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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60년 공부, 책으로 펴낸 무비스님…“혼돈의 사회, 3독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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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40권의 저서 가운데 ‘화엄경 강설’ 81권을 제외한 29종 33권 도서를 25권 전집 ‘화중연화’로 펴낸 부산 범어사 무비 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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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81) 스님은 불교계에서 ‘이 시대의 대강백(大講伯)’으로 통한다. 불경과 그 이론을 가르치는 강사 스님을 강백이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존경받는 학승이다. 그가 60년 넘게 파고든 평생 공부를 모아 25권 전집(불광출판사)으로 펴냈다.



지난 12일 부산 금정구 범어사에서 만난 ‘여천 무비’(女天 無比) 스님은 “인생살이가 불난 집에서 허덕이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다”는 석가모니 말씀부터 소개했다. 이 전집에 붙인 제목 ‘화중연화’(火中蓮華)는 ‘불꽃 속에 피는 연꽃’이란 뜻이다. ‘유마경’에 나오는 이 구절을 근대 불교의 비조로 불리는 경허(1849~1912) 스님 글씨로 전집 표제에 넣었다. “우리가 불꽃 속에 살고 있지만, 차원을 좀 더 높여 부처님의 자비가 피어나도록 해야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어요.” 그는 “화중연화 네 글자로 내 인생의 80%는 설명했다고 본다”며 “경허 스님도, 석가모니도 다 불꽃 속에서 피는 화중연화의 인생을 사셨다”고 했다.



금정산 범어사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는데, 그가 주석하는 화엄전 뜨락의 훤칠한 아름드리 소나무는 여전히 청청하다. 184㎝ 키에 기골이 장대한 그는 오래전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불편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있고 눈빛도 형형하다. 불교를 조금 깊이 공부하면 반드시 알게 되는 스님이다. 탄허 스님 법맥을 이어받고, 성철 스님 시자로 일했으며, 법정 스님 문하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해보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보물이 또 있어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이아몬드가 ‘와르르’ 쏟아지는데, 이 훌륭한 다이아몬드를 주워 담으려 안 하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참 안타까워요.” 후학들에게 보내는 당부를 묻자, 그는 “공부 좀 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스스로 “가방끈이 짧다”고 말하지만, 공부 이력은 누구보다 길다. “한달이 멀다 하고 헌책방에 다니며 대학교 교재까지 읽을 만한 책은 다 사서 읽었어요. 해인사 강원에서 법정 스님께 문학을 배우던 세월도 있었지요.” 그는 주지 한번 하지 않고 공부와 강의와 저술에 매달렸다. 해인사 고려대장경 번역을 목적으로 출범한 동국역경원 1기 연수생인데, 탄허·법정 스님이 당시 강사진 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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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대표적 학승인 무비 스님이 지난 12일 범어사 화엄전에서 ‘여천무비스님 전집 화중연화’ 출간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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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에게 이 전집은 60년 평생 공부가 담긴 노트다. 120권이 넘는 저서 가운데 ‘화엄경 강설’ 81권과 공저를 제외하고,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29종 33권 도서를 25권 전집으로 재구성했다. 예불문과 천수경, 반야심경을 담은 1권으로 시작해, ‘금강경’과 ‘법화경’, ‘유마경’ 등 불교의 정수를 담은 경전의 강설서를 두루 담았다. 전집은 오는 23일 범어사 출간 기념 봉정법회를 통해 공개된다. 각각의 책 첫장 안쪽과 겉면 뒷장에 주제를 강설한 영상·음성 정보무늬(QR코드)와 사진첩도 실었다. 그는 “초심자부터 높은 수준의 불자까지 불교를 이해하는 데 이것이면 넘쳐날 거다. 전집이 도착하면 그날 전집을 안고 자겠다”며 웃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책으로, ‘임제록 강설’과 ‘직지 강설’을 꼽았다. 2014년 펴낸 ‘임제록 강설’을 두고선, “이 책 쓰고 나서 부처님 밥값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직지심체요절의 활자를 가지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이야말로 정말 자랑할 만한 것이에요.” 그는 “껍데기만 가지고 떠들썩하길래 내용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직지 강설’을 쓴 것”이라고 했다.



전집을 관통하는 그의 핵심 사상은 ‘인불’(人佛)이다. 전집을 구성하는 모든 책의 뒤표지에도 ‘인불―사람이 부처님이다’란 글귀를 넣었다. “당신은 부처님, 나도 부처님이에요. 서로 부처님으로 대접하고 이해해주고 섬기고 존중하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돼요.” 그는 “모두 부처님이란 마음으로 대하면 험악하지 않은 세상이 될 것”이라며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열쇠가 인불 사상에 있다”고 했다. ‘당신은 부처님’이라 책에서 그는 ‘새로운 불교’를 주창하며, “지금 부처로 살지 않고 어느 세월에 부처로 살겠는가”라고 묻는다. 그의 모든 저작물을 담은 유에스비(USB)를 오는 23일부터 무료로 배포한다. 이번 전집은 물론, 40년 동안 천착해 2018년 펴낸 필생의 대작 ‘화엄경 강설’ 81권 등을 모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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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 불광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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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앉은 의자의 오른쪽에 ‘불식’(不識)이란 글씨가 걸려있다. 중국에 도착한 달마 대사가 양나라 무제와 만나 문답하면서 쓴 유명한 화두다. “내가 지금 누군지 모른다, 낮인지 밤인지, 자는지 꿈꾸는지, 종국엔 살았는지 죽는지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그는 “나를 많이 붙들어준 화두인데, 제겐 이보다 더 좋은 화두가 없다”고 했다. 비교할 바가 없다는 뜻의 ‘무비’는 스승 지효 스님이 지어준 법명이지만, 진리의 하늘이란 뜻을 지닌 ‘여천’은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원래 탄허 스님이 그에게 지어준 이름은 ‘살수’(撒手)였다. ‘천길 벼랑 끝에서 잡고 있는 손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현애살수’(懸崖撒手)의 살수다. 그는 “발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탄허 스님께 간청한 끝에 허락을 얻어 ‘살수’를 ‘여천’으로 바꿨다”며 웃었다.



혼돈의 한국 사회에 대해선 “탐진치(貪瞋痴) 3독이 문제”라며 “전부 독에 맞아서 제정신이 아니라 독 정신으로 산다”고 꼬집었다. “벼슬, 돈, 이성, 좋은 것에 대한 탐욕이 너무 많아요. 화도 너무 잘 내요. 부처님은 화를 한번 내면 인생에 100만가지 장애가 생긴다고 했어요. 불교에서는 자비뿐만 아니라 지혜도 강조합니다.”



부산/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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