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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주택의 사회화” 베를린 제2 주민투표 추진…이번엔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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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독일 베를린 한 도심의 아파트에 모인 시민단체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 회원들.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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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한 무리의 노숙인들이 독일 베를린 미테구 하버자트슈트라세 40~48번지에 있는 아파트를 점거했다. 이 아파트는 1980년대 유럽 최대 병원인 샤리테 소속 간호사들의 숙소로 쓰이다가 2006년 민간에 매각된 뒤 일반 거주 시설로 탈바꿈한 곳이었다. 하지만 2017년 독일의 대형 부동산 기업 아르카디아가 이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임차인들의 신세는 위태로워졌다. 오래된 아파트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올린다는 계획에 밀려 임대 계약 종료를 통보받은 것이다.



이후 아파트는 빈집이 되어갔지만 소수의 임차인들은 집을 떠날 수 없다며 퇴거에 불응했고,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새 아파트를 지으려는 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거세졌다. 당장 살 곳이 필요한 거리의 노숙인들은 시민단체의 도움에 힘입어 빈 아파트를 점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곳엔 12명의 기존 세입자와 60~100명 사이의 노숙인과 난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9월엔 주택 3천채 이상을 보유한 민간 부동산 업체의 주택을 베를린주 정부가 강제수용해 사회화하자는 주민투표가 열렸다. 연방제인 독일 각 주는 자체적인 입법권이 있어 사실상 국민투표 성격이 있다. 59.1%가 찬성표를 던졌는데, 치솟기만 하는 임대료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라는 의지의 반영이기도 했다. 독일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 15조는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사회화를 목적으로 법률에 의해 공유재산 또는 공동관리 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정했다. 현실에서 한번도 적용된 적 없는 이 조항은 강제수용의 법적 근거로 제시됐다.



베를린주 정부는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2022년 4월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고, 이 위원회는 다음해 6월 민간의 주택을 사회화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한다”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동산 대기업들이 소유한 주택 24만채를 공공에 되돌려주자는 거대한 사회실험에 청신호가 켜진 듯했다.





“자본 아닌 사람에게 주택을”…좌절된 사회실험?





그러나 2021년 이후 부동산 기업과 시민들 사이 베를린 주택을 둘러싼 쟁탈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망은 밝지 않다. 하버자트슈트라세의 아파트가 위치한 미테구는 수년의 논쟁 끝에 지난 8월 아르카디아가 요구해온 아파트 철거를 허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테구는 몇년간 아파트를 구청이 매입하는 방안도 논의했지만, 기업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부동산 업체는 아파트를 철거하는 대신 “평균 근로소득을 가진 가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임대료를 받는 대체 거주지를 마련하고, 난민과 노숙인을 위한 수용 시설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베를린 임차인 단체는 “구청이 기업의 요구에 굴복했다”며 “현재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들은 (기업이 제시한) 임대료를 낼 여유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대규모 주택 사회화를 요구하는 2021년 9월 주민투표 결과가 실제로 정책으로 집행될지도 불투명하다. 지난해 4월 치러진 베를린주 선거로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연합(CDU·기민련) 소속 카이 베그너 시장이 취임하면서 기대는 더욱 낮아졌다. 주민투표를 하더라도 주 정부가 이를 따라야 할 법적 구속력은 없다.



다만 베를린주 정부 전문가 위원회가 이미 이번 투표의 타당성을 인정했고, 주 정부는 ‘사회화’의 기준과 정의를 정비하겠다며 ‘사회화에 관한 기본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선 해당 법안은 주택 주민투표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고, 실제 제정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도록 설계됐다며 주 정부가 “시간 끌기”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베를린주 정부를 이끄는 카이 베그너 시장은 지난 4월 “내가 시장으로 있는 한 베를린에서 기업 소유의 주택을 몰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분명한 거부 메시지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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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미테구 하버자트슈트라세 거리에 있는 아파트. 독일의 대형 부동산 기업 아르카디아가 2017년 이 아파트를 매입한 뒤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임대 종료 통보를 내렸지만, 기존 세입자와 빈집을 점거한 노숙인, 난민들이 현재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사진 독일 진보적 사회 운동 기록 아카이브 움브루흐(Umbruch) 제공. 촬영 올리버 펠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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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주민투표를 발의했던 시민단체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의 카르멜 푸크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베를린의 주택은 대형 부동산 기업에 의한 현대화와 개보수를 거듭하는데 그에 따른 비용은 모두 임차인이 부담하며 임대료는 치솟고 있다. (2021년) 주민투표는 단지 더 좋은 집을 갖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넘는다. 주민들이 원하는 집을 위한 민주적 참여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며 베를린주 정부를 비판했다. 이 단체가 이름을 딴 ‘도이체보넨’은 베를린에 3천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대표적인 기업형 부동산 업체 중 한곳의 이름이다.



베를린 임대료는 계속 오르고 있다. 전체 시민의 80% 이상이 임대 주택에 살 정도로 세입자 비율도 높다. 지난 4월 금융회사 ‘베를린 히프’ 조사 결과 2023년 한해만 베를린의 임대료는 18.3%가 늘었고, 세입자의 75%는 베를린시가 임대료 상한제로 정한 액수보다 더 많은 돈을 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베를린의 평균 주택 임대료는 제곱미터(㎡)당 18유로(약 2만7천원)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약 3.2%가량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건 거리나 시설 등 ‘비주택’에 거처를 둔 이들이다. 오랜 시간 노숙자로 생활하다가 현재는 이들을 위한 임시 거주 시설에 머물고 있는 주자네 히네베르크(66)는 한겨레에 “30년 전만 해도 베를린엔 낮은 집세로 살 수 있는 사회주택(시정부 소유 주택)이 많았지만 그런 집은 더는 충분히 지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임대료를 낼 수 있을 만한 사회주택 수도 너무 적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 생활자가 새 집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주택을 다시 사회로” 제2의 주민투표 준비 중인 베를린





베를린 시민들의 요구를 저버린 주 정부를 대신해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은 지난해 9월부터 제2의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질 않으니, 시민들이 직접 주택 사회화를 뼈대로 한 법안을 만들고, 그 시행 여부에 대한 찬반을 베를린 시민들에게 다시 묻겠다는 것이다. 이 단체의 푸크 대변인은 “주택 몰수를 위한 법안을 시민사회가 직접 만드는 것 또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단체는 학계와 법조계 조언을 받아 법안 초안을 작성 중이라고 한다. 몰수 대상 주택의 기준과 범위부터 시작해 주택을 사회화한 뒤 어떤 형태로 주택을 임대할 것인지, 또 임대료의 적정선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할지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푸크 대변인은 “우리는 새로 만드는 법을 통해 몰수 대상인 수많은 아파트를 새로운 공적 기관이 관리하길 원하며, 그 방식도 민주적이어야 한다”며 “법안이 발표된 뒤 받게 될 평가에 대비해 굉장히 많은 세부사항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주민투표 과정에서 안건의 헌법적 타당성을 따지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법안을 검토하도록 돼 있어 이 장벽을 넘는 것도 과제다.



베를린 지역마다 지부를 갖춘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은 자원봉사자 2천여명과 함께 이런 활동을 알리고 있다. 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법률 사무소에 대한 자문 비용도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단체는 초안이 나오면 2만명의 자필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2026년 열릴 베를린 주의회 선거 때 주민투표를 시행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푸크 대변인은 “정확한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며 “일단 최적의 법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집은 인간의 삶과 직결된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가 기업의 이익에 종속돼 결정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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