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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별별 도서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서점과 도서관을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감성이 충만한 가을, 계절이 다 가기 전에 책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책과 여행이 만나는 특별한 도시, 전주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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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인기 관광지 덕진공원에 있는 연화정도서관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차경과 아름다운 서가로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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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가 책의 도시가 된 이유

전주 하면 가장 먼저 한옥마을이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전주는 한옥마을’이란 공식이 뇌리에 박힌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책’이라는 또 다른 매력이 보인다. 전주 곳곳에는 도서관과 서점 등 책이 중심이 된 문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전주 국제그림책도서전’, 독립출판 북페어인 ‘전주 책쾌’, ‘전주 독서대전’ 같은 책 관련 행사도 다양하게 열린다. 영유아 가정에 그림책 꾸러미를 선물하는 ‘생애 첫 도서관 이야기’, 집필과 출판을 체험하는 ‘자작자작 책 공작소’, 도서관과 서점 이용 시 포인트를 지급하는 ‘책쿵20’ 등 독특한 도서 문화 정책도 눈길을 끈다. 이처럼 책에 진심인 도시, 전주는 어떻게 책과 인연을 맺어온 걸까.

시간을 조선시대로 되돌리면 전주와 책을 잇는 숨은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바로 한지와 완판본,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이다.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는 조선 초부터 이미 한지 제작과 책 보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관아에는 종이를 만들고 관리하는 조지서(造紙署)와 책을 편찬하는 인출방(印出房)이 있었고, 닥나무와 풍부한 물 덕에 한지 생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전주 한지는 생산량이 많을 뿐 아니라 품질도 뛰어나 최상급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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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학산숲속시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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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발간에 필요한 종이가 충분히 공급되면서 자연스럽게 출판 산업이 활기를 띠었다. 전주에서 간행된 옛 책들은 ‘완판본(完板本)’이라 불렸는데 한양에서 출판된 경판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큰 시장을 형성했다.

특히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비롯해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다양한 한글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지와 완판본은 조선시대 전주가 3대 출판도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전주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현재 남아 있는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불길을 피해 유일하게 보존된 실록이기도 하다. 당시 정읍 선비인 안의, 손홍록과 백성들이 힘을 모아 실록 약 60궤를 정읍 내장산까지 옮겼고, 그 덕분에 조선시대 역사가 온전하게 전해질 수 있었다. 전주사고와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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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책을 만날 수 있는 다가여행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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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처음과 끝,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책과 깊은 인연을 이어온 전주는 현재 책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도서관이 있다. 전주시에는 공립과 사립을 합쳐 약 150개의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인구 대비 높은 도서관 비율을 자랑한다. 최근까지 시립도서관 꽃심을 비롯해 금암도서관, 완산도서관, 서신도서관, 쪽구름도서관 등 여러 도서관이 리모델링을 완료하거나 계획 중이다. 이들 도서관은 답답한 열람실 대신 탁 트인 개방감과 근사한 카페 같은 분위기로 단순히 책 읽는 공간을 넘어 문화를 즐기고 힐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찾는 여행지로 거듭나고 있다.

전주 책 여행은 특별한 매력을 지닌 작은 도서관으로 떠나는 여정이다. 이들 특성화 도서관은 각각 다른 테마와 콘셉트로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한번 발을 들이면 헤어나기 어려운 매혹적인 공간들이다.

그중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이 ‘첫마중길도서관’이다. 전주역에서 도보로 약 7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들르기 좋다. 빨간색 컨테이너 외관이 강렬한 첫인상을 주며 소장 도서들도 매우 특별하다. 국내에 보기 드문 아트북과 리커버 북 등 흥미로운 책들이 많아 짧은 시간에도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다가여행자도서관은 꼭 들러야 할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다가동 치안센터를 꾸민 공간으로, 여행에 관한 모든 책을 만날 수 있다. ‘서서 하는 독서’와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높은 서가에는 북두칠성을 모티브로 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과거 여행자들이 별을 보며 길을 찾았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비밀 서재 같은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여행 중 느낀 감상을 자유롭게 남길 수 있다.

한옥마을 안에도 작은 특성화 도서관들이 있다. 전통가옥과 책이 어우러진 ‘한옥마을도서관’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무지갯빛으로 큐레이션된 서가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다가오며 잊고 있던 꿈과 동심을 다시 깨우쳐준다. 이곳에는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에 위로가 되는 에세이들이 가득하다. 눈길이 머문 곳에서 책 한 권 뽑아 들고 홀로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동문헌책도서관’은 만화와 웹툰 마니아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레트로 감성이 가득한 지하 서가는 어릴 적 책에 파묻혀 살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다락방 같은 공간과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은 서재에서 마음껏 책에 몰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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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건지산숲속작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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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예술, 웹툰까지 개성 넘치는 작은 도서관

한옥마을 건너편 서학예술마을에도 가볼 만한 도서관이 있다. 기존 카페 건물을 리모델링한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은 이름에 걸맞게 사진, 미술, 예술 테마의 책들로 컬렉션을 구성하고 있다. 1층에는 그림책 감상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2층은 살롱 같은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거나 창가에서 음악을 감상하며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기 좋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예술가라면 무언가 영감이 떠오를 듯한 근사한 공간이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운치 있는 별관에서는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도 열린다. 덕진공원에 자리한 ‘연화정도서관’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차경과 민화 속 책가도를 재현한 전시 서가가 전통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특히 창문을 가리지 않기 위해 서가를 낮게 배치한 설계가 돋보인다. 도서관 내부에는 전주를 소개한 책들과 한국 전통문화, K컬처 콘텐츠를 다룬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가마다 점, 선, 면, 그리고 여백이라는 이름을 붙여 독창적인 느낌을 준다. 독립출판물 형태로 제작된 특별한 책들도 소개되어 있어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색다른 시간을 선사한다. 전주동물원과 이어진 숲길을 따라 오르면 나무 사이로 단정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지산숲속작은도서관’이다. 생태 관련 책들을 접할 수 있으며 커다란 창문 덕분에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을 반드시 들러보기를 권한다. 학산 아래, 가을빛이 물든 맏내호수를 지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서관에는 문학 전문 출판사의 시선집부터 세계 각국의 원서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국내 대표 시인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시집도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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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는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전주 도서관 여행’을 운영한다. 관내 시립도서관과 특화도서관, 팔복예술공장, 전주천년한지관 같은 복합문화시설을 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이색적인 투어다.

오전과 오후, 하루 코스로 나뉘며 홀수 주와 짝수 주에 따라 책 문화, 예술문화, 이야기, 그림책 등 다양한 테마로 진행된다. 금요일 저녁에는 특별한 야간 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과 한옥마을도서관을 거쳐 연화정도서관에서 미디어 파사드를 감상하고 금암도서관에서 전주 시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제이다. 전주시립도서관 누리집(lib.jeonju.go.kr) 내 ‘전주 도서관 여행 신청’ 코너를 이용하면 된다. 체험비는 4000원~6000원 선. 만 6세 미만은 무료이며 전주시민과 다자녀가정은 1000원 할인 혜택이 있다. 문의는 도서관여행팀(063-230-1842)으로 하면 된다.


전주 | 글·사진 정은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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