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이 유죄로 나오면서 정치적으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예상외의 중형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민주당은 법원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치 판결’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애당초 없는 일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모두가 알고 있었고 오랜 시간 계속해서 지적되어 온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의 그런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곧 이어질 다른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도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사법부 결정에 대한 민주당의 이런 정치 공세는 더 힘을 잃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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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뜻밖 중형, 일극체제 균열
집권세력 위기 여전히 현재진행
강한 대통령 전제 87년 체제 한계
‘분권적 대통령제’ 개헌 고민해야
물론 당 핵심 지지자들은 이 판결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고 장외 집회를 포함한 강경 투쟁을 통해 이 대표를 ‘지키겠다’고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이 그런다고 해도 이번 판결은 이 대표의 도덕성이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 이미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머지않아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그 결과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예정된 다음 재판에서 다시 유죄가 나오기라도 하면 이 대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더 높아질 것이고, 이 대표나 당의 지지율도 큰 폭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당장은 격렬하게 반발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당 주변에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선고 직후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뭉쳐서 상황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 성명은 오히려 당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말처럼 들렸다. 대법원 판결 전이라도, 이 대표가 당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은 급속히 약화할 것이고 그간의 이른바 ‘일극 체제’도 붕괴할 것이다. 사법 리스크의 부상과 함께 야당 리더십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다.
여기까지는 야당 이야기인데, 사실 집권 세력 쪽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선 아래로 떨어졌고 다소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최근 논란이 된 대통령 주변과 관련된 일들을 두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제대로 해명되었거나 해결된 것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 부인 건은 정치 브로커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이 불거지면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고, 당정 간 잡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여당과의 불협화음,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대통령실 등 대통령의 핵심 정치 자원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걸 바로 잡아야 할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앞으로도 윤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다.
이처럼 대통령도, 제1 야당 대표도 모두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집권 세력과 대안 세력 모두의 정치 리더십이 흔들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가 제대로 정치적 훈련을 받고 역량과 도덕성을 갖춘 리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뼈아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정파적 양극화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의 지지 후보를 골라야 했던 지난 대선이 오늘날 리더십 위기의 출발점이다.
이참에 개헌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강한 리더십과 권위를 갖춘 대통령을 전제로 만들어진 ‘87년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금의 리더십 위기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장 마땅한 후보감도 보이지 않고 더욱이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을 것 같지도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나름대로 대통령제가 작동해 온 것은 강한 권위와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제는 그런 인물이 만들어질 수도 없고 또 그런 인물이 필요한 시대도 아니다.
개헌 방향으로 민주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대안으로 냈는데, 그건 중임, 곧 8년 임기를 전제로 한 대통령제를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제 자체가 문제이고 마땅한 대통령감이 없어 난감한 상황에서 5년에서 8년으로 임기만 늘리자는 건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 그보다는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선출된 총리가 자신이 꾸린 내각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고, 대통령은 통합의 상징으로 존재하면서 정무적으로 총리와 내각을 관리하고 국가의 장기계획을 담당하는 분권적인 형태의 대통령제로의 개혁이 더 나은 대안으로 생각된다. 이 방안은 그동안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이미 많이 논의된 방향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 정치는 혼란의 상황에 빠졌다. 여도 야도, 혹은 보수도 진보도 모두 정치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세상은 변화했고 우리 사회도 크게 바뀌었는데 여태껏 바뀌지 못한 채 지진아로 남아 있던 우리 정치가 그들이 자초한 리더십의 자멸 속에 새로운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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