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나라 클래식’에서 지난 17일 30대 초반 이용자 악어양(닉네임)이 기자와 인터뷰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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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온라인 게임 ‘바람의나라 클래식’에서 만난 30대 초반 악어양(닉네임)은 다람쥐와 토끼가 뛰노는 ‘왕초보사냥터’에서 목검으로 다람쥐를 때리고 있었다. 바람의나라는 2000년 전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는데 다른 사람과 동료가 돼 사냥을 하고 물건을 나누면서 경험치를 쌓아가는 내용이다. 어릴 적 즐겼지만 어느 순간 시들해져 잊었던 이 게임을 악어양이 다시 찾은 건 과거 버전인 ‘바람의나라 클래식(바클)’이 다시 출시되면서다. 그는 “추억을 찾고 싶어서” 다시 초보자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게임을 다시 찾는 20~30대가 늘고 있다. 사회 전반의 ‘레트로 열풍’과 게임업계의 수익 창출 전략이 맞물려 속속 재출시 되고 있는 ‘클래식’ 버전에 젊은 층이 호응하고 있는 것이다.
왜 굳이 옛날 게임을? “추억 찾아서”
바람의나라는 1996년 출시돼 28년째 서비스 중인 게임이다. 제작사 넥슨은 지난 9일 2000년대 초반 서비스 게임 속 장면을 되살린 ‘바람의나라 클래식(바클)’을 내놨다. 2003년 첫 출시된 게임 메이플스토리도 지난해 말 초기 버전으로 구현한 ‘메이플랜드(메랜)’를 나왔다. 해외 제작사가 만든 일인칭 슈팅 게임 ‘오버워치2’는 사용자가 2016년 5월 버전을 즐길 수 있는 기능을 만들었다. 넥슨에 따르면 ‘바클’과 ‘메랜’의 누적 접속자는 각각 39만명, 150만명에 달한다. 두 게임 모두 모두 30대 이용자 비중이 가장 높았고, 20대가 뒤를 이었다.
젊은 이용자들이 과거 유행한 게임을 다시 찾는 건 아무래도 낭만과 추억 때문이다. 송진혁씨(29)는 어릴 적 헸던 게임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송씨는 중학생 시절 사촌 형이 해주는 이런저런 조언을 따라 게임을 했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게임을 하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송씨는 “머리가 크고 보니 사촌 형이 사냥을 시켰던 이유를 알게 됐다”며 “어릴 땐 미숙해서 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 게임엔 ‘여백의 미’가 너무 없다는 불만도 작용했다. 이시열씨(27)는 “정해진 시간에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던 낭만이 요즘 게임에서는 ‘이용자 편의’를 이유로 사라졌다”며 “지금 메이플스토리는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식이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씨는 “요즘 게임은 복잡한 단계를 거쳐 ‘러닝크루’에 들어가야 하는 것 같다면, 메랜은 놀이터에서 처음 본 아이들과 노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19일 ‘메이플랜드(녹색)’와 ‘바람의나라클래식(적색)’을 검색해보면 최근 바람의나라 클래식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 확인된다. 네이버 데이터랩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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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 팍팍한데 게임마저 그래서야…제작사·이용자 모두 좋은 ‘게임 추억 여행’
이런 게임이 극한 경쟁이나 승자 독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풀이된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게임에서마저 경쟁과 생존을 강요당하기보다 여가로서의 게임을 즐기려 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으로 취업 경쟁과 고물가, 직장생활의 고단함 등 팍팍한 현실의 부담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몰린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의 게임 추세는 높은 컴퓨터 사양을 요구하거나, 과금을 많이 해야 하는 등 지나치게 경쟁 위주로 돼 있다”며 “즐겨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옛 생각을 떠올리는 것처럼, 어린 시절 즐기던 게임으로 느끼는 향수가 현대인에게 위안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도 “살기 팍팍한 현실과 당시 게임을 하면서 훨씬 덜 경쟁적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라며 “현실을 잠깐 잊고 회피해 어릴 때의 행복감을 느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추억 여행’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신규 게임 출시보다 팬층이 두꺼운 인기 게임을 재출시할 때 감수할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윤형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는 “게임 산업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게임 제작사는 확보된 팬층이 있는 옛 게임의 연속작을 출시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려 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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