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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결정하게 하라, 자라게 하라 [김상균의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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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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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얼마 전 학군이 좋은 지역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자녀들의 판단력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적잖은 학부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를 물으니, 성적도 좋고 논술도 잘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판단력일까?



삶은 복잡한 결정의 연속이다. 우리 자녀들은 매일 크고 작은 판단을 해야 한다. 친구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 학원 지도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어떻게 대처할지, 진로와 대학 선택을 어떻게 할지. 이런 결정들을 스스로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결과까지 책임지는 과정이 삶의 본질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최근 대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에서 한 사례가 화제가 되었다. 소심한 자녀가 학과 친구들과 갈등이 생길까 염려한 부모가 학과 친구들 모두에게 햄버거를 돌렸다는 이야기다. 대학생 자녀의 수강 과목을 대신 편성해주는 부모의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온다. 오늘날 부모 역할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많은 부모는 자녀가 아직 미숙하다며 대신 결정해 준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과연 얼마나 성숙한 존재일까? 나이 오십에 접어들어서도 진로를 고민하고, 육십이 되어서도 은퇴 후 삶을 결정하지 못하며, 일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다. 우리는 모두 삶을 통해 끝없이 성장하는 미완의 존재다. 더구나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살아온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기후변화, 새로운 직업의 등장 등, 현재 예측하기도 어려운 변화 속에서 아이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예리한 감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팩시밀리, 버스 토큰, 삐삐, 플로피디스크를 썼던 세대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다음 세대의 미래를 놓고, 그들의 여정을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이 과연 옳을까?



부모들은 자녀가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로, 혹은 비효율적 선택으로 돌아가거나 상처받을까 염려하여 대신 결정해 준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하나의 상처도 없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랑하기에 그렇다. 지독히도 사랑하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 사랑이 자녀를 무너트릴지도 모른다. 부모의 결정을 받들며 성장한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온전한 어른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대신해 결정해 줄 누군가를 찾게 된다. 자신을 믿지 못해서, 혹은 결정을 남이 해줘야 행동과 책임에 따른 부담을 회피하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었으나,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로 남게 된다. 반면 스스로 결정하는 습관을 익힌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자신의 성장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는다.



당신은 자녀가 어떤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무엇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존재, 아니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며 상처를 딛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존재. 결론은 명확하다. 결정은 자녀가 해야 한다. 다만, 이는 무책임한 방치와는 완전히 다른 양육이다. 아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왜 그런 결정을 했는가를 부모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 과정을 지원하고, 책임에 짓눌리지 않도록 뒤에서 받쳐줘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판단력을 키우는 길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도록, 당신은 그들이 걸어갈 길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 그들이 결정하게 하자. 그래야 그들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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