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포함한 공학에서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많은 경우 수학의 함수를 활용한다. 그리고 함수의 시간에 대한 변화를 시각적인 그래프로 사용하여 관찰한다. 고등학교 때 배우는 1차 미분은 기울기를 표현한다. 1차 미분이 음수이면 하강 국면이고 미분이 양이면 상승 국면이 된다. 한 번 더 미분하면 2차 미분이 되는데, 2차 미분이 음수이면 위로 튀어나온, 볼록렌즈 모양의 그래프가 되고, 2차 미분이 양수이면 아래로 튀어나온, 오목렌즈 모양이 된다.
이렇게 미적분학에서 그래프가 볼록렌즈 모양에서 오목렌즈 모양으로 변하는 지점을 ‘변곡점’이라고 부른다. 다르게 설명하면 하강 추세이던 그래프가 변곡점을 맞아 상승 추세로 바뀌는 시점이 바로 변곡점이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이대로 멈춰지는가 혹은 다시 상승세로 전환하는가의 시점에 와 있다. 바로 변곡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
1980년대 이후 세계 산업의 성장은 ‘PC(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이 이끌었다. 누구나 책상 위에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그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가 등장하고 인텔 CPU(중앙처리장치)와 삼성전자 DRAM(D램)이 성장했다. 이후 2000년 이후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누구나 손바닥 위에 개인 컴퓨터를 들게 되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유튜브를 본다. 그 결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인 AP(Application Processor)와 주변 저전력 반도체 메모리 시장이 함께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이제 성장률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국가 간 기술적 장벽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 국면을 극복하려면 그래프의 기울기 추세를 반전시킬 계기가 필요하다. 바로 변곡점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률을 다시 기울기 양수의 영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그 기회가 바로 AI에 있다. 궁극적으로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메모리 반도체는 ‘표준형 제품’이다. JEDEC(국제반도체 표준규격협의기구)를 통해서 CPU와 AP에 필요한 반도체 메모리를 표준화했다. 이를 이용해서 공급처를 다변화해서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AI에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는 ‘주문형 반도체’로 바뀌고 있다. 각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추구하는 AI 서비스 모델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검색에 사용될 수도 있고, 자율주행 자동차에 사용될 수도 있고, AI 로봇에 사용될 수도 있다.
그 결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작업에 요구되는 반도체의 생성 속도(Throughput), 기다림의 시간(Latency), 동시 사용 고객 수, 청구 비용, 소요 전력, 필요한 원자력발전소의 개수는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AI 수퍼컴퓨터의 요구조건(사양)도 다르다. AI 컴퓨터 구조도 달라진다. 결국 필요한 반도체 메모리도 달라진다. ‘고객 중심의 다품종’ 시대가 열린다. 그 대신 가격을 높이 매길 수 있고 이윤이 높다.
변곡점에서 또 다르게 관찰되는 현상은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말하는 HBM4부터 GPU와 HBM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프로세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의 구분이 애매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둘이 설계상에서 사실상 한 몸체가 되어야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HBM4 맨 아래 층에 내장된 베이스 다이(Base Die) 칩은 일부 GPU 기능과 통신 기능이 함께 들어간다. 그래서 GPU 기업이 설계할 수도 있고, 메모리 기업이 설계할 수 있다. 각자 장점을 살리고 협력해서 공동의 생태계를 만들 수도 있다. 반도체 헤게모니 전쟁의 시작이 여기서 시작된다. 특히 설계 능력에 따라 AI 계산량, 메모리 대역폭, 저장 용량, 전력 소모, 열 발생량이 달라진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테슬라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모두 각각 다른 HBM4 설계를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메모리 기업의 생존과 성장 방식이 유효하지 않은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성장의 기회이기도 하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활주로에서 일정 속도 이상이 되면 앞바퀴를 들고 힘차게 상승하게 된다. 이때 양력을 받으려면 날개가 있어야 하고 공기도 필요하다. 정면으로 맞바람을 맞으면서 이겨내야 한다. 비행기가 앞바퀴를 드는 지점이 바로 변곡점이다.
요즘 삼성전자를 비롯해 우리 반도체 기업들을 둘러싸고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AI 바람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자신이 있게 이겨내야 한다. AI는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선의 가치를 지닌 답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반도체 산업도 불확실성 속에서 최선의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AI가 가져온 반도체 산업의 변화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다가오는 세계 반도체 업계의 변곡점 시점에서 상승하는 곡선을 창출해낼 뜨거운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다. 비행기처럼 강력한 제트엔진도 달아야 한다. 이렇게 변신하려면 기업 내부 문화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고객을 중심으로 사고하면서 조직을 보다 수평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부서와 개인 간의 협력과 소통이 존중되고, 수성보다는 창의적 도전이 중시되고 높게 평가받는 기업 문화를 다시 이식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등 선두 기업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주어진 숙명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