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재단 지원 위축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지난 8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로버트 케네디와 만나 악수하는 모습./사진=로버트 케네디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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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신 회의론자로 알려진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HHS) 장관으로 지명했다. 그가 백신에 대한 안전성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미국에서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백신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가 사퇴한 후 트럼프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어린이의 건강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이와 관련한 위험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07년 '칠드런스 헬스 디펜스'라는 비영리단체를 창립하기도 했다.
로버트 케네디의 지명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15일 화이자, 모더나, 노바백스 등 글로벌 제약사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백신업계가 이번 인선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그가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천식, 자폐증,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의 원인을 백신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케네디는 지난해 미국 힐즈데일 대학에 진행한 연설에서 "나는 백신 반대론자가 아니다"라면서도 "공중보건기관이 백신이 과학적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실제 과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신은 허가를 받기 전 안전성 평가를 거치지 않는 유일한 의약품"이라며 "어린이들 사이에서 천식, 알레르기와 같은 질병의 발병률이 1989년 이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백신을 접종받은 아이들이 이러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가 있다"며 백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NPR 등의 외신에 백신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백신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안전성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케네디가 머크의 B형 간염 백신이 위약 대조시험을 거치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사진=칠드런스헬스디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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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백신 허가업무를 담당하는 식품의약국(FDA)은 HHS 산하의 독립적인 규제기관이지만 HHS가 인사, 예산 등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 지난 2011년 캐슬린 시벨리우스 HHS 장관은 사후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구매하도록 허용한 FDA의 결정을 뒤집은 사례가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어린이 대상의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백신업체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가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와 미국을 비롯한 국가에서 영유아 및 소아 폐렴구균 백신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는 백신 임상시험에서 진짜 약과 가짜 약(위약)을 투약한 후 안전성을 비교하는 '위약 대조시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SK바이오사이언스는 기존 약물과 안전성을 비교하는 '활성 대조군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위약 대조시험은 백신의 효과나 안전성을 절대적인 기준에서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가짜 약을 주고 약효를 평가하는 시험은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모든 백신 임상시험에서 이 요건이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로버트 케네디는 백신기업에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의 활동에 반대하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에서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이 세계 공중보건 정책에 과도한 영향력을 끼치고 저소득 국가에서 백신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은 비영리재단인 만큼 로버트 케네디의 압박으로 지원을 중단할 위험이 적지만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은 있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 LG화학, 유바이오로직스 등 대부분의 백신기업이 이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 백신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새 보건복지부 장관을 둘러싼 우려가 크지만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며 "상황을 주시하면서 이에 맞춰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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