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벨기에 앤트워프항에 컨테이너선이 입항해 있다. 앤트워프/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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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강경한 보호주의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기업들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벌써부터 공급망 혼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공언한 고율 관세로 인한 공급망 불안에 미국 기업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9일(현지시각) 트럼프의 고율 관세가 상당수 업체들의 부담을 몇 세대 만의 최고 수준으로 키울 것으로 예상돼 업체들이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발 업체 디어스태그스를 경영하는 릭 머스캣은 대선 이튿날 중국 베이징의 중개인에게 전화해 내년 1월 말 중국 춘제 전까지 남성용 구두 3만켤레를 더 보내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그는 “그들이 만드는 대로 모두 살 것”이라고 했다.
이는 트럼프가 대부분의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하면서 중국산에는 60%를 부과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내년 1월20일 취임 직후 이를 실행한다면 미국 수입 업체들과 소비자들은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미국 소매연합회는 트럼프가 예고대로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소비자들은 의류·완구·가구·가전제품·신발을 사는 데만 연간 460억~780억달러(약 109조원)를 더 부담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가장 큰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이는 중국에서 사업을 접거나 축소하려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신발 업체 스티브매든은 70%를 차지하는 중국 제조 물량을 캄보디아·베트남·멕시코·브라질로 분산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 중국 쪽 비중을 40%대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고율 관세는 관세 수입을 늘리고 공장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 제조 기반이 사라지고 가격 경쟁력도 갖기 어려운 업종들은 부담 증가와 혼란만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밖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려는 미국 기업들은 이전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트럼프가 다른 나라들을 대상으로도 고율 관세를 적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트럼프가 집착하는 무역적자를 줄여줘 그를 달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8일 트럼프와의 통화를 언급하며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그보다 싼 미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유세에서 유럽과의 무역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그들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에게 다시 그 자리를 맡으라는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이끌고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설계한 라이트하이저는 매우 강경한 보호주의자로 불린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가 7나노 이하 인공지능(AI) 칩의 제조를 11일부터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중국 설계 업체들에게 통보했다고 8일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티에스엠시가 앞으로는 이런 칩을 중국에 공급하는 데 미국의 승인 절차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티에스엠시의 결정으로 알리바바나 바이두처럼 인공지능 클라우드용 반도체 설계에 많은 투자를 해온 중국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중국 업체들이 설계한 인공지능 칩도 파운드리 업체들이 만들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던 터였다.
티에스엠시의 결정은 미국 정부 수출 통제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트는 중국 화웨이의 첨단 인공지능 칩셋 ‘어센드 910비(B)’를 분해한 결과 티에스엠시(TSMC) 프로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를 위반하는 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20년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가 미국산 장비를 사용해 제작된 반도체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티에스엠시는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미국산 장비에 크게 의존한다.
티에스엠시의 조처는 트럼프를 의식한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그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대만이 우리 반도체 산업을 훔쳐갔다”며 대만과 티에스엠시를 비난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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