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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시론] 대한체육회 등 체육단체 자율성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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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기한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한국의 체육 단체들은 자율성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모양이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파리 하계올림픽 당시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체육 단체 선진화 필요성을 제기했고 많은 국민이 공감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KNOC)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의 체육 단체 자율성을 운운하면서 IOC가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사실상 으름장을 놨다.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대한축구협회(KFA) 운영에 대한 불신이 제기되면서 여론이 여전히 흉흉하다. 축구협회는 이런 문제 제기가 협회의 자율성을 훼손해 국제축구연맹(FIFA)이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출전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국민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듯해 안타깝다.



단체 운영 놓고 공정성 도마 위에

자율성 집착, 책임성 둔감 심각

대수술 없으면 국민에 피해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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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사례를 보면 체육 단체 자율성에는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라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IOC는 1999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발생한 뇌물 수수 스캔들을 계기로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거버넌스 실패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 위원장 임기제 등 개혁을 단행했다. 같은 맥락에서 2001년 IOC 위원장으로 선출된 자크 로게는 유럽올림픽위원회(EOC) 연설에서 체육 단체 운영에 투명성·민주성·책임성을 강조했다.

2007년 IOC는 체육 단체 자율성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굿 거버넌스가 IOC와 체육 단체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기본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2008년 ‘올림픽 굿 거버넌스 기본 원칙(BUPs)’ 제정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정부와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며 자율성을 유지하라는 원칙이 포함된다.

2009년 IOC 총회는 체육 단체 자율성이 조건 없는 권리가 아니며, 최고 수준의 도덕적 기준과 굿 거버넌스를 실천할 때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높은 수준의 진실성·책임성·투명성을 강조하고 올림픽 유관 단체에 BUPs 적용을 의무화했다. 2011년에는 체육 단체 굿 거버넌스가 올림픽 헌장의 올림픽 철학 기본 원칙으로 포함됐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2013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책임 있는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는 ‘완전한 자율성’은 존재하기 어렵다면서 법규를 준수하는 자율성을 강조했다. ‘IOC 독트린’으로 불리는 이 연설은 2014년 발표된 IOC 장기발전 로드맵인 ‘올림픽 어젠다 2020’에도 반영됐다.

지금 많은 국민과 팬들은 대한체육회와 축구협회의 거버넌스가 실패했으니 이를 조속히 대대적으로 개선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단체는 스포츠 자율성을 방패로 삼아 아무도 참견하지 말라는 태도를 보인다. 탄압받는 투사로 포장하려 하지만 공감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책임 없는 자율성은 외부 통제 확대를 초래한다. 자율성의 역설이다. 정부는 대한체육회와 지방 체육회 예산 전달 체계를 바꾸겠다고 했다. 과거 대한체육회를 통해서 지방 체육회와 종목단체에 교부하던 방식을 정부의 직접 지원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10억원 이상 정부예산을 받는 체육 단체를 ‘공직 유관단체’로 지정하는 절차도 진행된다. 공직 유관단체가 되면 체육 단체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감사가 가능해진다. 문화체육관광부 훈령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 성과관리지침을 만들어 피지원 기관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도 구축하게 된다. 대한체육회는 매년 5000억원에 육박하는 기금을 지원받으니 정부 감독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에서는 스포츠 윤리센터에 접수되는 사건을 정부가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관계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대한체육회 스포츠 공정위원회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회장의 연임 출마 신청을 통과시켰다. 회장 본인이 임명한 공정위원이 평가 기준을 만들고 결론을 내는 ‘셀프 추천’ 절차를 밟아 뒷말이 많다. 잘못된 거버넌스로 태어난 단체장이 향후 4년간 임기를 수행한다면, 그 결과는 대한민국 체육과 체육 단체 자율성의 후퇴일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문제는 다른 사람이 일으키고 피해는 국민이 보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기한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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