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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도시 발견]청송에서 지방소멸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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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얼마 전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강연이 있었다. 청송군에는 두 곳의 중심지가 있는데, 이날 강연을 한 곳은 경북 북부 교정기관이 자리한 진보면이 아닌 군청이 있는 청송읍 쪽이었다. 강연 후에 청송읍내 숙소에서 머물렀는데, 밤이 되자 사과 모양의 네온 장식이 군청 주변을 환하게 밝힌 모습이 아름다웠고,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떤 도시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만약 청송읍내에서 밤을 보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청송읍이 진보면에 비해 규모도 작고 보잘것없다는 인식을 가진 채로 그곳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청송군에서는 1981년부터 교정기관이 자리하고 있는 진보면이 군청 소재지인 청송읍을 압도할 만큼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면에는 현재 경북북부 제1~3교도소와 직업훈련교도소가 있고, 여성 교도소를 추가로 유치하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청송군 차원에서는 사과와 주왕산이라는 두 개의 상품을 지역 얼굴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청송군의 사회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교도소와 관련된 교도관 및 면회객 그리고 교도소를 유치한 데 따른 각종 지원이다.

특히 진보면은 다이소를 비롯해 각종 프랜차이즈 상점이 입점할 정도로 활력을 보이고 있다. 물론 대도시의 경제적 활력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2만3000명이라는 청송군의 상주 인구만으로는 이룩할 수 없는 규모임은 사실이다.

'교정 경제'를 통해 생활 인구를 증가시켜 상주 인구 감소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청송군은, 군부대 유치를 통한 '군사 경제'로 비슷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지역들과도 비교할 바가 많다. 군사 경제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으로는 1955년부터 37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충청북도 증평군, 계룡대가 주둔한 충청남도 계룡시, 2014년에 35사단이 옮겨온 전라북도 임실군, 2016년 오늘날 위례신도시 자리에 있던 특수전사령부가 옮겨온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등을 들 수 있다.

계룡시는 사실상 계룡대라는 한국군의 핵심 지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로 승격되었으며, 증평군도 계룡시가 탄생한 2003년에 37사단의 배후도시로서 괴산군에서 분리되었다. 그 후에는 '증가포르(증평+싱가포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압축 도시를 실현시킨 결과 한국의 지방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택지지구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군청과 37사단 사이에 단일한 중심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증평군 시가지에는 한국 여러 군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스타벅스가 위치하고 있고, 모체였던 괴산군보다 인구가 더 많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임실군과 이천시 장호원읍은 처음에는 군부대 이전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컸다. 하지만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군 장병에 의한 생활 인구 증가와 경제 활성화 효과가 확인되자 현지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임실군은 면회 때 가족이 찾아오지 않은 병사들이 있으면 주민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특수 경제'를 통해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이들 지역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청송군은 군청과 군의회 차원에서 교도관들을 위한 교정시설 확충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현직 교도관 커뮤니티에서는 교도소 주변의 비싼 주거비에 대해 '착취'라는 단어까지 등장할 만큼 비판적인 정서가 확인되기도 한다. 교도관들을 위한 관사를 더 많이 짓거나 상생협약 등을 통해 교도소 주변 상권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현재 한국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지 잘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교도소나 군대라는 특수 시설이 해당 지역에 가져다주는 생활 인구 증가와 경제적 활성화는, 거위가 황금알을 낳아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 특수 시설 관계자들에게 단기적으로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려다가 그들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당 지역의 행정당국과 정치권에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매일경제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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