적인 일”이라며, 지난 총회들에 이어 이번 총회에도 가지 않을 거라고 밝혔다. 툰베리는 2022년 글래스고 총회(COP26)의 ‘맹탕’ 결과에 실망해 “실패”라고 맹렬히 비판했었고, 그 뒤 산유국인 이집트, 아랍에미리트가 연 총회들에도 ‘거부’를 밝히며 날선 비판을 이어왔다. 툰베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제르바이잔 같은 권위주의적이고 석유의존적인 국가가 기후변화총회 같은 전지구적 기후 행사를 주최하도록 허용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며, “이런 결정은 기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환경과 인권 침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렸던 기후변화총회(COP28)을 ‘보이콧’하기 위해 기후행동 관련 단체들이 만든 누리집. 누리집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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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은 전세계 30위권에 드는 석유 생산 국가로, 의장국이 된 뒤로도 앞으로 10년 동안 가스 생산량을 32% 늘리겠다 등 화석연료 확대 계획을 내놓아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10년 동안 대통령을 했던 아버지를 이어 2003년부터 21년 동안 대통령직을 지키고 있어 ‘세습 독재자’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집회를 금지하고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수감하는 등 ‘인권 탄압’ 비판도 받는다.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2024년 국가별 자유 지수에서 “정부가 최근 몇 년 동안 시민적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을 자행해, 독립적인 표현이나 활동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다”며 아제르바이잔에게 100점 만점에 7점을 줬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1800여개의 가짜 계정이 아제르바이잔을 칭찬하는 게시글을 도배하고 있다”며 의장국이 총회를 앞두고 ‘녹색 세탁’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총회를 앞두고 지난 1일 낸 논평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며, “모든 총회 참가국은 아제르바이잔 정부에 투옥 언론인 즉시 석방 등 인권 상황을 의미 있게 개선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총회를 거부하는 것이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순 있지만,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크다. 가디언은 올해 ‘불참’을 선언한 파푸아뉴기니 정부의 결정이 이 나라 기후운동가들에게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8일 보도했다. 기후운동가 빈젤허 안조 넨은 “참석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자금과 자원을 지원받고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 중요한 기회들을 잃게 된다”며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던컨 가비는 이러한 움직임이 중요한 논의로부터 나라를 고립시키고 기후 적응과 완화를 위한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찾는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가디언에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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