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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데버라 스미스 “한강 노벨상, 공정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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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5월 맨부커상을 수상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작가 한강(오른쪽)과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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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주로 백인 남성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유럽 중심주의와 성차별이 만연했는지 보여줍니다. 한강이 121년의 노벨문학상 역사상 아시아 여성 최초로 이 상을 받는 것은 문학계가 공정한 시대, 개인의 정체성이 공로를 가리지 않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영국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37)가 12일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피력했다. ‘한강과 번역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국내 통신사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서다.



문학계의 공정성과 관련해, 스미스는 “영어를 단지 세계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는 것은 이런 공정성의 일환일 것”이라며 스웨덴 한림원이 “자국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다양한 작품들”을 평가하고 “한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를 읽고 쓰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반영”한 결과가 이번 노벨 문학상이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영문학)와 런던대 대학원(한국학)에서 공부한 뒤 한강의 ‘채식주의자’(2015년), ‘소년이 온다’(2016), ‘흰’(2017), ‘희랍어 시간’(2023, 이예원 공역) 등을 영역했다. 특히 ‘채식주의자’로 번역 부문에 상을 주는 부커상 국제 부문 첫 회 수상자(2016, 당시는 맨부커상)가 되며 한강을 서구권에 크게 알렸다. 스웨덴 한림원도 ‘채식주의자’를 두고 “국제적으로 약진시킨 한강의 주요 작품”(Han Kang’s major international breakthrough)으로 평가했다.



스미스는 기고문에서 “한강의 작품을 사랑하는 세계의 무수히 많은 독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강의 뛰어난 작품이 인정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기쁜 일”이라며 ‘소년이 온다’ 영역 출간 뒤 한 시인이 “저는 그것이 중요한 책이고, 기념비적이며, 정치적인 폭력과 그 영향을 다룬 새로운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더해줍니다”고 편지를 보내온 일, 한강 작품의 유럽권 여러 번역가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한 일 등의 일화도 소개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에 한강의 작품을 통해 형성된 ‘번역 공동체’의 공헌도 주되게 언급했다. 스미스는 “(유럽, 남미권 여러 번역 작품이) 한국어에서 직접 해당 언어로 이뤄졌고, 영어는 이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영역에 앞서 스웨덴, 프랑스, 노르웨이, 네덜란드어로 번역 소개된 ‘작별하지 않는다’가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거”라며 “영어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고도 말했다. 이는 한강 작가의 국제 에이전시인 알시더블유(RCW)가 지난달 한겨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강조한 내용과 겹친다.



2021년 국내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내년 1월 영역 출간되고, 한강의 유일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노벨상 직후 최종 계약과 함께 출간 일정이 당겨지며 서구권 가운데 프랑스에 내년 3월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아래는 기고문 전문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강과 번역에 관하여.



한강의 작품을 사랑하는 세계의 무수히 많은 독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한강의 뛰어난 작품이 인정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2016년 '소년이 온다'(영어 제목 'Human Acts') 영어 번역본이 영국에서 출판됐을 때, 존경받는 한 시인은 제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것이 중요한 책이고, 기념비적이며, 정치적인 폭력과 그 영향을 다룬 새로운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더해줍니다." 한강의 작품 활동을 오랫동안 지켜본 우리에게 노벨상은 이미 우리가 알던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한강은 종전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인정을 받는 작가가 됐습니다. 이 상이 어떻게 수여되는지를 두고 다소 혼란이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2016년 '채식주의자'가 부커상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노벨상은 작가의 전체 작품에 수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권 중심적인 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커상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노벨상 심사위원들은 스웨덴인이며 여러 언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자국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다양한 작품들을요. 심사위원들이 최종 결정을 내리긴 하지만, 한국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를 읽고 쓰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반영합니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한강의 작품성을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어는 세계의 중심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한강의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미 스웨덴어, 프랑스어, 노르웨이어, 네덜란드어로 번역됐습니다. 그리고 이 점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2021년 한국어로 출간됐고 번역가 이예원과 페이지 모리스의 영어 번역본은 내년 1월 출간될 예정입니다. 영어 번역본에 대한 사전 리뷰는 "한강이 자기 작품 세계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이었고, 네덜란드어 번역본에 대해서도 "한강이 이보다 더 아름답게 쓰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으며, 프랑스어 번역본은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선 202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채식주의자'가 한강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지만,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는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작품은 굉장한 베스트셀러였고 역사적 트라우마와 그 현재적 영향에 대한 국가적 담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을 때 K-팝 스타인 BTS 멤버들은 군 복무 중 이 책('소년이 온다')을 읽었다고 트위터(현 엑스·X)에 밝혔습니다.



노벨문학상이 주로 백인 남성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유럽 중심주의와 성차별이 만연했는지 보여줍니다. 한강이 121년의 노벨문학상 역사상 아시아 여성 최초로 이 상을 받는 것은 문학계가 공정한 시대, 개인의 정체성이 공로를 가리지 않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영어를 단지 세계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는 것은 이런 공정성의 일환일 것입니다. 한강의 작품을 번역한 사람은 50명이 넘습니다! 저는 그들 중 세 명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어 번역가 비비안 에벨리나 외베로스, 네덜란드어 번역가 마토 만더스루트는 저와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에서 함께 공부했고, 스웨덴어 번역가 앤더스 칼슨 박사(박옥경과 공동 번역)는 제게 조선의 역사를 알려준 분입니다. 저는 윤선미 번역가가 '채식주의자'를 번역하라고 아르헨티나 출판사에 제안하고 그가 스페인어로 이 작품을 번역한 일, 30년 동안 한국에 거주한 리아 요베니티 번역가가 '희랍어 시간'(이탈리아어 제목 'L'ora di greco')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과정을 최근 기사로 접하며 즐거웠습니다. 이 모든 번역은 한국어에서 직접 해당 언어로 이뤄졌고, 영어는 이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비평가는 최근 "한강의 문학적인 공헌은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울려 퍼질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번역가의 노고와 실력 덕분에 한강의 문학 작품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번역가들)의 공헌이 인정받는다면 기쁜 일이겠지만, 번역가들의 공헌이 과장 없이 정확하게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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