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생경제점검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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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이어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마저 유예 또는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대주주들이 혜택을 많이 받을 배당소득 분리과세 방안도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이미 두차례나 연기했는데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또다시 후퇴시키겠다니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조세 행정이 이렇게 조변석개해서는 안 된다. 수십조원대의 세수 펑크로 나라 살림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데, 거대 양당이 이렇게 감세에 대해서만 ‘협치’하는 모습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얻은 차익에 대해 세율 20%(기본공제 250만원)로 거두는 세금이다. 애초 2020년 국회를 통과해 2022년 시행 예정이었으나, 2023년으로 1년 유예, 다시 2025년으로 2년 유예한 바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가상자산 과세를 위한 준비가 잘돼 있지 않다며 정부의 2년 유예안(2027년 시행)을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제도 시행 상황과 국제적 정보 교환 개시 시기(2027년 예정)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점을 근거로 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기재부는 법 제정 당시 준비가 다 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4년이나 지나서 준비를 못 했다고 말을 바꾸니 누가 이런 설명을 믿을 수 있겠나. 물론 국제적 정보 교환이 본격 시행되면 국외 거래소의 거래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과세를 하고 있는데, 우리만 국제적 정보 교환 부족을 과세 유예 근거로 드는 것은 낯 뜨겁다. 이들 주요국은 납세자의 신고 의무 강화 등 다양한 소득 탈루 방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한 대표는 가상자산 과세가 가격이 오랜만에 올라 손실을 회복하겠다는 투자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2년 전에는 가상자산 가격이 폭락했다며 과세 유예를 하더니, 이제는 가격 급등을 이유로 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도대체 언제 과세를 시작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에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마저 뒤로 물러서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시행을 하되 기본공제를 연 250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 대부분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는 것은 조세 저항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만큼 국회에서 어렵사리 통과된 새로운 세금은 원안대로 시행해야 옳다.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 여당이 먼저 과세 유예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조세 저항을 부추기는 것이나 진배없는 행위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방안은 주주환원을 늘리는, 이른바 ‘밸류업’ 기업 주주에 대한 감세를 3년 시한으로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세제상 배당소득세는 세율 14%가 적용되며, 이자와 배당을 합해 연 2천만원이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돼 세율이 최대 45%까지 높아진다. 법이 개정되면 밸류업 기업의 배당금 증가분에 대해 배당소득세율이 14%에서 9%로 낮아지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도 25% 단일 세율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막대한 세수 감소를 초래할뿐더러 대주주를 비롯해 투자 규모가 큰 주주일수록 감세 혜택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일각에서 ‘기업 밸류업’이 아니라 ‘오너 밸류업’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근본적인 노력은 등한시한 채 이런 미봉책으로 기업 가치를 제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렇게 하나둘 세금을 깎아주면서 나라 살림을 어떻게 운영하려고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이미 2년 연속 수십조원대의 세수 펑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에 양극화 해소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는데 그것도 예산이 뒷받침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먼저 정부 여당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민주당도 부화뇌동할 게 아니라 정부 여당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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