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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그랜저 탄 부부 팔다리 잘랐다…지존파의 핑크색 살인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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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더중플 - 시대탐구 1990년대 : 모든 오늘의 시작

한강의 기적 이후인 1990년대엔 빠른 산업화의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렸고, 불평등이 심해졌습니다. 오렌지족·야타족 등 부유층 자녀들의 추태가 신문지상을 장식했습니다. 양적 성장에 몰두한 결과 삼풍 붕괴 같은 참사가 벌어지는가 하면, 양극화 속에서 방향이 잘못된 분노를 품은 이들의 흉악 범죄가 등장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90년대의 명암을 돌아봅니다. 겨우 20대 초반 청년들이 부자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이들을 잡아다 살해하고 검거 후에도 반성하지 않아 충격을 줬습니다. ‘지존파’ 사건입니다.

중앙일보

지존파 일당이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기자들과 일문일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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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리리 삐리리리…. 잠복 중인 서초경찰서 강력반 한기수 형사의 주머니에서 삐삐가 울렸다. “반장님도 참, 뻗치기할 땐 삐삐 치지 말라니까.” 입이 댓발 나온 한 형사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수화기를 들었다. “야! 완전 비상이야, 빨리 들어와.” “반장님, 뭐, 뭐 때문에….” 뚜 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994년 9월 16일 새벽, 잠복 중이던 한 형사는 차를 몰아 경찰서로 들어갔다.





“사람을 납치해 살해하고, 팔ㆍ다리를 잘라 불에 태웠어요….” 하얗게 겁에 질린 20대 여성이 횡설수설 이야기를 늘어놨다. 제정신이 맞나? 한 형사는 여성의 양쪽 팔을 들어 살폈다. 다행히 ‘약쟁이’는 아니었다.

제보자 이름은 이영순(27ㆍ가명). 8일 전 카페에서 함께 일하던 남성과 새벽에 납치됐는데, 혼자만 가까스로 탈출했다는 것이다. “죽인 후에 음주 교통사고로 위장했어요. 다른 피해자들도 있고요.” “어떤 사람들을요?” “30~40대 부부였어요. 그랜저를 타는….”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당시 고급 승용차였던 그랜저의 차주. 공포 소설 같은 이야기에 한 형사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신문에 이영순이 말한 교통사고 기사가 실렸다. 절벽으로 굴러떨어진 승용차에서 시신이 발견됐는데, 목격자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고 진술했다. 한 형사는 왠지 모를 싸한 기분이 들었다. “여보, 나 짐 좀 챙겨줘. 며칠 못 들어올 것 같아.”

한 형사와 고병천 반장 등 강력계 형사 7명은 서둘러 짐을 꾸렸다. 추석 연휴라서 피의자들이 혹시 뿔뿔이 흩어지진 않을까 우려해 곧장 전남 영광에 있다는 범죄 아지트로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18일 밤 11시쯤 서초서를 출발했다. 피해자인 이영순도 동행했다. 단서라고는 오직 그녀의 제보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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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이 두목 김기환의 농가를 개조해 만든 전남 영광군 아지트.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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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2개 나온 기괴한 화덕…살인 괴물은 ‘전교 5등’이었다 [범죄는 말한다②]

"그 집 차가 시방 사고 나분 것 같은디 언능 와보랑께." 전남 영광으로 간 뒤 가장 먼저 체포한 지존파 부두목 강동은을 데리고 경찰지서에 도착한 고병천 반장이 기지를 발휘했다. 현지 순경을 시켜 강동은이 몰던 차가 교통사고에 연루된 것처럼 지존파 아지트에 전화를 걸게 했다. 1994년 9월 19일 새벽, 혼자 장을 보러 나온 강동은을 검거했으니, 이제 다른 조직원들을 밖으로 유인할 차례였다.

한기수 형사가 아지트로 돌아와 쌍안경을 보고 있는데, 대문이 열렸다. "한 놈 나왔어!" "어? 옆에 여자도 있는데." "인질인가?" 한 형사는 새로 뽑은 프라이드 승용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지트에서 나온 남녀 2명은 르망 차량에 오르더니 흙먼지를 내뿜으며 튀어나갔다. 한 형사가 따라붙자 르망은 갑자기 속력을 높였다. "밟아! 빨리 밟아!" 계기판 눈금은 순식간에 시속 130㎞. 그러나 긴 오르막길이 나타나자 르망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놓쳤다’는 생각에 탄식이 나오려던 찰나, 내리막길에 고꾸라져 있는 르망을 발견했다. 한 형사는 곧장 수갑을 들고 운전석으로 뛰어갔다. 차 안에는 행동대장 김현양과 부두목 강동은의 여자친구 이경숙이 쓰러져 있었다. 훗날 김현양은 경찰을 눈치채고 내리막길에 있는 주유소를 들이받아 자폭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평소에도 이들은 경찰이 아지트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놓곤 했다.

남은 일당은 4명. 그중에 두목 ‘지존’이 있었다. 한 형사와 동료들은 아지트로 향했다. 민트색 담벼락에 분홍빛으로 물든 외벽은 묘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계훈 형사가 현관문을 열자 행동대장 문상록과 조직원 강문섭이 단검을 든 채 얼굴을 드러냈다. 이 형사가 공포탄을 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단검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들이 두목으로 부르는 김기환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을 제보한 피해자 이영순도 그의 얼굴은 본 적 없다고 했다. 김기환이 있는 곳은 뜻밖의 장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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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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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써놓고 매년 고쳐 쓴다, 19살 ‘삼풍 알바생’의 그날 [참사의 기억①]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그날 백화점은 이상했다. 실내 온도가 30도에 육박하는데 종일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오전엔 엘리베이터 안내원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5층 에스컬레이터가 어긋나버려 운영을 안 해.”

난 백화점 지하 1층 알바생이었다. 친구가 소개한 일당 3만 원짜리 일자리. 찜통이라 손님이 뜸하던 오후 6시쯤, 식품판매대 쪽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네 갈게요~”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편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전등이 죄 꺼지고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사방에서 조각들이 쏟아지며 온몸을 할퀴었다. 바람이 멎자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그제야 건물이 무너졌다는 걸 알았다.

친구는 찢어진 이마부터 턱까지 피투성이였고, 난 뒤통수에서 발꿈치까지 파편에 찢겨 성한 곳이 없었다. 일단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몰리는 쪽으로 무거운 몸을 옮겼다. 밖으로 향하는 좁은 통로는 아수라장이었다. 가까스로 지상에 올라서자 뿌연 먼지 사이로 부상자를 실은 작은 버스가 보였다. 버스 안에도 신음 소리가 가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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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휴거를 기원하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신도들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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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8일” 휴거 예언한 그날…교주는 감방서 자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다. (중략) 살아 있는 자들이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과 만날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그날도 우리는 성경 구절을 읽고 또 읽었다. 하나님께서 공중으로 들어 올려 죽음을 면한 에녹(히브리서 11장)처럼 구원의 때가 다다랐기 때문이다. 1992년 10월 28일, 더위가 물러간 가을밤이었지만 서울 마포구 성산동 다미선교회 대강당은 신도들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위아래 흰옷으로 단장한 사람들이 무릎을 꿇은 채 다닥다닥 붙어 앉아 찬양과 찬송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 봤던 장면도 눈앞을 스쳐 갔다. 국내 모든 방송과 외신까지, 교회 앞에 몰려든 것은 취재진만이 아니었다. 신도들의 가족 수천 명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아이고 이 양반아! 뭔 귀신에 씌어서 이러는 거야. 정말!" "이놈의 자식. 대학 안 갈 거야?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러나 오히려 난 그들이 안쓰러웠다. 구원은 믿는 자만의 것이었으니까.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자 찬양하는 목소리들이 한층 격해졌다. 신도들의 방언과 찬송 소리가 데시벨을 높였다.혹시나 기도가 부족해서, 신심이 모자라서 ‘명단’에 들지 못할까 봐 신도들은 절박했다. 댕~ 댕~ 댕~. 벽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것처럼 격렬했던 기도와 오열, 찬송 소리가 진공 속으로 빨려드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군가 ‘허흡’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가 그마저도 고요 속에 잠겼다. 나는 온몸에 힘을 풀고 눈을 질끈 감았다.

틱, 틱, 틱. 소름 돋는 침묵 속에 초침 소리가 맥박처럼 느껴졌다. 몇 분이 지났을까. 살짝 눈을 떠 주위를 본 순간, 내 몸은 그대로였다. 옆의 언니도, 앞의 사람도 멍하니 시계만 바라봤다. 그날 우리에겐 휴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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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90년대 신인류 K팝 만들다, ‘강남 흑인음악’ 듀스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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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양현석·룰라에서 뉴진스까지…K팝 시작은 그 ‘나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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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난 포르노 주인공이고 싶다” 그 후 25년, 서갑숙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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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한강 20년 과선배 마광수, ‘즐거운 사라’ 쓰고 감방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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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한·심석용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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