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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권력과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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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경제학상은 대런 애스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에게 돌아갔다. 선정 이유는 이들이 “제도가 어떻게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한 국가의 경제 번영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세 학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와 포용적 제도가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방법”임을 알려주었다. 선정 이유에서 알 수 있듯, 세 사람은 정치경제학자이자 경제사 연구자로, 제도학파에 속한다. 좋은 제도가 장기적 경제 발전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애스모글루는 로빈슨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시공사), ‘좁은 회랑’(시공사)을, 사이먼과 ‘권력과 진보’(생각의힘)을 함께 저술했다. 다행히, 세 책은 국내에 모두 번역돼 나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도서관 등의 ‘벽돌 책 읽기’ 프로그램에 자주 선정돼 읽히고 있다. 저성장, 양극화, 분열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 이 책들이 필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널리 인정받는 셈이다.

거대한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작은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의 긴 흐름을 바라보는 사람은 눈앞의 일에 매몰되지 않는다. 생각의 편향을 이겨내고 맹목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안에 이러한 사고법을 내장할 필요가 있다. 세 학자는 우리가 경제를 개인적·단기적·정파적 손익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장기적·공동체적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이들은 ‘시장이 모든 걸 결정하고 해결해 줄 거야!’라는 시장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더 큰 맥락에서 경제를 다시 생각할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저자들은 시장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사고는 자칫 국가를 실패로 이끌 수 있다고 비판한다. “시장을 내버려 두면 포용적 색채를 잃고, 힘이 있는 개인과 기업의 손에 휘둘릴 수 있다.” 가령, 시장 지배적 기업이 타락한 정치가나 부패한 관료와 결탁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강요하고, 경쟁자를 억압하며, 그들에게 불리한 신기술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다. 그런 국가는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혁신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실패 국가로 전락한다. 국부를 일구는 데는 분명 경제 제도가 주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나라가 어떤 경제 제도를 택할 것인가는 정치가 정한다. 따라서 국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는 시장보다는 정치다. 정치가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 중 무엇을 지향하느냐가 국가 운명을 결정한다. 착취적 경제 제도는 혁신의 성과를 소수에게 몰아줌으로써 다수의 창의성과 그에 따른 기술혁신이 작동하지 못하게 막는다. 이런 제도에서는 정치권력을 쥐는 게 큰 부를 일구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사회 전체가 항상 내전 상태에 빠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행태다. 자칫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면 작은 경제적 성과도 모조리 무너진다. 근대 이전 수천 년 동안 인류 전체의 생활 수준이 정체 상태에 머물렀던 이유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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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제도는 사유재산권이 보장되고, 자유시장이 존재하며, 기술 및 교육이라는 번영의 원동력을 모두에게 공급한다. 이 체제는 다원적인 동시에 중앙집권적이다. 강력한 국가가 없으면 토호나 조폭이 발호해서 포용적 법질서를 강제할 수 없다. 그러나 중앙집권은 권력을 쥔 특정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 좌우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시민 사회에 국가를 견제하고 특정 세력 집권을 통제할 힘이 있어야 한다.

‘좁은 회랑’에서 저자들은 이 진퇴양난을 좁은 길에 비유한다. 한쪽엔 독재의 공포와 억압이 있고, 다른 쪽엔 국가 부재의 폭력과 무법 상태가 있다. 자유의 길은 그 사이에 희미하게 나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균형을 맞추어 포용적 제도를 유지하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다수에게 창조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속적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

저자들은 말한다. “혁신엔 창조성이 필요하다. 창조성엔 개인이 두려움 없이 행동하고, 실험하며, 설사 다른 이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자유가 필요하다. 이런 자유는 독재체제에서는 지속되기 어렵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사례는 착취와 포용, 두 제도가 얼마나 극명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중세 때 베네치아는 포용적 제도로 운영됐다. 국가는 귀족들 평의회에서 도제(doge, 국가 지도자)를 지명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도제는 공문서를 혼자 결제할 수도, 해외에 재산을 두지도 못했다. 시민 앞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때만 도제일 수 있음을 맹세해야 했다. 약속을 못 지킨 도제는 퇴출되기도 했다. 착취적 권력이 되어 부패할 수 없게 한 셈이다.

경제도 포용적이었다. 자본만 확보하면 신분과 상관없이 무역에 나설 수 있었다. 그 결과, 목숨 걸고 장거리 여행에 나선 이들이 부를 바탕 삼아 정치에 도전할 수 있었고, 성공 과실을 널리 나누는 쪽으로 제도를 유지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지중해에서 최고 번영을 누린 무역 국가 베네치아는 그 결과였다.

그러나 성공에 도취된 베네치아는 점차 포용성을 잃었다. 의원은 세습되었고, ‘황금의 책’(귀족 명부)이 만들어져 이 명부에 없는 이들이 무역에 나서면 많은 세금을 물었다. 무역이 사실상 소수 귀족의 사업으로 변하자, 혁신은 소멸했다. 이로부터 베네치아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저자들은 “국가가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역량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족쇄를 차고 있을 수 있게 보장하느냐”(좁은 회랑)에 한 나라의 번영이 달렸다고 주장한다.

‘권력과 진보’에서 저자들은 기술 발전이 저절로 사회 번영을 촉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건 정치다. “기술혁신과 변화는 늘 있었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는 늘 권력을 쥔 사람들이 결정했다.” 지난 1만 2000년간, 농업 기술은 항상 발전하고, 생산성은 지속해 높아졌다. 그러나 다수 농민은 그 혜택을 거의 보지 못했다. 전체의 번영은 언제나 “기술 진보 방향과 이득 분배 방식이 지배층 이익에 복무했던 제도적 배열에서 멀어졌을 때만 가능했다.” 토지 보유층과 종교 지배층이 시민들 견제 탓에 잉여를 모두와 나눌 때만 사회 전체가 잘살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자동화, 바이오 혁신 등 최신 기술의 혜택이 다수 시민을 패배자로 만들고, 극소수에게 부를 몰아주는 효과를 낳고 있다.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불평등과 격차는 필연적이지 않다. 그것은 정치가 잘못 조직되고, 그에 따라 기술이 무얼 향해야 하는지를 잘못 선택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공공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때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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