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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아들딸 같은 친구들 도와주니 뿌듯”…수능일 수험생 숨막히는 호송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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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 아침 수험생 수송하는 자원봉사자들
개인부터 단체까지 “부모의 마음으로” 한뜻


매일경제

14일 아침 쌍문역 앞에 줄지어 수험생 비상수송을 대기 중인 도봉구청 순찰 트럭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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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위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을 우리 아이들. 늦지 않게 수험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부모의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2025학년도 수능일인 14일 오전 6시 30분 쌍문역.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수험생 무료수송’ 안내 팻말이 한눈에 보였다. 해가 채 뜨기도 전의 어둠 속에서 수험생의 원활한 수험장 이동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경광봉과 형광조끼를 입고 수험생을 맞을 준비를 서둘렀다.

이날 수험생들의 입실은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해 오전 8시 10분에 마감됐다. 매년 오전 7시 50분부터가 수험생 긴급 수송 피크타임이다. 저출생으로 과거에 비해 수험생 수가 많이 감소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수험생이 많아져 도로에 차가 예전만큼 붐비지는 않으면서 지각생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자원봉사자들은 혹여나 늦어 시험을 못 보는 수험생이 있을까 매년 아침잠을 줄이며 1분 대기조를 자처한다.

“학생들 인생에 도전 기회 준 것에 보람 느껴”
매일경제

14일 오전 6시 30분 쌍문역에서 만난 김성수 씨(50)는 9년 전부터 수능일마다 수험생 수송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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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침 쌍문역에서 만난 퀵 서비스 기사 김성수 씨(50)는 9년 전부터 수능일마다 고사장 밀집 지역에 나가 무료로 학생들을 수험장까지 실어 나르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김씨는 매년 뉴스에서 수험장에 지각해 못 들어가고 교문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봉사를 시작했다. 김씨는 “7시 50분부터 슬슬 긴장하고 있으면 8시쯤 태워 달라는 학생이 생긴다”며 “안전하게 수험생을 데려다 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10분 안에 학생을 교문 안으로 들여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 상황 속에서도 학생이 시험을 잘 치르길 바랄 뿐”이라며 “학생에게 인생에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게 보람차고 기쁘다”고 말했다.

“지역 발전을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
매일경제

14일 오전 6시 30분께 쌍문역으로 수험생 비상수송 봉사를 나온 도봉구 해병대 전우회. 해병대 전우회는 20년이 넘게 매년 수송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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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역에는 도봉구청의 주도 하에 수능생 수송 봉사에 참여한 해병대 전우회, 도봉경찰서모범운전자회, 동아운수 소속 트럭들도 나와 있었다. 도봉구 해병대 전우회 회장인 노석호 씨(68)는 “20년 가까이 수험생 수송 봉사를 하고 있고 올해는 12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며 “해병대가 지역 발전을 위해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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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경찰서모범운전자회 소속 25년차 택시 기사 송창식 씨(72)가 수험생들을 고사장으로 옮기기 위해 쌍문역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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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차 택시 기사 송창식 씨(72)도 20년 전부터 매년 수험생 수송 봉사를 하고 있다. 송씨는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후배들이 앞으로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오고 있다”며 “수험생들이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결과를 얻길 바란다”고 전했다.

“도움받은 학생들이 수송 봉사 나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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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7시 30분 경복궁역에서 수험생 수송을 대기하고 있는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상임대표(65)와 전국모터사이클동호회 모닝캄 회원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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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고등학교, 경기상업고등학교 등 여러 수능 고사장이 인접해 있는 경복궁역에도 오전 7시 30분께 수험생을 수송하기 위한 바이크 다섯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는 2002년부터 매년 수능일마다 교통편이 필요한 학생들을 수험장까지 태워주는 봉사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맨 처음 전국 12개 지부에서 60여대의 차량으로 시작된 봉사는 전국모터싸이클동호회 모닝캄, 바이크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바사모) 등이 합심하며 점차 규모가 커졌다. 최미숙 학사모 상임대표(65)는 “매년 평균적으로 30명의 학생들을 수험장으로 태워 옮기고 있다”며 “오늘도 서울 내 6개 지역으로 수송단을 분산 배치해 학생들의 이동을 도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 대표는 가장 인상 깊었던 수송 사례로 수능 당일 늦잠을 잔 소녀 가장을 데려다준 경험을 꼽았다. 최 대표는 “소녀 가장이다 보니 깨워줄 사람이 없어 지각할 위기였는데 지인에게 연락이 와서 가까스로 입실시켰다”며 “수송단원의 도움을 받아 수능을 치른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수송 봉사를 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35년 전부터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모닝캄 회원 윤석현 씨(67)는 수능생 수송 봉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25년째다. 윤씨는 “수능 전날마다 내가 수능을 보는 것처럼 긴장이 돼 잠이 잘 안 온다”며 “입실 시간이 촉박해 도로를 역주행해 수험생을 들여보내고 안도의 숨을 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문이 닫힌 수능 고사장 앞에는 학부모들이 두 손을 모으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입실이 마감된 오전 8시 15분께 경기상업고등학교 정문에서 만난 전운섭 씨(49)는 “고3 딸아이를 시험장에 들여보냈다”며 “준비한 시험을 잘 치르길 바라고 행운도 따라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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