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학당 한국어 우수학습자로 선정된 67개국 외국인들이 지난해 10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수정전에서 열린 ‘2023년 집현전 왕실문화 체험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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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기업 임원 A(55)씨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다. 3학기 동안 최소 15과목 45학점을 들어야 한다. 그는 “은퇴하면 아내와 함께 태국에서 1년 살기를 할 계획인데 그때 한국어 교사로 현지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전후 50~60대 사이에서 ‘한국어 교원’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수 로제의 ‘아파트’,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등 K팝·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한국어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 50~60대 사이에선 “은퇴 후 해외에서 살고 싶은데 기왕이면 한국어 교원으로 어느 정도 보람 있게 일하며 최소한의 소득을 올리고 싶다”는 반응이 나온다.
추모(55)씨가 키르기스스탄 오시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종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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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국어 파견 교원 30%가 50~60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은 세계 88개국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있다면 서류 전형, 인성 검사, 면접 등을 거쳐 세종학당 해외 파견 교원이 될 수 있다. 세종학당 파견 교원은 올해 10월 기준 279명으로 50~60대가 32%를 차지한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국어 교육 비(非)전공자는 대학 부설기관 등에서 120시간 양성 과정 수업을 듣고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에 합격하면 3급 자격증을 받는다. 3급 자격증을 받고 5년 경력(강의 2000시간)을 채우면 2급이 된다. 2급 자격증을 갖고 다시 5년 경력(강의 2000시간)을 쌓으면 1급이 된다. 학점은행제를 통해 한국어 교육 학위를 취득한 뒤 심사를 거쳐 2급 자격증을 받는 방법도 있다. 1급으로 승급하는 과정은 동일하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한국어 교원 자격증은 2006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총 9만1000여 명이 발급받았다. 연령대는 40대(27%), 30대(24.5%), 50대(23.4%), 20대(16.4%), 60대(8.7%) 순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나이 제한 없이 도전 가능하다”며 “대기업에 다니며 틈틈이 준비하는 분도 있다”고 했다.
최모(67)씨 인도네시아 슬라웨시 지역 바우바우 세종학당에서 수업하고 있다. /세종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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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가르치며 월급 받고, 숙식은 스스로 해결
세종학당 교원은 해외에서 외국인에게 주 5일(40시간) 최대 2년까지 한국어를 교육한다. 보통 주 15~20시간은 한국어 수업을 하고 남는 시간은 행정 업무를 본다. 세종학당 교원은 급여(기본급·주거 지원비·특수지 근무 수당)를 받으며 숙식은 현지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세종학당 교원은 등급(가·나·다·라급)에 따라 기본급을 받는다. 가급(한국어 교원 자격증 2급 이상·경력 8년 이상)은 월 277만원, 나급(자격증 2급·경력 3~8년)은 239만원, 다급(자격증 3급·경력 1~3년)은 219만원, 라급(자격증 3급·경력 1년 미만)은 212만원이다.
여기에 주거 지원비 월 105만~135만원, 특수지(파키스탄 등) 근무 수당 월 50만원~70만원을 별도로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급 교원이 주거 지원비를 최대로 받는 경우 월 400만원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세종학당 측은 “단신 부임이 원칙으로 가족 동반 관련 지원은 없다”며 “(현지) 물가와 처우를 신중하게 고려해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서 수업하는 60대도 “보람 느껴”
실제 생활은 어떨까. 은행 IT 임원으로 퇴직한 최모(67)씨는 작년부터 인도네시아 슬라웨시 지역 바우바우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어휘, 문법, 듣기, 말하기, 쓰기를 수업한다. 바우바우 세종학당 학생은 100여 명으로 최씨는 이 중 50여 명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20~25세 현지인이 대부분이다.
최씨는 “퇴직 후에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 세종학당 교원으로 파견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거나 취업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며 “학생들의 새로운 도전을 도우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추모(55)씨는 자녀를 키운 뒤 작년부터 키르기스스탄 오시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일하고 있다. 일상 언어 등 초급부터 사회 화두를 다루는 중급까지 단계별로 현지 중·고등학생, 대학생 등 25명을 가르친다. 추씨는 “현지에서 K팝이 인기를 끌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이어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어와 모국어, 인근 국가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해 언어에 관심이 많은 분위기”라며 “키르기스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비슷해 현지 학생들이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있다면 국내 대학 한국어학당 등에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다. 광주 B 대학은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과 석사 학위를 보유한 교원에게 시간당 3만원을 지급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외국인들이 한국 관련 기업에서 일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웠다면 요즘에는 취미로 습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홍다영 기자(hd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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