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
“이렇게 인정하는 나를 보고 킥킥 웃겠지만…일론 머스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트레이더다.” 영국의 경제비평가 빌 블레인의 뉴스레터를 종종 보는데, 이 대목에선 실소가 나왔다. 그는 그간 머스크에 냉소적이었다. 이번엔 비아냥이 아니었다. 테슬라의 주가 급등으로 머스크가 6주 만에 607배의 수익률(선거 지원 1억5000만 달러, 주가 상승분 910억 달러)을 기록한 걸 얘기한 거지만 DOGE(정부효율부) 수장이 된 데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의 말이다. “트럼프가 DOGE 장관으로서 활동할 자유를 준다면, 이는 미국 경제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머스크가 주요 기술관료들을 미 국방부 내 핵심 자리에 배치할 수 있다면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국방부는 (2010년대) 소프트웨어 개발, 클라우드 컴퓨팅 전환, 상업 우주혁명, 기계학습의 부상을 놓쳤다. 미래로부터 기습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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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만 보는 우리 시스템으론
'나쁘지만 능력 있는' 인재 못 써
여도 야도 아는데 해결되지 않아
머스크가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장차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아는 것도 있다. 우리에겐 ‘머스크 순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빌 게이츠 같은 분이 있다고 해도 그분들을 장관으로 쓸 수 없다. 주식을 다 팔아야 해서”라고 말한 사람은 문재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고위공직자들이 보유 주식 관리를 제3자에게 신탁해야 하는 제도를 말한 건데, 말이 신탁이지 사실상 팔아야 한다. 이미 중기청장(황철주)·구청장(문헌일) 대신 주식을 택한 이들이 있다.
더 구조적 결함도 있다. 검증 시스템이 인재를 외면하도록 설계·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직자라면 오점 하나 없고 능력도 출중해야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다소 도덕적 문제가 있더라도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쪽으로 기능해야 하는데, 능력은 입증하기도 검증하기도 어려우니 도덕성만 들이파는 시스템이 됐다. 동료 정치인이나, 관료·연구자 등 안정적 경력 관리가 되는 이들이나 통과한다. 스스로 성취하거나 돌파한 기억이 없는 무감동의 인물들이다. 공직 밖에서 성공한 이들의 공직 진출은 ‘자리까지 탐낸다’고 경계하니, 역량은 있지만 다소 걸리는 게 있는 이들은 “굳이 험한 꼴 당할 필요 없다”고 자리를 마다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시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UFC 309에서 일론 머스크(오른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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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한들 좋은 사람을 쓸 수 없고, 인사청문회를 하면 “골라도 어찌 이런 사람들만 고를 수 있냐”는 질타를 받게 되니, 설령 무능한 것으로 확인된 장관도 교체되지 않는다. 무능한 ‘장수(長壽) 장관’이 속출하는 배경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기회의 순간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 천재급 인재는 없어도, 준천재급 인재는 세 명 있다”고 했던 세 명 중 한 명인 진대제의 정보통신부 장관 임명이 한 예다. 노무현 정부 초기로, 인사청문회 대상이 장관급으로 확대되기 전이었다. 그때도 진 전 장관은 “삼성에 있을 때는 미래를 생각하느라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장관이 되니까 과거 얘기를 하느라 미래를 생각할 틈이 없다”(『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우린 머스크처럼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성사시키는 데 특출난 인물을 행정부로 끌어들일 수도, 일을 시킬 수도 없다는 얘기다. 여도 야도 공감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중 마지막 인터뷰에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고 싶지 않겠나. 우리 인사청문회가 도덕성 검증 쪽에만 매몰되고 정치화되니 이른바 망신주기 청문회가 된다”고 한탄한 일이 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심경일 것이다.
문제도 분명하고 해법도 분명한데 해결되진 않고 있다.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의 마음이 달라서다. 그게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말이다. 선택적 기억상실이다. 이 탓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범인(凡人)들이 수혜자일 것이다. 그러니 머스크 쇼를 그저 볼 수밖에. 속 쓰린 채로.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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