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 ‘숨결의 지구’
인구 2300명의 작은 섬 도초도에 설치
인구소멸 위기 지자체 생존 위한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 첫 결실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 설치된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숨결의 지구’ 내부 모습. PKM 갤러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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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다도해는 아름답고 경이롭습니다. 신안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죠. 우리가 지구를 존중하는 방식을 잃어버린 시점에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고 배우면서 더 좋은 ‘내’가 된 것 같습니다.”
빛과 물, 빙하 등 자연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온 작품으로 이름난 세계적인 설치미술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전남 신안군 도초도의 천혜의 자연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이란 작품명처럼 도초도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도초수국정원 언덕에 지름 10m의 구형 공간을 만들었다.
밖에서 보면 봉긋 솟은 봉분처럼 보이는 작품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선 캄캄한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대지 속으로 들어가듯 어둠을 통과하면, 천장의 구멍을 통과해 온 햇빛이 붉은색, 녹색, 청록색 타일들에 반사돼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화산섬인 도초도의 지형에서 영감을 얻어 용암석으로 만든 타일은 세포의 프렉털 구조 혹은 흙 속 결정체를 닮았다.
‘숨결의 지구’는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신안군이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추진한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대파와 양파 농사만 짓는 걸론 안되고 예술로 신안의 자원을 재편성하자는 기획”(강형기 총괄기획자)에서 6년의 준비 끝에 완성됐다. 작품 제작에만 47억원, 기타 경비까지 합하면 57억원이 들었다.
테이트모던에 거대한 인공태양을 만들고, 그린란드 빙하를 도시로 가져와 녹는 모습을 관객이 만지고 체험할 수 있게 한 작품 등으로 환경적 메시지를 던져온 엘리아손은 도초도의 자연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작가였다.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 설치된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숨결의 지구’를 외부에서 본 모습. PKM 갤러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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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숨결의 지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영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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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엘리아손은 “구 안에는 바닥도, 천장도, 벽도, 지평선도 없다. 작은 지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대지 안으로 들어와 지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용암석으로 제작한 타일은 하단의 붉은색에서 상단의 녹색으로 변화한다. 대지와 토양, 식물의 푸르름을 상징한다. 엘리아손은 “다면체 패턴의 타일은 보는 시각에 따라 2D로도 3D로도 보인다. 차원이 바뀌는 경험을 통해 나만의 공간이 생성된다”고 말했다.
완벽한 구형이기에 수평인 바닥 면적이 없어 많아야 4~5명의 인원이 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소수의인원이 공간 자체를 경험하면서 명상적인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엘리아손은 “나 자신 뿐 아니라지구와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리아손은 제작 과정에서도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등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작업 과정에서 최대한 현지 회사, 기술팀과 협업하고 배송은 선박을 이용한다. 출장이 필요할 땐 인접한 국가를 한번에 방문한다. 이번 작품에 쓰인 용암석 타일은 이탈리아에서 제작했다. 엘리아손은 “용암석 타일을 생산하는 곳이 이탈리아, 덴마크, 프랑스 세 곳 뿐이라 수입을 결정하고 신안군까지 선박으로 운송했다. 가급적 지역 재료를 구하려고 하는데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가 한 살이라고 하면, 인간의 수명은 1초도 되지 않는다. 지구 입장에선 찰나에 불과하다. 도나 해러웨이의 말처럼 ‘인류는 지구상에 꼿꼿이 서 있는 포유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한국 최대의 다도해 지역 신안군은 인구 3만8000명으로 국내 인구소멸 고위험지역 1위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각 섬에 하나씩 미술관이나 예술관을 설치하는 ‘1도 1뮤지엄’을 추진해 총 27개 섬에 작품을 설치할 계획이다. 도초도를 시작으로 노대도에 제임스 터렐, 비금도에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 등의 작품이 설치될 예정이다.
도초도는 55.28㎢ 면적에 2300여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목포에서도 배를 타고 1시간을 들어가야 한다. 도초도에 사는 할머니들은 손목에 ‘올라푸르 엘리아손’을 한글로 적으며 작가의 이름을 익혔다고 한다. 지난 13일 열린 준공식에는 주민들이 줄을 서 ‘숨결의 지구’를 관람했다.
작품은 25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신안군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예약하고 관람할 수 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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