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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삼성 반도체 경쟁력 회복, 乙 마인드로 팹리스와 협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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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 서울대 재료공학,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 석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대학원 재료공학 박사, 현 서울대 명예교수, 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공학부), 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전 서울대 교수 평의원회 의장, 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삼성전자(이하 삼성) 반도체(DS) 부문장인 전영현 부회장은 10월 8일 3분기 잠정 실적 발표 후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 DS 부문의 영업이익이 SK하이닉스에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사과를 표명한 것이다. 전 부회장은 이 사과문에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세 번이나 언급했다.

김형준(서울대 명예교수)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은 11월 1일 인터뷰에서 “전 부회장의 사과문은 삼성 DS 부문의 주축인 D램 메모리 경쟁력이 무너졌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면서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가 D램에서 삼성을 1년~1년 6개월 앞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김 단장은 국내 최고 반도체 소자·공정 전문가다. 그가 이끄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은 인공지능(AI) 연산에 특화된 차세대 반도체 설계 및 핵심 기술과 미세 공정을 개발하는 국책 사업으로, 2020년부터 2029년까지 정부 예산 1조96억원이 투입된다. 김 단장은 “삼성 반도체는 D램 메모리 시장을 지배했던 경험에 젖어있어서 고객 주문형 시장으로 바뀌는 차세대 반도체 산업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 다양한 비즈니스 파트너와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국내 스타트업 및 장비·소재 업체 등과 함께 성장하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상대방을 우월하게 대우하는) ‘을(乙) 마인드’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삼성의 엔비디아 HBM3E 품질 테스트 통과가 지연되는 것도 D램 경쟁력 때문인가.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D램 반도체 미세 공정에서 삼성은 ‘1a 칩 공정’ 부터 SK하이닉스에 뒤처졌다는 게 통설이다. D램을 8단 또는 12단으로 쌓아서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만들 때 사용하는 칩이 무엇인지에 따라 성능이 달라진다. SK하이닉스가 1b 칩으로 HBM을 만들 때, 삼성은 1a 칩을 사용한다면 HBM 완제품의 성능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가 11~12㎚급 D램 미세 공정에 앞서 있는 것이 HBM3 반도체 품질 우위로 이어진 셈이다. 엔비디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본질적인 원인을 D램 품질 저하에서 찾아야 한다.”

D램 이외 다른 반도체 경쟁력은 어떻나.

“낸드 경쟁력이 최정상에 있지만, 경쟁사와 격차는 크지 않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는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져서 TSMC와 격차가 확대됐다. CMOS 이미지센서(CIS)도 선두 업체가 일본 소니인데,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삼성의 제품 경쟁력이 이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삼성이 HBM4에서 경쟁력 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D램을 12단 이상 쌓는 HBM4부터는 바뀌는 점이 많다. 우선 D램 쌓는 방식이 바뀐다. HBM3E까지는 납 같은 물질로 전극을 붙이는 솔더블로 본딩했는데, HBM4부터는 ‘카파 투 카파(직접 구리와 구리를 연결)’로 본딩을 한다. 또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연결돼 HBM을 컨트롤하는 베이스 다이의 역할도 바뀐다. HBM4부터는 일부 연산을 직접 처리하는 시스템 IC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시스템 사업부가 있는 삼성은 베이스 다이도 만들고 카파 투 카파 본딩도 할 수 있어서 HBM에서 ‘원스톱 솔루션’를 제공할 능력이 있다. 이것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SK하이닉스에 HBM4 공급을 6개월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맥락인가.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 TSMC는 GPU 등 AI 가속기를 매개로 얼라이언스를 맺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을 TSMC에 납품하고, TSMC는 그걸로 엔비디아가 설계, 발주한 GPU 가속기를 만드는 구조다. 엔비디아의 GPU 성능이 잘 나오기 위해서는 SK하이닉스의 HBM 성능이 좋아야 한다. HBM을 제조하는 하이닉스는 TSMC, 엔비디아 등을 우군으로 두고 있다. HBM3E에서 SK하이닉스가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TSMC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HBM4 생산 과정에서도 SK하이닉스는 TSMC가 제작한 베이스 다이를 사용하는 등 폭넓은 기술 지원을 받는다. 삼성이 HBM4 베이스 다이를 TSMC에서 공급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얼라이언스를 맺고 있는 SK하이닉스 수준의 협력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삼성과 TSMC는 파운드리에서 경쟁하기 때문이다.”

HBM4 베이스 다이를 TSMC로부터 공급받으면 삼성 파운드리의 입지는 더욱 약화하는 것 아닌가.

“삼성 파운드리는 2021년 퀄컴이 주문한 스냅드래곤8의 발열 문제가 치명적이었다. 퀄컴은 이 문제를 TSMC에 수탁 생산을 맡겨 제조한 스냅드래곤8플러스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후 삼성 파운드리를 향한 고객사 주문이 급감했다. 2022년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적용한 3㎚ 기반 공정의 초도 양산을 시작했지만, 수율(생산품 중 양품 비율)이 나오지 않고 있다. TSMC가 3㎚ 반도체를 만드는 핀펫(FinFET) 공정보다 더 고도화한 GAA 공정에 도전했지만, 양질의 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율이 나오지 않으면 원가가 올라가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적기에공급할 수 없게 된다.”

2㎚급 첨단 공정에서는 GAA 공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삼성 파운드리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GAA 공정은 핀펫보다 새로운 기술이 많이 적용되는 고난도 공정이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 삼성 파운드리가 2㎚급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TSMC 또한 GAA 공정 도입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전망이다. 그러나 TSMC는 파운드리 업력이 40년 가까이 축적됐고, 대만 전역에 자사 파운드리 공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 모든 공정상 어려움을 자사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삼성과 달리 TSMC는 주변으로부터 협력받을 수 있어서, 시행착오가 예상보다 적을 수도 있다.”

삼성 파운드리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파운드리는 고객 주문을 받아서 수탁 생산을 하는 사업 특성상 수주가 중요한데, 삼성은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주가 없는데도 공장 증설 등을 서둘렀다. 세계 최초로 GAA 공정을 적용해 제품을 생산하면 주문이 몰릴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완제품을 판매하는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제품을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 좋은 기술로 제품을 잘 만들면 고객이 구입할 것이라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메모리 마인드’로 파운드리 사업을 접근한 측면이 있다. 파운드리는 을의 입장에서 고객을 대응해야 하는데, 삼성에는 그런 자세가 부족했다.”

파운드리 가동 축소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은 고객 주문이 없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공정 일부를 메모리 생산으로 돌려서 웨이퍼를 만드는 게 합리적인 대응이다. 대신 규모가 작더라도 고객이 주문하는 제품을, 요구하는 사양대로 만드는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그렇게 실적을 쌓으면 생산 위탁을 주문하는 팹리스도 늘어날 것이다.”

삼성은 차세대 메모리 분야인 지능형 반도체 PIM (Process In Memory)과 메모리 인터페이스 기술인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Compute Express Link) 개발 능력이 최선두라는 평가가 있다. 차세대 메모리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메모리 속에 프로세스를 집어넣는 PIM이나, CXL 기반 D램 모두 뛰어난 기술이다. 그러나 AI 가속기를 만드는 팹리스가 이 기술을 채택할지가 관건이다. 이제 메모리 사업도 점점 더 파운드리화(化)하고 있다. 가속기 등을 설계, 제작하는 팹리스 등 개발자가 PIM, CXL 등을 채택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잘 구축하는 게 기술 개발만큼 중요한 과제가 됐다. 차세대 지능형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국내 스타트업 및 소재·장비 업체와 긴밀한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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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급 D램 메모리 공정 메모리 공정은 △1x 공정(18㎚ 공정·10㎚급 1세대) △1y 공정(16㎚ 공정·10㎚급 2세대) △1z 공정(15㎚ 공정·10㎚급 3세대) △1a 공정(14㎚ 공정·10㎚급 4세대) △1b 공정(12~13㎚ 공정·10㎚급 5세대) △1c 공정(11~12㎚ 공정·10㎚급 6세대)으로 나뉜다. 뒤로 갈수록 최선단 공정이다. 창신메모리(CXMT) 등 중국 반도체 업체는 1x 공정까지 양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코노미조선=정원석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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