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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모두의 1층’ 위해 7㎝ 문턱 없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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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창작촌에 있는 카페 유어홈커피 로스터스(왼쪽)와 소품 가게 미스티그린의 경사로. ‘모두의 1층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올해 설치됐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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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소품 가게를 운영하는 설수진(38)씨는 전동 휠체어를 탄 손님을 가게에 들이지 못한 경험이 있다. 7㎝에 불과한 문턱 때문이었다. 무리하게 문턱을 올랐다가는 넘어질 위험이 있고, 전동 휠체어를 뒤에서 밀거나 들어 올리기에는 너무 무거웠다고 한다. 결국 손님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누군가에겐 가게 앞 7㎝의 문턱도 ‘높은 산’이었다.



설씨에게 최근 가게에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업 지원을 받아 소규모 점포에 무료로 경사로를 설치해주는 ‘모두의 1층’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정된 덕이다. 모두의 1층 프로젝트는 공익법단체 두루와 협동조합 무의, 브라이트건축사사무소가 한 팀이 돼 이끈다. 올해부턴 서울시도 합류했다. 모두의 1층 팀이 올해 경사로를 설치한 곳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창작촌과 용산구 용리단길에 있는 소형 매장, 프랜차이즈 소상공인 가맹점 등 총 45곳이다.



2022년 경사로 설치 의무가 있는 시설의 바닥면적 기준이 기존 300㎡(약 90평)에서 50㎡(약 15평) 이상으로 강화된 법령(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이 만들어졌지만, 현실에서 장애인과 노약자가 느끼는 ‘7㎝ 문턱’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2022년 5월1일 이후 신축·증축·개축·재축한 건물에만 시행령이 적용된 탓이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가령 경사로를 완만하게 설치하려면 도로 일부를 점용하게 돼 구청의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민원이나 보행자의 안전 등을 이유로 허가가 잘 나지 않는다. 김계리 서울시 약자동행담당관 주무관은 21일 “구청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엔 보행에 불편을 겪는다는 민원 등이 있다. 결국 행정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시민들의 인식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두의 1층은 법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한편에선 공익 소송을, 다른 한편에선 지자체를 설득하고 시민 목소리를 모으는 작업을 병행한다. 가령 지난해 7월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경사로 설치 매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를 진행했는데, 경사로 설치 매장은 더 편리하며(83%), 포용적이고(73%), 이미지가 더 좋다(80%)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성동구 경사로 설치 조례를 요구하는 시민 서명 캠페인을 벌여, 올해 1월 ‘서울시 성동구 장애인 등을 위한 경사로 설치 지원 조례’가 제정됐다. 이후 유사한 조례가 용산구에도 도입됐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창작촌에선 가게 9곳 경사로 설치를 위한 도로점용 허가를 한번에 받아내는 성과도 있었다.



모두의 1층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한다. 경사로 설치에 면적 제한 규정을 둔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을 24년 동안(1998~2022년) 유지해,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이동약자 접근을 보장하지 못한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1심과 2심에선 패소했지만, 현재 관련 소송은 대법원에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만일 대법원이 이동약자 쪽 손을 든다면, 입법 방치에 대해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최초 사례가 된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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